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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5월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 같은 해 7월14일 혁명군은 바스티유를 점거했다. 이후 혁명이 종결되고 입헌군주제가 잘 정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루이 16세와 제헌의회 의원들은 얼마 안 있어 종교 정책을 놓고 충돌했다. 입헌왕정파인 미라보 백작은 국왕에게 혁명정부와 협력이 불가능할 경우 파리를 떠났다가 돌아올 것을 제안했다.
1791년 6월20일 밤 9시, 루이 16세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두 딸을 데리고 튈르리궁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루브르 옆의 카루젤(Carrousel) 광장. 그곳에는 이들을 태우고 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차의 승객은 객실 관리인 복장을 한 루이 16세와 국왕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그리고 시녀로 분장한 마리 앙트와네트였다. 왕실의 시녀 투르젤은 부유한 남작부인 코르프(Korff)로 변장해 두 딸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역할을 맡았고, 국왕 부부가 그녀를 시중드는 뒤랑부부 역으로 변장한 것이다.
기상천외한 ‘바렌의 도주’가 시작됐다. 짐을 가득 실은 왕의 마차는 로렌 지방의 몽메디(Montmédy) 요새로 향했다.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이 요새에는 왕을 호위하고 안전하게 안내할 프랑스 왕정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다. 루이 16세는 혁명의 압력에서 벗어나 세력을 재편하고 반혁명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오스트리아로 생각하고 최종 피난처를 그곳으로 정했다.
이들은 먼저 파리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 봉디(Bondy)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곳에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친 말들을 새 말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이예(Bouillé) 후작이 파견하기로 한 경기병 부대가 약속 장소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왕 일행은 외딴 집에서 몇 시간 동안 지체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200km 떨어진 도시 샬롱쉬르마른(Châlons-sur-Marne)으로 떠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에페르네와 샬롱-앙-샹파뉴를 지나던 도중 국가 경비대에게 외국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체포됐다. 국왕 일행은 다행히 경비원들을 잘 설득해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베르됭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바렌 앙 아르곤(Varennes-en-Argonne)에 이르러 결국 잡히는 신세가 됐다.
국왕의 실종이 확인된 6월21일 아침, 경보가 내려졌다. 국가 수비대 사령관인 라 파이예트 후작은 도망자들의 체포를 지시하기 위해 사방으로 우편물을 보냈다. 아르곤의 생트 메네울(Sainte-Menehould) 우체국장 장 바티스트 두루에(Jean-Baptiste Drouet)는 이를 통보받고 국경으로 가는 도로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그날 밤 8시, 왕실의 호위대를 발견했다. 왕의 가족의 위장 전술에도 불구하고 드루에는 그들이 국왕 일행인 것을 곧 알아챘다. 늦은 시간임에도 지친 말을 교체해서 여정을 계속하려고 그들이 서둘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루에는 눈썰미가 좋아서 50파운드짜리 지폐의 초상화와 하인 분장을 한 루이 16세의 얼굴이 닮았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우체국장의 신고를 받은 생트 메네울 시의회는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잘 훈련된 기마병을 보냈다. 드루에와 기사는 말을 타고 횡단 경로를 택해 대질주를 시작했고 바렌 앙 아르곤에서 곧 국왕 일행이 탄 마차를 앞질렀다. 이들은 주민들과 지방 경찰관인 식료품점 소스(Sauce)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밤 11시경 국왕 일행이 당도했고 곧바로 체포돼 식료품점에 수감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보러 식료품점 근처로 몰려들었다. 이 일로 드루에는 국민적 스타가 됐고 그 이듬해 9월 국민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1791년 6월23일 아침, 왕과 그의 가족은 엄중한 감시 속에 파리의 튈르리 궁으로 돌아와야 했다. 왕은 잠정적으로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국민의 양해를 구하기 위해 의회는 ‘바렌의 도주’를 도주가 아니라 납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왕정파와 혁명 세력인 공화파 사이의 신뢰는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특히 왕의 행동은 외국과의 유착이나 심지어 배신으로 의심받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공화당원들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해 나갔고 결국 군주제는 1792년 8월10일 폭동에 의해 전복되고 말았다.
사실 ‘바렌 도주’ 계획은 혁명이 일어난 몇 개월 후인 1789년 가을부터 메스에 있는 왕정 지지자인 부이예 후작에 의해 설계됐다. 루이 16세는 도주를 망설였다. 하지만 여러 정치적인 이유와 특히 왕비의 압력에 못 이겨 단행했던 것이다.
3일간의 질주 끝에 왕이 체포된 곳, 바렌 앙 아르곤. 그곳의 시계탑에는 이 역사적 사실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아르덴 지방과 마른 지방의 경계 서쪽에 접해 있는 아르곤 숲 사이에 있는 예쁜 마을 바렌은 이처럼 루이 16세로 인해 역사의 한 명소가 됐다. 그러나 이곳엔 슬픈 역사가 또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에 점령됐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 최전선에 위치했던 이 마을은 4년간의 연이은 폭격으로 거의 모근 게 파괴됐다. 그래도 전쟁이 끝난 1918년, 미군에 의해 해방된 후 재건을 거듭해 로렌 지방의 다른 마을과 달리 완전히 복구됐다.
약 7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이러한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박물관이 세워졌다. 1968년부터 5년간의 공사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 건물은 1914~18년에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며, 열두 개의 피라미드가 있는 지붕과 그 색깔은 군대 막사의 텐트를 연상시킨다. 특히 아르곤 전투와 관련된 조각들은 1915년 말의 지뢰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박물관 옆에 퍼싱(Pershing) 장군의 군대가 바렌을 해방시킨 기념비도 있다. 하지만 이 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루이 16세의 체포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 관한 전시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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