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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이야기 [4] 서대문은 왜 흔적조차 없을까?
1396년 건립해 1915년 전차 복선화로 철거
교통·보상 문제로 돈의문 복원 사업 백지화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18 19:20:15
 
▲ 정동사거리 돈의문 터 표지판. 임유이 기자
 
서울 서대문역 부근 정동사거리에 길쭉한 표지석(실은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 표지석에는 성문을 찍은 희미한 흑백 사진과 함께 돈의문 터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서울 사대문의 하나인 돈의문(敦義門)은 조선 건국기 한양도성 축조와 맞물려 1396(태조 5) 건립되었다. 의를 두텁게 한다는 뜻으로 유교 덕목 인의예지신 중 서쪽을 의미하는 를 따서 지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쪽에 있다 하여 서대문이 있다.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돈의문은 세종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새로 지은 서대문을 신문또는 새문이라 불렀다. 이 명칭은 지금 새문안로·새문안교회에 남아 있다.
 
돈의문은 강화도와 의주를 잇는 간선도로 한복판에 자리했기에 외국 사절은 이 문을 이용해 한양을 방문하고 우리 사절은 이 문을 이용해 외국으로 나갔다. 말하자면 그 시절 해외여행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 철거 전 돈의문(위)과 돈의문 현판. 한양도성박물관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이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는 전차 궤도 복선화 사업을 이유로 미련 없이 철거했다. 한양은 전형적인 성곽 도시였다. 성문은 새벽 4시에 열려 밤 10시면 닫혔다. 돈의문이 무너지면서 성곽 도시 한양이라는 이름도 빛이 바랬다.
 
흥인지문(동대문)은 경우가 달랐다. 일제는 자기들이 입성한 문이라 하여 부수는 대신 전차가 우회하여 지나도록 했다. 전차 노선과 무관했던 북문(숙정문)과 남대문(숭례문)도 그대로 남았으니 사대문 중 서대문만 파손된 꼴이 됐다. 훗날 재건했으면 좋았으련만 교통·보상 문제로 없던 일이 되었다.
 
웅장한 돌축대 한 가운데에 커다란 아치(무지개문)가 뚫려 있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의 초루를 세운 돈의문은 유물도 유적도 아닌 이름만 남은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고 돈의문의 흔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10427일 서울시에서 돈의문 현판 찾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돈의문 복원사업을 위해 고증자료를 모으던 중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돈의문 실물 현판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앞면에는 敦義門세 글자가, 뒷면에는 신묘년(1711) 1115일 유학 조윤덕이 쓰고, 기사년(1749) 218일 영건소에서 개조라는 내용이 음각으로 있다.
 
성문이 있으면 성곽도 있을 터. 정동 내 창덕여중 건물 신축을 위해 운동장을 파헤치던 중 도성의 흔적이 발견됐다. 땅 밑에 잠들어 있던 수도 한양이 잠깐이나마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서대문은 왜 서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을까? 원래 서대문은 서대문구에 있었다. 하지만 중구와 종로구가 팽창하면서 서대문구를 외곽으로 밀어냈다. 서대문 터와 서대문역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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