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35] 베베르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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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일본을 알지 못해요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9 06:30:10

“여보, 왜 식사를 안 하세요? 어디 몸이 불편한 거예요?”

베베르의 부인 유제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 입맛이 좀 떨어진 것뿐이오.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베베르가 식탁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그는 염려하는 유제니를 뒤로 하고 침실로 올라갔다. 지금은 일요일, 휴일 아침이다. 손탁은 약을 챙겨서 유제니를 2층으로 올려 보냈다. 베베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보, 위염이 도진 거 아니에요?”

베베르는 만성 위염을 갖고 있었다. 섬세하고 낭만적인 그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위장에 문제가 생기곤 했다. 베베르는 유제니가 건네주는 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당신 좀 쉬세요. 푹 자면 좋아질 거예요.”

유제니가 이마에 키스를 하고 몸을 일으키자 베베르가 팔을 잡아끌었다.

“여기 앉구료. 아픈 나랑 있어 주면 안 되겠소?”

“당신 웬일로 어리광까지?”

유제니가 미소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난 지금… 당신이 필요하오!”

베베르가 상체를 일으켜 유제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손을 뻗쳐 남편의 머리를 감쌌다.

“정말 많이 힘들군요, 당신?”

베베르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유제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

“유제니, 안에 있어요?”

손탁의 음성이 문 밖에서 들렸다. 유제니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공사님은 어때요?”

“요즘 힘든 일이 있나 봐요, 언니.”

“내가 괜히 방해했네. 유제니도 좀 쉬어요.”

손탁이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갔다. 그 사이 베베르는 쿠션을 등에 받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당신 품에서 잘 쉬었소. 역시 당신이 최고라오.”

“본국과의 일이죠? 당신을 힘들게 한 게…”

유제니가 남편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제까지 내가 조선을 위해 노력한 모든 것들이 허사로 돌아갈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요. 유제니! 난 왜 이리 무능한 걸까?”

베베르가 팔로 얼굴을 감싸고 말했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여보, 당신은 멋지고 유능한 외교관이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신사답게 말이에요.”

유제니가 베베르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러시아는 일본을 알지 못해요.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자들인데 말이오. 왕후 마마를 처참하게 시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오. 그동안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보고해도 통하질 않으니…”

“국왕께서 러시아에 요구하신 차관과 병력 파병 문제가 당신을 괴롭히는군요?”

“그 일을 도우려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에 사절단까지 보내시도록 했는데 말이오. 러시아는 조선 문제에 있어 미온적이라오. 일본과 맺은 조약에 걸려 발이 묶였소. 그렇지! 러시아는 종교와 문화가 발달한 수준 높은 나라지. 하지만 조선 또한 동방에서 군자의 나라가 아니오? 이 나라가 교활하고 약속 따위는 우습게 여기는 이웃 나라에 유린되고 있는데 저렇게 손 묶고 강 건너 산불 구경하듯 해서야 되겠소?”

“당신 마음 이해해요. 나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조선을 차지하길 간절히 원하는 일본이 러시아의 내정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유제니의 말을 들은 베베르의 눈이 번쩍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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