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지훈 조동탁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스카이&땅

[스카이&땅] 지훈 조동탁

박병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29 06:30:42

▲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지훈 조동탁은 1939년 경기도 화성의 유명 사찰인 용주사에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한 스님의 춤사위를 보고 명작 ‘승무’를 남겼다. 그의 나이 불과 19세 때였다.

조지훈은 박목월·박두진 등 청록파 다른 두 명의 시인과 달리 시인으로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멋을 탐구해 한국학의 기틀을 다진 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혜화전문학교(동국대 전신) 출신인 그는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하면서 교가를 작사했고, 막걸리 찬가와 호상비문 등 숱한 명문을 만들었다.

‘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 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느니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라는 호상비문은 1960년 4·19 혁명에 불을 댕긴 명문으로 평가받는다.

조지훈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주실마을은 학문과 돈·자식을 빌리지 않는다는 이른 바 삼불차(三不借)로 유명한 곳이다. 조지훈이 대쪽 같은 성격에 자존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그의 성격은 저서 ‘지조론’에서 잘 드러난다. 6·25전쟁 때 종군했던 조지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생가가 있는 영양군에서는 조지훈예술제, 사거지인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조지훈문학제가 매년 열리고 있을 정도다.

조지훈이 비교적 젊은 나이인 48세에 작고한지 5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 그의 이름이 지상에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그의 막내아들 조태열 씨가 얼마 전 외교부 장관으로 입각했기 때문이다. 정통 외교관으로 일했던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접은 지 4년 만의 화려한 컴백이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조지훈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조 장관은 중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는 걸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아 살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스라엘·라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분쟁뿐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지정학적인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이름난 문인이라고 그 아들도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는 대한민국의 외교 수장으로서 외교 업무를 당당히 잘하면 된다. 하지만 북핵 문제 등 난제가 적지 않다. 조 장관의 건승을 기대한다.

박병헌 디지털뉴스국장

박병헌 기자 bhpar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