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외제 밝히는 한국 소비문화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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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등 과소비·초저가 소비 동반, 국내 제조업 위태
中·日은 외국산 외면… 韓 중국산 제2 내수시장 될 판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30 06:31:20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1%에 미치지 못하던 수입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최근에는 18.5%에 달하며 30만 대 판매를 넘보고 있다. 한국을 드나드는 외국인이 왜 도로에 한국 차만 굴러다니냐고 질문을 하면 답변에 궁색했던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실로 격세지감이다.

반면 세계 완성차 판매 시장규모 3위인 일본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일본 시장이 ‘수입차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아직 수입차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6%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소비자들이 보수적이고 자국산 신뢰도가 높다는 얘기다.

중국 시장은 국내 생산 외국 브랜드 차종에 대한 수요가 많긴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토종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순수 수입차 비중은 4% 내외에 불과해 중국 시장도 점차 수입차의 무덤이 되어 가는 중이다.

일본의 수출 실적이 정점을 찍었던 1980년대 세간에선 일본인에 대해 ‘경제적 동물’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다른 나라에 물건 팔기에만 열중하고 사는 것에는 인색한 행태에 대한 일종의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외국 상품을 일정 비율 구매하는 것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나치면 국내 제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경제 운용 측면에서 적신호가 켜진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중산층이 늘어나고 소비가 미덕이라긴 하지만 요즘 우리 국민의 소비문화가 합리적이고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소비 양극화가 도를 넘게 되면 경제는 물론이고 공동체 전반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시욕에서 비롯된 과소비 풍조다. 이런 경향이 특히 국산품이 아닌 수입산을 중심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자동차·시계·스마트폰 등 내구 소비재는 물론이고 명품이나 보석, 심지어 위스키 등에 이르기까지 초고가 외국산 구매에 광적인 열기를 보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셜 미디어 이용률을 뽐내면서 자신이 구매한 것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행위가 마치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명품 선호 풍조가 일본의 경우 이미 오랜 과거가 되었고, 한동안 명품 소비의 최대 효자 시장이던 중국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풍조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산 화장품이나 식품이 해외에서 인기몰이 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과시 소비로 사회적 신분 상승 욕구가 채워질 수 있다는 비뚤어진 의식 구조가 크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한편으론 값싼 상품에 대한 수요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초고가 아니면 초저가가 판을 치면서 중도가 실종된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좋은 것도 결코 아니다. 시중의 저가 상품은 절대다수가 중국산 중심의 외국산이다. 이런 소비 구조에서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국내 영세 중·소 제조업체다. 갈수록 이들이 버틸 재간이 없어져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비단 재화에만 그치지 않고 관광과 같은 서비스 산업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여행 소비자들도 국내 관광은 철저할 정도로 외면하고 해외에 나가지 못해 안달이다. 이것은 국내 관광 인프라가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긴 하다. 현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중국은 어떤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국산 구매에 열을 올린다. 애국 소비라는 ‘궈차오(國潮)’ 열풍이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가장 타격을 입고 있는 쪽이 한국산 자동차·스마트폰·화장품·식품 등이다. 유커(중국 관광객) 감소로 호텔이나 내수 업종 전반이 시들하다. 봄날이 올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그런 날이 다시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기업의 한국 내수시장 공략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중국을 우리의 제2 내수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까지 등장했지만 이제 그것은 퇴색하고 한국 시장이 중국 내수시장의 일부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기우가 현실이 되어 가는 판이다.

한국 상품에 대해 일본 내수시장은 여전히 철옹성이다. 자국산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한국산에 대한 불신 풍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이 70%에 육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삼성의 점유율은 고작 6%다. 일본 차가 한국 시장에서 선전(한국 판매 2만1235대)하고 있는 것에 반해 한국 차는 작년 일본 시장에서 고작 1500대 판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기아가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고 하지만 벽이 두껍다.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과시 소비 풍조는 특권층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남녀노소 모두가 이에 익숙해져 있는 분위기다. 불로소득이 비일비재하고 황제 소비가 넘쳐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외이사 제도인데 연봉 1억 원에 더해 회의 한 번에 875만 원·연 100회 골프 접대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건전하지 못한 소비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쪽박 찰 날이 불현듯 가깝게 닥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