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의원 보좌관 中간첩 혐의 체포… 6월 선거 앞두고 뒤숭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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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AfD 소속 유럽의회 의원실, 수년간 내부 전산시스템 민감 문건에 접근
중국 출신 독일국적자 지안G… 기밀유출 및 반체제인사 감시 혐의
일부 유럽의회 의원 ‘친러 세력’ 뒷돈 수수 의혹 주장 나와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9 17:10:05

▲ 독일대안당 소속 믹시밀리안 크라 유럽의회 의원실이 지난 수년간 유럽의회 내부 전산시스템 속 '민감한 정보'에 접근했다고 미국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지난주 크라 의원은 중국 출신 보좌관이 간첩혐의로 체포되자 즉각 그를 해고하는 등 선긋기에 나섰으나 평소 친중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연합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중국·러시아의 개입 우려가 고조돼 왔다. 유럽연합(EU)의 기존 에너지정책에 반기를 들며 약진할 기세인 후보들 공약이 결과적으로 중·러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주목된다. 유럽의회 일부 의원이 ‘친러시아 선전 세력’의 뒷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고 각국 당국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27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보도가 눈길을 끈다. 폴리티코는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 말을 인용해 독일대안당(AfD) 소속 막시밀리안 크라(47) 유럽의회 의원실이 “수년간 유럽의회 내부 전산시스템 내 일부 제한적이며 민감한 문건에 접근했다”고 확인한 내용이다. ‘제한적이고 민감한’ 서류가 전부 기밀 문건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랑게 위원장도 “크라 의원실이 접근 금지된 기밀 문건을 열람하거나 수령한 사실은 없다. 스캔들의 전체 규모가 아직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크라 의원이 평소 친중을 강조해 왔으며 중·러 스파이 활동 및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어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 1974년 냉전의 한복판에서 빌리 브란트 총리를 사임하게 만든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브란트 총리의 비서 귄터 기욤은 동독 첩보조직 슈타지 소속 인민군 장교였다. 1956년 29세 때 아내와 서독으로 건너 와 자리잡은 후 능력·인성 모두 뛰어난 ‘영민하고 부지런한 공직자’로 평가 받았던 인물이다. 완전히 신뢰를 얻은 다음 원래 임무를 수행한 대표적인 ‘장기전’ 성공 사례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크라 의원실은 폴리티코 보도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한 상태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AfD의 EU 집행위원장 슈피첸칸디다트(선도 후보)로 나서는 크라 의원에 중·러 금품수수 의혹이 뒤따르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중국 출신 독일국적자인 보좌관 지안G(43)가 22일(현지시간) 독일 검찰에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1월 유럽의회 협상·결정 관련 정보를 중국 측에 넘긴 혐의다.

크라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부인하며 보좌관 지안G가 체포 당하자 그를 해고하는 등 재빨리 ‘선 긋기’를 했으나 보다 광범위한 조사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유럽의회 녹색당은 지난주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포괄적 내부 조사를 촉구했다.

독일 검찰은 22일 지안G를 포함해 4명을 체포했다. 헤르비히 F(72) 등 다른 용의자 3명에겐 독일 대학과 기술협력을 가장해 군함 엔진부품 기술 등을 입수해 중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가 걸려 있다. 지안G는 크라의 보좌관이 된 2019년 이전부터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중국 정보기관을 대신해 독일 내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한 혐의도 받는다.

현지 매체 슈피겔·베를리너차이퉁 등에 따르면 지안G는 독일 내 중국 태양광·무역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만나 중국의 티베트 탄압을 비판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반체제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것이 독일 정보당국에 접근할 때 활용됐을 수 있다. 그가 10년 전 첩보 제공을 빌미로 독일 정보당국에 접근하자 당국에선 이중간첩 가능성을 의심했다고 전해진다.

크라 의원은 “유럽이 미국의 속국 아닌 독립적 주체가 되려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자 애써야 한다”고 말해 왔으며 러시아 관련한 혐의도 있다. 17일 슈피겔과 ZDF방송이 2021년 12월 그가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미 연방수사국(FBI)의 심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친러 성향의 전직 우크라이나 의원으로부터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수령한 사실 때문이다.

한편 얼마 전 영국에서 전직 의회 연구관 두 명이 대(對)중국 기밀유출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독일의 중국간첩 소식까지 전해지자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른바 ‘중국간첩 위협론’이란 유럽 공론장에서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최근 중국과 유럽의 고위급 교류를 전후해 대대적인 공작성 부풀리기가 또 출현했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그는 영국·독일 사건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강경한 어조로 “냉전적 사고를 버리길 바란다”며 “중국이 정보를 훔쳤다는 말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악의적 비방임을 다시 강조한다”고 답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