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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24] 백제의 부흥운동 ①
저 간악한 자를 죽이지 않으면 부흥군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8 06:30:20
 
 
풍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할 수 없소. 복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폐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소신은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복신을 겁내지는 마십시오. 그자가 폐하의 뜻을 거스른다면 소신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신을 믿으소서.”
풍왕은 침묵을 지킴으로써 도침의 말에 동의했다.
풍왕은 당사를 불러 일단 거절의 뜻을 밝히고 돌려보냈다.
궁중에 심어 놓은 간자로부터 이 일을 전해 들은 복신은 수하 장군들을 모아 놓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가 군대를 조직해서 당군과 싸우는 것은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몇몇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 하고 있구나.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도침이다. 그자가 폐하의 눈을 가리고 전횡을 일삼으니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도다. 저 간악한 자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 부흥군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복신은 마침내 도침을 없애기로 했다.
 
한편, 임존성으로 보냈던 사신이 성과 없이 돌아오자 당장 유인궤에게 남은 선택지는 강공책뿐이었다. 그는 사비성의 유인원에게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합류하게 했다. 그리고 고종에게 표를 올려 신라군을 움직이도록 했다
당 고종의 사자가 삼년산성에 도착하자 문무왕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장군 김흠(金欽)에게 3만의 군사를 딸려 보냈다.
당과 신라가 임존성에 대한 공세를 준비하는 사이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 장군 생해(生偕)와 함께 술천성(述川城·여주)으로 쳐들어왔다. 요동 방어선에 매달려 있던 당군이 주춤한 틈을 타서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남방에 대한 공세를 재개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백제의 몰락은 고구려에 상당한 타격이었다. 이제 고구려는 당과 신라의 공격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백제의 혼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백제 땅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부흥군의 항전은 고구려에 반가운 일이었다.
당나라 조정에서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잠시 요동 전선에 숨통에 트이자 연개소문은 남방으로 군사를 움직였다. 그는 남쪽의 신라를 제압하지 않고는 당과의 전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습해서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백제 부흥군과 힘을 합쳐 신라군을 압박한다면 요동 방어선의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도 남방에서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뇌음신의 군대는 칠중성(七重城)을 격파하고 곧바로 술천성으로 쳐들어갔다. 고구려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술천성의 신라군은 당황했다. 술천성주는 황급히 삼년산성으로 전령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고구려군의 목표는 술천성이 아니었다. 전령이 삼년산성에 당도하기도 전에 뇌음신은 군사를 돌려 한강 유역 방어의 중심인 북한산성으로 내달렸다.
고구려군의 기민한 움직임은 신라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북한산성은 금방이라도 함락될 듯한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
뇌음신은 군사를 두 대로 나누어 생해가 이끄는 말갈군은 동쪽에 자신은 서쪽에 포진하여 북한산성을 위협했다.
성벽 위에서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살피던 북한산성주 통타천(冬陀川)은 입술을 깨물었다. 성안의 군민은 인근 지역에서 적군을 피해 온 남녀노소를 통틀어 3000명에 미치지 못했기에 수만을 헤아리는 고구려의 정예군과 싸우는 건 무리였다. 이쯤에서 성문을 열고 항복하는 게 현명했다. 하지만 그는 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북한산성은 한강 유역을 지키는 북변의 보루이기에 이곳이 함락되면 일대가 고스란히 고구려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진흥왕 이후로 많은 군사의 피를 뿌리며 힘겹게 지켜 온 땅을 싸워 보지도 않고 뺏길 수는 없었다.
동타천은 성안의 군민을 불러 모았다. 연신 마른기침을 해대는 노인과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아낙, 그리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훔치는 사내아이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순박한 모습이었다.
성 밖에 고구려군이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우리는 달아날 곳이 없다. 이제 우리가 택할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이대로 얌전히 저들의 이빨 아래 목을 내어놓든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우든가 둘 중 하나다. 저들에게 순순히 항복한다면 끌려가서 노비처럼 살망정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다. 끝까지 싸운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버텨 내면 당당하게 구원군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성주를 바라보고 있던 백성은 숙연해졌다. 이국으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것이 나았다. 만에 하나 구원군이 당도할 때까지 막아 낼 수 있다면 그보다 떳떳한 일은 없었다.
 
