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한국 고질병 ‘사회적 자본 고갈’ 멈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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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앞에 진영 논리 내세우는 집단 교체해야
성숙한 국가는 역사에 대한 균형적 감각 유지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0 06:31:30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물적자본·인적자본·사회적자본이란 3대 자본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다. 국가가 발전하고 성숙할수록 이 중 제3세대 자본이라는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이의 크기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결정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연·지식·문화자본 등까지 가세하여 특정 국가의 경쟁력 평가에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부(富)의 축적을 통해 선진국 혹은 경제 대국에 도달한 다수 국가가 사회적자본의 고갈로 정점에서 내려오거나 장기간 수렁에 빠지는 현상이 흔히 목격된다. 사회 구성원 간의 네트워크·의존성·신뢰 등의 상호작용이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적 혹은 물적 요소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이는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대다수 국가가 성장의 동력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채택하면서 일정 기간 고도성장으로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이 형성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회적자본도 긍정적으로 작동하지만, 어느 시점엔가 균열이 생겨난다. 위기의 시기가 닥치면 이를 잘 극복하는 국가가 있지만 반대로 국가의 동력이 상실되면서 어렵게 쌓아 올린 자본을 허망하게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지역·세대·남녀·이념 등의 갈등으로 사회는 진영으로 분열하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분출한다. 리더십이 흔들리고 선전·선동이 난무하면서 객관적인 공정과 정의가 실종된 우울한 시기가 계속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러한 역사의 반복이 일상화되고 있다. 잘나가던 국가가 하루아침에 주저앉고, 반대로 바닥을 헤매던 국가가 갑자기 반전의 기회를 잡기도 한다.

사회적 자본이 약화되고 있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격차의 확대를 역이용해 집단 이성을 붕괴시키면서 이를 기회로 사회 구조 전반을 일시에 뒤집으려는 충동이 발생한다. 반목과 대립의 구도를 만들어 오랜 시간에 걸쳐 동조 세력을 결집하면서 세력화한다. 사실과 진실을 왜곡시키면서 진영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맹목적으로 자기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사회가 가진 치명적 약점은 국익은 그 어디에도 없고 진영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비이성적 논리로 포장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와 군중 호도를 일삼는다. 갈수록 이성이 마비되어 사회는 불안해지고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단절시킬 만한 움직임이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숙한 국가일수록 상대적으로 사회 갈등이 적고 정상적인 상태로의 복원력이 크다. 특히 국익이 놓인 결정적 사안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게 한목소리를 낸다. 정치적 혹은 사회적 긴장감이 늘 있기는 하지만 경제나 안보 등 국가적 이익이 걸린 현안에 대해서는 분열이 없다. 일례로 미국의 현 바이든 정권이나 전 트럼프 정권이 사사건건 격돌하고 있지만, 미국의 이익과 관련한 노선에는 한 치의 다름이 없다. 요즘과 같이 지역별로 국지적인 전쟁이 끊이지 않고, 경제적 이익 확보를 위한 편가르기와 이합집산의 행태가 노골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업이나 개인의 해외 의존도가 높을수록 정부나 정치권이 이들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정쟁을 지양하면서 합리적 대응책을 찾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역사에는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 후세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教師)로 삼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한다. 현명한 국가나 사회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균형적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국가의 역사박물관에 가 보면 지나간 시대의 유산이나 주요 인물의 행적에 대해 소상하고 가감 없이 전달하면서 평가는 후손에게 맡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미성숙한 국가에서는 특정 집단이 역사를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념화하여 선전 도구로 삼는다. 시대에 따라 평가와 해석이 수시로 바뀌면서 같은 시기에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 간에도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켜 때로는 살벌한 사회적 분위기가 수시로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과거 행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누적 관람객 50만 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길 위에 김대중’이라는 영화도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로를 깎아내리는 상호 비방이나 인신공격까지 빚어지고 있다. 무늬만으로 어설프게 생성된 우리 사회의 어리석은 보수와 진보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오랜 기간 잠자던 보편적 상식이 그간의 가짜 프레임을 걷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우나 좌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 세력의 결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운동권을 비롯한 구태의연한 정치권력의 낡고 해묵은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인가. 막연하지만 4월 총선에 다시 작은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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