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조 적자 내고도 인력 늘리고 월급 올린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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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대한민국 산업사에 최대급 적자 기록
손실 급증 속 280명 늘리고 기본급도 인상
전기료 올려달라며 낸 건 ‘뻥튀기 자구책’뿐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09 00:02:02

한국전력이 작년에 낸 적자는 33조 원이다. 자본금 4조 원, 연 매출 70조 원인 회사가 1년 동안 기록한 적자 규모다. 한전의 경영 평가 성적은 공기업 부실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한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문재인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 있지만 전 정권 탓만 하는 한전에 대해 염치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전의 경영 평가 성적을 보면 공기업의 부실화 실상을 알 수 있다. 공공기관 경영 정보 시스템에서 국내 공기업 32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2021년 평가에서 한전은 32개 공기업 중 중간 수준에 그쳤다. 노동생산성 18위, 자본생산성 14위 등이다. 자산이나 매출은 1·2위를 다투는데 성적표는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한전의 적자를 임직원 2만3000명으로 나누면 1인당 14억3110만 원의 손실이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불과 1년 전인 2021년 1인당 손실은 3억 원. 중소 도시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전의 자구안에 인원 감축이나 임금 삭감 등 획기적인 내용은 없다. 민간 기업이라면 꿈도 못 꿀 적자를 내놓고도 스스로 희생 없이 눈 가리기에만 급급하다. 오히려 이 기간 한전의 인원은 증가했고, 급여는 다른 공공기관처럼 1.4% 올렸다. 위기에 둔감한 한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전은 지난해 정부에 보고한 14조3000억 원의 자구안에서 적자의 절반가량을 ‘자산 재평가’로 확충한다고 밝혔다. 한전이 보유한 토지의 장부 가치는 6조2000억 원에 이르는데, 이를 내년에 감정평가를 받아 7조 원을 장부에서 늘려 13조2000억 원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재평가를 통해 가격표만 두 배로 높여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인력도 급여도 깎지 않은 한전이 내세운 자구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상당 부분 손실을 민간과 자회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지난해 말부터 전기를 사고 줘야 할 대금을 후려치는 이른바 전력 도매가격(SMP) 상한제를 도입했다. 에너지 전문가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최후 보루 격인 한전이 정권의 코드에 순응하기만 했음을 감안할 때 책임을 외부에만 전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전 지분 1.27%를 보유한 영국 투자회사 실체스터인터내셔널은 요금 인상을 촉구하는 항의 서한을 한전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전 경영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문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 있다. 그럼에도 정권의 정책을 앞장서 수행한 한전이 이제 와선 제대로 된 자구책도 내놓지 않고, 전 정권만 탓하는 건 무책임하다. 대우조선해양은 2012년부터 적자가 쌓이며 4년간 5조 원에 가까운 부실이 누적되자, 2016년 인력 20% 이상 감축과 임금 10% 이상 반납, 자회사 매각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추가 자구 계획을 내놨다.

대우조선 노조는 철밥통의 상징 같은 민주노총의 핵심 산하 조직이었다. 2015년 말 1만3200명에 달했던 직원은 3년 뒤인 2018년 말에는 9900명대로 줄었고, 자구 계획이 마무리된 지난해 말에는 86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대규모 적자에도 작년 1년 동안 280명이 늘어난 한전과 차이가 크다.

지난해 한전의 적자 규모 33조 원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불명예스러운 신기록이자 세계적으로도 역대 10~20위권에 든다. 이런 적자는 세계적 금융위기 때나 볼 수 있을 뿐, 일반적 기업 경영 활동에선 전례가 없다. 일반 기업이 이런 대규모 적자를 봤다면 회사 전체에 급여삭감·정리해고 같은 칼바람이 불었겠지만, 한전에서 지난해 성과급을 반납한 사람은 2만3000여 명 중 1.5% 수준인 360명 수준이다. 민간 기업에서 이 정도 부실이 발생했다면 진즉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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