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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날개 잃은 천사의 슬픈 기억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6 17:10:45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노동절인 51일 서울 광화문과 을지로·청계천·종로 도심 일대는 교통지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민주노총의 깃발과 종북좌파의 함성이 도심의 모든 소음을 장악했다. 필자는 이날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탈북인들이 제작한 영화 도토리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종로로 향했다. 도토리’는 거대한 감옥 국가인 북한의 인권탄압과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을 사실감 있게 파헤친 논픽션 영화다.
 
인사동과 낙원상가 그리고 종로3가 송해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북적거렸다. 오후가 되자 익선동 포장마차는 청춘남녀들의 해방구가 되었다. 그 한켠인 낙원상가 삼거리에 자리를 잡고 버스킹을 준비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쳐다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현수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노래와 이야기를 들었다. 멘트가 끝나자 여성이 물었다. “버스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현수막 내용을 전하고 싶어서요.” 현수막에는 멸종동물과 잊혀진 전쟁, 탈북 동포들의 인권유린 상황과 위기 청소년들의 사진과 함께 ‘How much is your conscience?(당신의 양심은 얼마입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간이 끝나 나는 음향 장비를 차에 싣기 위해 정리를 했다. 여성은 뭔가 아쉬웠는지 도와주겠다며 여러 개의 전기 선을 감아 주었다.
 
재즈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는 카페 안은 익선동의 풍류와는 동떨어졌지만 블랙의 중후함이 안정감을 주었다. “남북함께국민연합과 긍정의힘은 어떤 단체인가요?” 여성은 현수막에 쓰인 주최 단체에 관해 물었다. “남북함께는 탈북 동포 인권단체이고 긍정의힘은 가출 청소년 보호단체라네.” “왜 이런 걸 하시죠?” “난 오랬동안 세 가지 활동을 해 왔는데 환경·인권·사회정의를 위한 거였지.”
 
침묵을 지키던 여성이 또다시 질문했다. “정의란 무엇일까요?” “정의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솔직한 감정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표현이자 행동이 아닐까?” “단장님이 차를 운전하는데 차량 고장으로 5명을 칠 상황에서 핸들만 틀면 1명만 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그리고 어떤 게 정의일까요?” “….
 
“5명을 치는 것은 차량 고장이라 어쩔 수 없지만 핸들을 틀어 1명을 치는 것은 살인이래요.” “그렇지. 그리고 그 한 명이 사랑하는 가족이거나 연인이라면 결과는 또 달라지겠지.” “그렇겠죠.”
 
늦은 밤이 되자 카페 안은 더 붐볐다. 대화 중 그녀는 느닷없이 옷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목을 보여 주었다. 팔뚝엔 수십 개의 칼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목에도 칼자국이 있었다.
 
엄마는 자살했어요. 우울증이었죠. 10여 년 전 엄마는 늘 저에게 함께 죽자고 했죠. 그게 현실이 될 줄 몰랐어요. 그리고 그룹홈에서 자랐죠. 그런데 제가 자해를 한 것이 제 목숨을 살린 것이더라고요.”
 
나는 할 말을 잃었고다. 그녀가 왜 버스킹 장소 바로 앞까지 와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맴돌았는지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내 아들이 위기 청소년들의 자해를 막기 위해 스스로 양 손목에 칼로 수십번 그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표정이 한결 밝아진 그녀가 말을 이어 갔다. “00대학 문예창작과 졸업반이에요. 놀고먹는 과죠. (하하)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 2개를 주면서 칼럼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평가 숙제를 매일 냈어요. 중학교밖에 안 나온 엄마가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겠지만 엄마에게서 칭찬받는 게 좋아 열심히 숙제를 했죠. 그래서 항상 논문 평가는 전교 1등을 했어요. 그런 엄마가 죽기 전 제게 일기장을 주면서 문창과에 가면 엄마 이야기를 꼭 써 달라고 하더군요.”
 
나는 말했다. “엄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다행이군.” “모범생은 권력이에요. 공부를 잘하면 같은 반 애들이나 선생님은 제 눈치를 보죠. 저는 그게 좋아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뇌와 다리를 다쳐 잘 걷지 못하죠.”
 
밤이 늦어 우리는 카페를 나와 버스킹 장소인 낙원상가 삼거리까지 걸었다. 좌우엔 포장마차에서 깔아 놓은 탁자가 불야성을 이루며 청춘남녀의 발길을 잡았다.
 
걷다가 옆을 보니 그녀가 한참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뿔싸!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아드님이 손목에 자해를 했기 때문에 살아난 거예요.” 그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전 늘 혼자였어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이런 곳에서 뭔가 먹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제겐 그럴 사람이 없었죠. 단장님과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자살로 가정이 해체되고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그 순간,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는 그녀의 짧은 인생에 얼마나 아픈 절망으로 다가왔을까.
 
12. 탑골공원으로 가는 골목 마지막 가로등불 아래엔 노숙자들이 자신들만의 세상 속에서 둘러앉아 놓쳐 버린 희망을 쪼아대고 있었다. 반대편 불 꺼진 익선동 골목길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 시대 청년들의 수많은 일상을 이미 죽을 만큼 경험해 버린 슬픈 기억으로 날개를 잃은 천사가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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