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80] 내 아들과 남의 아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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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자동 우산과 찌그러진 검정 우산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7 06:30:10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날 이후 처음이었다. 아직 노파라기엔 젊은, 60대 후반의 천길자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그러나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의 창을 높이 쳐들고 기세등등하게 들어섰다. 그 뒤로 교회 안의 상황이 궁금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웅성거렸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다시 닫혔다.

“넌, 한 번도 날 새어머니로 대우한 적 없어. 그런데 인제 와서 내 아들과 형제라는 거냐?”

그녀의 목소리는 잘 벼린 칼처럼 쨍쨍하고 눈은 날 푸르게 번쩍였다. 내 어머니와 다르게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할 뿐, 결기가 있는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자식을 감싸는 일이었다. 아버지 옆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사목의 역할이 자신의 평생 소임인 것을 자긍하며 지금껏 결혼하지 않은 아들의 옆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아들 달봉을 지칭할 때 그냥 달봉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꼬박꼬박 ‘아들, 학교 다녀왔어?’ ‘아들, 밥 먹을래?’ 하고 물었다. 나를 부를 땐 ‘얘’가 붙었다. ‘얘, 무훤아. 학교 가야지.’ ‘얘, 무훤아. 넌 밥 안 먹니?’ 왜 그 사소한 차이가 어린 내 가슴을 아프게 했을까.

“어머니. 이건 무훤이와 제 일이에요.”

달봉이 그의 어머니에게 나직이 말했다.

“아니다. 나도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지 앞 의자를 붙들고서야 겨우 무거운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날 바라보던 어린것의 눈빛이 첫날부터 어찌나 모질던지. 계모 소리 듣지 않으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오랫동안 내 새끼 버리고 살았던 죄 같아서 어미 잃은 새끼, 안쓰럽고 눈물겨워 안아 주고 싶었다. 보살핌을 거부한 건 너였어. 검은 머리 짐승 거두는 거 아니라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이제 와 원망이야 원망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날 쳐다보는 눈 속 가득 경멸과 비난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분하고 원통해지는 것인지 노인 특유의 노여움으로 눈 밑마저 푸르르 떨렸다.

“이러지 마세요. 모른 척하고 어서 들어가세요.”

달봉이 다시 만류했다. 그들 모자 둘을 보는 내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왜 기억 속엔 제멋대로 잔혹한 시간만 남아 독이 된 것일까. 그분 말대로 친절했는데, 왜 유독 날 아프게 한 장면만 지워지지 않아 가슴을 찌르는 것일까.

수업이 끝나고 갑자기 비가 쏟아붓던 오후, 그녀도 다른 엄마들처럼 우산을 가져왔다.

“얘, 무훤아. 우산 가져왔다.”

그녀가 파란색 자동 우산을 내밀었다. 달봉이의 우산은 없었다.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