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프랑스의 최고 왕 성 루이와 퐁투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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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부 와즈강이 흐르는 중세의 교차로
우아즈 강변에 성 루이 왕이 최초의 병원 오텔-디외 신설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4 09:00:26

프랑스인들이 역사의 인물 중 최고로 치는 성 루이(Saint Louis) 왕. 그가 죽은 지 70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왜 그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는 걸까? 성 루이왕은 루이 9세의 다른 이름이다. 44년간을 통치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그 이유는 루이 9세가 묻힌 무덤에서 일어난 기적과 치료 때문이었다. 그가 죽은 지 2년 만에 교회는 그의 시성재판에 들어갔다. 오랜 조사 끝에 교황 보니파스 8세(Boniface VIII)는 루이 9세가 죽은 지 27년 만인 1297년 그를 가톨릭교회의 성자로 추대했다. 또한 교회는 그가 죽은 8월25일을 축제일로 정했다. 그간 교회는 종교인만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전통이 있었으나 평신도인 루이 9세를 성인으로 추대함으로써 그 전통이 깨졌다.

그렇다면 성 루이, 그는 누구인가? 1214년 4월25일 루이 8세와 블랑쉬 드 카스티유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남인 형이 죽자 그는 열두 살에 왕관을 썼다. 그로부터 장장 반세기를 통치하면서 카페왕국을 최고의 국가로 만들었다. 용감하고 전투적인 기사, 교묘하고 지혜로운 군주, 충실한 남편, 종교적으로 매우 경건한 그는 중세 기독교 왕의 모델이었다. 이 왕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절제하며, 성금요일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여 채찍을 맞는 금욕주의자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장 약한 자의 권리를 옹호한 군주였던 것이다.

생 루이는 기적의 왕이다. 열 두 살에 중병에 걸려 오랜 동안 생사를 헤맸지만 서른 살에 기적처럼 살아났다. 이는 그의 어머니의 덕이라고 봐야 한다. 어린 아들을 대신해 프랑스 왕국을 섭정하던 카스티유는 아들의 건강을 걱정해 파리 북부 퐁투아즈(Pontoise)로 거처를 옮겼다. 소란스런 파리를 벗어나 아들이 경건한 교육과 건강한 우주의 기원을 받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녀는 탁발수도회의 수도사들에게 어린 아들의 교육을 맡겼다.

루이 9세는 통치 기간 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 100년 전쟁을 종식시켰고 외교·정의와 자선을 매우 중시했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건영주의 권한을 완화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별명은 프뤼돔(심판관)이었다. 그는 또한 건축 왕이었다. 그는 건설한 첫 번째 성당은 1257년에 지어진 노트르담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기적의 성모’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그는 또한 대학과 빼어난 종교 건축물(생트 샤펠·노트르담)을 지어 파리를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 플랑드르와 롬바르디아에 샴페인 박람회를 열어 상업을 활성화 시키고 역동적인 도시 부르주아의 탄생을 자극했다. 이처럼 루이 9세는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의 13세기는 성 루이의 세기(Siècle de Saint Louis)”라는 표현은 이런 연유로 생긴 것이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을 하나 뽑으라면 주저 없이 병원시설을 들고 싶다. 루이 9세는 1259년 우아즈 강둑에 오텔 디외(Hôtel-Dieu)를 건설했다. 이 건물은 퐁투아즈에 처음으로 문을 연 일종의 공공 병원이었다. 병든 사람·노인·장애인·고아들을 자선의 마음으로 맞이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이 관리한 이 시설은 퐁투아즈의 생 마클루(Saint-Maclou) 대성당 맞은편에 설치됐다. 이는 이전 병원보다 두 배 더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규모였다.

우아즈(Oise) 강변에 위치한 퐁투아즈는 루이 9세의 특권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파리 북서부 25킬로 지점에 있는 이 도시는 파리와 노르망디의 수도였던 루앙(Rouen) 간의 교차로이자 교류의 장소였다. 지리적 자산을 매우 빠르게 활용해 파리의 전초기지로 수세기 동안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사실 퐁투아즈는 10세기부터 파리와 왕실을 방어하는 국경도시로 자리매김했다. 12세기와 13세기에는 번영의 상징이었다. 특히 13세기 루이 9세의 어머니 카스티유는 모뷔송 수도원을 설립하고 정기적인 방문했다. 이런 연고로 퐁투아즈는 루이 9세와 불가분의 도시가 된 것이다. 이 도시는 상인들이 만나는 특권적인 교차로였다. 비오네(Viosne) 강을 따라 열린 퐁투아즈의 시장은 장인·상인 및 기업가들을 불러 모았고 덕분에 인구가 팽창해 갔다.

그러나 백년 전쟁과 프랑스 왕국의 확장으로 도시는 곧 허약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퐁투아즈는 지금도 중세의 흔적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생 마클루 성당은 지금도 변함없이 도시를 지키고 있고 수많은 지하 동굴과 지하실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도시는 화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인상파 화가는 퐁투아즈만을 그의 그림 소재로 삼아 특화시켰다. 그가 처음으로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은 1866년. 철도역이 개통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열차가 개통되자 이 도시는 파리에서 불과 50분이면 갈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손쉽게 시골풍경을 접근할 수 있어 피사로는 자주 퐁투아즈로 떠났다. 특히 이곳의 시장들은 매우 잘 보존돼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피사로는 결국 이 도시에 반해 이사를 하고 말았다. 그는 오래 정주하면서 이 마을을 모두 화폭에 담았다. 그가 남긴 우아즈의 반사, 활기찬 다리, 그리고 그가 수없이 캔버스에 재현한 퐁투아즈의 다양한 들판들은 세계인에게 퐁투아즈가 어딘지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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