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79] 난 네가 처음부터 싫었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너만 외롭고 힘들었어? 엄살떨지 마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6 06:30:10

내내 저놈 탓이라고 저주했지만 내가 부정하고 있던 진실, 나 스스로 오쟁이 진 못난 놈이라고 큰소리로 세상에 선포한 것이었다.

“제정신이야?”

달봉이 완강한 힘으로 나를 밀쳤다. 이번엔 내가 휘청,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내가 일어나 다시 달려들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 내 허리를 붙잡았다. 왜 이러냐고, 조용히 들어가 말씀들 나누라고 몇몇 사람이 달봉이와 나를 서둘러 떼어 놓았다. 오해는 말로 풀어야 한다며 나와 달봉을 억지로 교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둘이 싸우라는 것인지, 추잡할지도 모르는 스캔들에서 목사를 보호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혼한 지 1년이나 지나서 이게 무슨 짓이야?”

달봉은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차분하고 의젓하게, 그러나 비난을 섞어 입을 열었다.

“이혼 전부터 넌 호시탐탐 노렸어.”

“그들도 보살핌이 필요했으니까!”

부정할 줄 알았는데 달봉은 당당하게 시인했다.

“너란 새끼는 정말 뻔뻔하구나.”

한 대 더 치려고 했지만 이번엔 달봉이 빨랐다. 그가 내 턱을 갈겼다. 비틀거리며 나는 의자들을 밀쳐 내고 나동그라졌다.

“너란 새끼, 처음 볼 때부터 싫었어.”

내가 이를 갈며 악을 썼다. 달봉이 설교단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나는 다시 달려들었다. 달봉이 재빠르게 돌아서서 몸을 피했다. 내 몸이 앞으로 철퍼덕, 고꾸라졌다.

“나한테 와서 행패 부릴 시간 있으면 수정 씨한테 가서 용서를 빌어.”

달봉이 침착하게, 그러나 이를 악물며 내게 말했다.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해서? 난 최선을 다했어. 죽을힘 다해 살았다고!”

내가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그럼 계속 최선 다해 살아. 너 자신만을 위해서.”

달봉도 소리쳤다.

“인생은 저마다 견뎌야 하는 몫이 있어. 누구의 탓도 아니야. 너만 외롭고 힘들었던 거 아냐. 너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에게도 아버지가 없었어. 아니, 어떤 이유였든 나는 어머니한테서도 오랫동안 버려져서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었어. 하지만 그게 너와 내 잘못은 아니잖아. 너와 난 그걸 인정하고 자유로워졌어야 했어. 네 외로움이 왜 네 아버지 탓이야? 네 불행이 왜 내 탓이고 내 어머니 탓이냐고? 네가 짊어졌어야 할 무게를 왜 수정 씨하고 네 아이들이 고스란히 견디게 하냐고!”

“형수랑 밤새 뒹굴고 온 놈이 도덕군자인 척 설교하는 거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나의 천박함에 치가 떨렸다.

“수정 씨 모욕하지 마라.”

그가 다가와 내 멱살을 꽉 쥐었다. 그의 두 눈이 시퍼렇게 반짝였다. 나를 죽일 듯 쏘아보았다.

“너랑 나, 이제 와서 형제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이럴 땐 아니다? 네 어머니가 내 아버지랑 살았는데, 내 아버지 돈으로 먹고 자고 공부해 놓고, 이제는 아니다?”

이번엔 달봉의 얼굴이 잔혹하게 일그러졌다.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였다. 교회 출입문이 발끈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달봉의 어머니 천길자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