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거버넌스’ 멈추면 국민 고통만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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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과정의 후진성과 극단적 이기주의 집단에 의해 국익 표류
‘동료시민’ 의식의 출발은 사회적 합의 메커니즘 혁신으로부터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8 06:31:30

의료 대란으로 나라 전체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환자의 병원이나 의사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와 의사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언제쯤 이런 혼돈 상태가 종식될 것인지 기약이 없다. 정부도 칼을 거두지 않을 기세지만 의사들 또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착잡하고 불안하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잊힐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 공동체에서 의사가 가진 힘이 그 어떤 집단보다도 강력함을 실감하게 된다. 정부가 회유와 강경 압박, 즉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구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년간 정부와 의사 단체 간 28차례나 조정 과정을 거쳤다는데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당장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국민이 많다 보니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환자를 볼모로 정부로부터 포기각서를 받아 내겠다는 저의를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의사 증원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도 뒤늦게 당위성에 대한 수치를 제시하고, 심지어 우리와 유사한 외국의 사례까지 인용하면서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다. 고령화에 대비하고 지역 의료를 살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임에도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미뤄 왔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의사 측에서도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으나 국민 관점에서 보면 설득력이 미약하다. 오직 자기 밥그릇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더 지배적이다.

정부도 졸속 강행 처리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의사 부족 수와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실시간 혹은 지역별로 상황을 체크한 다음 연도별 증원 수 등을 체계적으로 시뮬레이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KDI·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서울대의 연구 결과에 의존해 이런 중요한 결정을 졸속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2000명을 증원하더라도 현재 국내 의과대학 인프라로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불신감이 더 확대된다. 뒤늦게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장들이 교육 현장의 혼란을 막으려면 연간 350명 수준의 증원이 적절하다고 정부의 입장과 상이한 의견을 발표했다. 정부는 특히 사각지대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 과목의 수가 인상, 의사에 대한 민·형사 법적 책임 완화 등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장치가 미흡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지속 가능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우리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후진성이다. 경제·인구 동태·시간과 공간·정치·환경 등 로컬 영역에서 글로벌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맥락과 추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자원이라는 제약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가 책임감을 갖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장치인 ‘거버넌스(Governence)’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정부의 효율적인 공공 정책 및 서비스 제공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합된 새로운 통치 및 국가 운영체제를 의미한다. 정상적인 국가일수록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갈등이 격화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진영 논리와 기득권 이익 챙기기가 극에 달하면서 국가 중대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표류하거나 글로벌 추세와 동떨어진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국가 경쟁력이 뒷걸음질 치고 국민의 삶은 고통스럽다.

수년간 공전을 거듭해 온 ‘중대재해법’도 이번 의료 분쟁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과 환자를 저당 잡아 특정 집단이 이익을 고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정부나 정치 집단의 대응도 한심하다. 시장의 논리로 풀어 가지 않고 매사에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난 16년간 2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임기응변적이고 상황 회피에 급급하다. 정권이 바뀌면 앞에 있는 것을 모두 뒤엎고 새로 시작한다.

정부의 비효율적 대처와 무능·탐욕의 정치적 집단, 그리고 극단적 이익 추구에 함몰된 이기적 집단에 의해 국민에겐 고통 분담이 아닌 전담의 족쇄가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 또한 치졸하고 매우 단선적이다.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데이터와 절차적 투명성·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함으로써 그 후유증과 국익 손실이 너무 크다. 이런 분위기로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담론이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언젠가는 수습이 되겠지만 또 사후약방식 땜질 처방이 나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요즘 정치 신인인 여당 대표가 자주 사용하는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이라는 단어가 신선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기도 하다. 시민·국민과의 연대와 결속을 통해 공통선을 추구하자는 것이 서구 국가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의 참뜻이다. 그러므로 부디 그 의미를 살려 사회적 의사결정 메커니즘부터 솔선수범해 혁신의 과제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