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국민이 눈 부릅뜨고 정부·국회 감시하자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산업화·민주화 시대의 권위주의 잔재 청산 시급
구조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과 청년은 봉 신세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06 06:31:10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와 국민에게 세금은 양자 간 일종의 약속이자 운용 결과에 무한 책임이 따르는 엄중한 권한이요 책무다.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면 국민은 기꺼이 세금을 낼 용의가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반발과 불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된다.

세수와 세출과 관련한 투명성을 비교해 보더라도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차이가 크다. 전자의 경우 국민이 민감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후자는 공적 영역의 권위주의적 압력에 밀려 자포자기하고 일방적으로 강요당하기만 한다. 심지어 세금에 대한 감독은 고사하고 무소불위의 세금 집행에 대해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 갈수록 세금 도둑이 넘쳐나면서 불감증과 부도덕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끊어 내기 어렵다.

지구촌 다수 국가의 정부가 정치·외교·경제 등 각 분야에 대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보고서 개념의 각종 백서(白書)를 발간한다. 백서는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세수와 세출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된다. 백서가 배포되는 날에는 이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줄을 선다.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점검함과 동시에 향후 세금이 어디로 쓰일 것인지를 파악하여 본인의 사업과 연결해 계획을 짜기도 한다. 외국인 주재원도 주재국의 백서를 입수하려고 발품을 판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그런 건 아니다.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일수록 국민과 국가의 매개물인 세금이 늘 예외로 일방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는 나라인가? 안타깝게도 대다수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내지만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심이 전혀 없다. 갑자기 세금이 올라가면 불만이 높아지지만 이에 대해 딱히 정부에 호소할 방법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무늬만 선진국일 뿐 정확하게는 후진국이다. 손을 대야 할 부문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일례로 상속세만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에서 없애거나 대폭 낮추고 있는데도 이제 겨우 상속세 개편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을 정도다. 아까운 시간만 가고 결국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꼴이 되고 있다. 세출을 확정하는 국회나 이를 집행하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마치 완장이라도 찬 것처럼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선심성 정책 남발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특별법 등을 내세워 마구잡이로 해치운다. 한편으론 감세와 규제 완화와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요소가 농후하다. 이들에게선 나라의 장래나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실종된 지 오래다. 뒷감당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니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일념뿐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런 일을 벌일 때는 우선 전문가의 조언과 충분한 여론 수렴을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데 치중한다.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들에게 경제성과 재원은 항상 뒷전이다. 어리석은 국민은 이에 현혹돼 이들이 만들어 놓은 졸속 행정이란 함정에 빠져들어 국가 퇴행을 부채질한다.

여의도에 가 보면 연일 선량에 줄을 대기 위해 인파들이 넘쳐난다. 정부 청사는 또 다른 로비를 위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북적북적한다. 모두가 밀실 야합으로 국민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긁어 내기 위해 안달이다. 개인이나 기업 인사만 드나드는 게 아니라 공공 기관이나 시민 단체들까지 아예 출퇴근하는 대관(對官) 담당자를 둔 곳들이 수두룩하다. 정치권이나 정부 부처에서 떨어진 낙하산을 우두머리 자리에 앉혀 놓고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혈세를 빨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한번 고리가 만들어지면 정부에서 타 오는 예산이 없어지거나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이 다반사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우리만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국민은 늘 봉이고, 약삭빠른 이들은 세금 위에 군림한다. 시쳇말로 먼저 챙기는 자가 임자다. 국민 세금으로 호가호위하고 온갖 부패와 비행을 저지르지만, 국민은 늘 속수무책이고 일개 국외자일 뿐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축적된 이런 관행을 청산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국가로 도약하기 어렵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해 시대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기관이나 단체를 단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들은 세금 줄을 끊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국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저출산 극복은 불가능하다. 국가 세금을 써야 할 곳은 계속 늘어난다. 이에 비례하여 기능이 중복되거나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문은 과감하게 축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거나 국가의 빚을 늘려야 한다. 평생 자신의 소득 40%까지를 세금으로 내야 할 처지에 놓인 청년들을 더는 볼모로 잡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 축소부터 시작해 내부 공적 영역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김상철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