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골프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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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골프 해방구

박병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3 06:30:30

▲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미국 애리조나의 TPC 스코츠데일 스타디움 코스 16번홀(파3). WM 피닉스오픈

골프 경기의 관람객을 갤러리(gallery)라고 한다. 갤러리란 원래 복도·화랑·극장의 발코니 등을 뜻한다. 골프 관람객들이 페어웨이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이 화랑을 연상시키고 화랑에서 미술작품을 관람하듯 조용히 눈으로만 플레이를 지켜본다고 하여 의미가 추가된 듯하다. 선수가 샷을 할 때 갤러리는 움직이거나 떠들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려 플레이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한국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WM 피닉스 오픈(총상금 880만 달러· 약 117억 원)은 골프의 이러한 갤러리 문화를 부정한다. 골프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대회로 유명하다.

피닉스 오픈은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는 반대 컨셉트다. 마스터스에서는 갤러리가 뛰어도 안 되고, 졸아도 안 되고, 손뼉 칠 때 등을 제외하면 소리를 내도 경고를 받는다. 적막과 엄숙함 그 자체다. 핸드폰을 몰래 갖고 들어갔다가 발각되면 평생 출입금지를 당하며 맥주를 그린으로 던졌다가는 철창 신세를 질 게 뻔하다.

그런데 피닉스 오픈은 ‘골프 해방구’로 유명하다. 반면 선수들에게는 ‘지옥’이다.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16번 홀(파3)은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사방을 스탠드로 둘러쌌다. 마치 야구장 같다.

우리가 설날 연휴를 보내는 동안 미국 애리조나의 사막지대에 조성된 TPC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코스 16번 홀엔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이 재현됐다. 지붕만 없을 뿐 마치 실내 경기장처럼 느껴진다.

2만 석 규모의 16번 홀 관중석은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 흥겹게 응원하는 장소다. 티샷을 그린 위에 못 올리는 선수들의 실수에는 야유가 쏟아지고 굿 샷에는 어김없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는 곳이 ‘골프 해방구’다. 더러는 선수와 갤러리들 간에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 대회만의 매력이다.

1932년 아리조나 오픈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골프가 정숙해야 한다는 인식을 180도 바꾼 발상의 전환으로 인기 대회로 떠올랐다. 다른 대회들은 피닉스 오픈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고 싶어 한다. 몇 해 전 국내에서도 이를 모방한 적이 있지만 실패로 끝났다. 모든 곳이 ‘골프 해방구’가 된다면 일상적인 곳이지 해방구는 결코 아니다. ‘골프 해방구’는 거대 강국 미국의 자신감과 자유주의를 보는 듯 해서 기분이 좋다. 벌써부터 1년 후가 기다려진다.

박병헌 디지털뉴스국장

박병헌 기자 bhpar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