무리 가운데서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노인의 외침에 전염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결의에 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전의를 불태우는 백성을 보며 동타천은 가슴이 벅찼다.
그대들의 뜻을 잘 알겠다. 이제 우리는 적병을 맞아 싸울 것이다. 내 목숨을 걸고 장담하노니 우리는 기필코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리라!”
성주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를 신호로 군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북한산성을 향한 고구려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동서 양 진영에 설치된 포차들로부터 일제히 바위가 날아올랐다. 돌덩이는 성벽과 성안의 집 위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성벽이 패이고 민가의 지붕이 주저앉았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 탓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속출했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돌덩이 세례에 성벽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동타천은 날아오는 돌덩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는 듯 침착하게 지시했다.
보루에 있는 군사들은 성 밖에 마름쇠를 뿌려 적군의 진격을 막아라. 장정들은 안양사 창고를 헐어 목재를 확보하고 아녀자와 노인들은 소가죽을 운반해 와라.”
석포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겁을 먹고 움츠렸던 군민들은 성주의 당당한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덩어리가 동타천을 피해 가는 것은 하늘의 가호가 있기 때문이라 믿었다.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잠시 후, 성 주변에 마름쇠가 뿌려졌다. 고구려 군사들은 성으로 접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안양사의 창고를 뜯어 얻은 목재가 성벽으로 속속 도착했다. 신라 군사들은 이 목재를 이용해 성벽이 허물어진 부분에 목책을 세우고 그 위에 소가죽을 씌웠다.
석포 공격이 멈추는가 싶더니 곧이어 고구려군이 함성을 지르며 성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막대한 피해를 본 북한산성의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했으리라 여기고 거리낌 없이 내달렸다. 그런데 앞에서 달리던 군사가 하나둘씩 발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고구려 군사들이 놀라서 땅바닥을 살피니 사방에 마름쇠가 뿌려져 있었다.
그들이 주춤하고 있을 때 성벽에서 화살이 새카맣게 날아왔다. 발아래를 살피고 있던 고구려 군사들은 피할 사이도 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방심하고 있던 뇌음신은 신라군의 거센 저항에 놀라서 군사를 후퇴시켰다. 그 가운데도 많은 군사가 화살에 꿰여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성벽 주위가 화살 밭이 됐다.
다음 날, 전열을 가다듬은 고구려군은 다시 북한산성으로 쳐들어갔다. 신라군의 만만치 않은 방어를 경험했던 터라 이번에는 신중을 기해 공격했다. 포차를 더욱 성벽 가까이 붙인 후에 궁노수를 전면에 배치해서 석포와 노를 이용한 공격을 병행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신라군의 거센 반격에 막혀 성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20여 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양쪽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성안의 사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나서 성민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화살 역시 여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다.
더욱이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구원군이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성민을 다독이기는 했지만 성주 동타천의 마음속에서도 의심이 일어났다. 조정이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이제껏 구원군이 당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성주는 자기를 믿고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운 성민들에게 죄스러웠다.
동타천은 고구려군이 물러난 틈을 타서 군민들을 모이게 했다. 이미 수효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부상을 당하거나 굶주림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대들의 충정과 희생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이제 할 만큼 했다. 더는 그대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다. 만일 내일까지 구원군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내 목을 베어 적에게 들고 가라. 그리하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을 받게 되리라.”
성주의 비장한 결심을 듣고 성민은 엎드려 흐느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파가 성주의 발 아래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찌 성주님을 죽이고 우리만 살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당신과 생사를 함께할 겁니다.”
동타천은 눈물을 참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대체 조정에서는 무얼 하고 있단 말이냐! 정녕 이 가엾은 백성이 몰살당하는 꼴을 봐야겠단 말인가!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굽어살피소서!”
백성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그날 밤,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큰비가 내렸다. 삽시간에 불어난 물이 계곡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고구려군의 막사를 덮쳤다. 군사들은 미리 눈치채고 대피했지만, 미처 옮기지 못한 상당량의 식량과 무기가 물에 쓸려 내려갔다. 이미 장마철이 지났기에 안심하고 계곡 근처에 진을 친 게 화근이었다. 오랜 공성전으로 지친 고구려 군사들에게는 크나큰 타격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전령이 와서 당나라 수군이 비사성 앞바다에 나타났다는 급보를 전했다. 곧바로 철군하여 평양성 방어에 부대를 투입하라는 명이었다.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신라를 견제하고 백제 부흥군을 돕는 일보다 당군의 침략을 격퇴하는 게 우선이었다.
뇌음신은 지금 상태에서 북한산성을 공격해 봤자 희생만 키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신라 군사들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남은 힘을 모두 끌어내어 싸운다면 성을 함락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킬 병력을 남겨둘 만한 여력은 없었다. 당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막는 것이 성 하나를 빼앗는 것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뇌음신은 생해와 의논해서 군사들에게 철군 명령을 내렸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고구려 진영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동타천은 성문을 열고 척후대를 내보냈다. 얼마 후, 돌아온 척후병은 고구려 진영이 텅 비어 있다고 알렸다. 성주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감사했다.
 
복신은 김흠이 이끄는 신라군이 사비성의 당군과 합류하기 위해 백제 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친히 군사를 이끌고 주류성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는 복신의 추종 세력들이 여전히 당군에 맞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도침은 임존성에서 적군을 맞아 싸우자고 주장했지만 복신은 가만히 앉아서 적이 오는 것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주류성 일대의 백제 부흥군 세력을 규합해 나당연합군을 격파함으로써 도침에게 밀린 형세를 뒤집고자 했다.
사방에서 일어난 백제 부흥군의 반격으로 고립된 유인궤는 신라의 구원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신라군과 힘을 합친 후 전력을 기울여 임존성 공격에 나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어그러진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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