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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28] 아, 고구려 ①
정명진의 머리가 여기 있다. 또 누가 죽고 싶으냐!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4 06:30:20
 
 
당나라의 백제 정벌은 고구려 원정을 위한 포석이었다성공리에 백제 공략을 마치자 자신감을 얻은 당 고종은 몸소 고구려를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력 661년 정월, 고종이 고구려 원정에 직접 나서려 하자 울주 자사 이군구(李君球)가 극구 말렸다.
고구려를 치는 것은 이익보다는 손실이 큽니다. 대군을 움직이려면 국력이 많이 소모되는데 만에 하나 패하기라도 한다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해 고구려 영토를 점령한다 해도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군사를 주둔시켜야 합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전가돼서 민생이 피폐해질 겁니다. 신이 생각건대 고구려를 정벌하는 것은 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고종의 결심은 확고했다. 다만, 황후인 측천무후마저 친정에 반대했기에 몸소 출전하지는 않았다.
 
그해 4, 당 고종은 임아상(任雅相)을 패강도행군 총관·계필하력(契苾何力)을 요동도행군 총관·소정방을 평양도행군 총관·소사업(簫嗣業)을 부여도행군 총관·정명진(程名振)을 누방도행군 총관·방효태(龐孝泰)를 옥저도행군 총관으로 삼아 35만의 정예병으로 고구려를 정벌하게 했다.
고종은 이세적과 의논 끝에 다시 한 번 성동격서의 전술을 쓰기로 했다. , 부여도행군과 요동도행군, 그리고 누방도행군의 요동 공략을 대대적으로 소문내서 압록수 주변과 도성에 있는 고구려의 주력군을 요동으로 끌어낸 후 그 틈을 노려 평양도행군과 패강도행군·옥저도행군이 평양성을 치는 작전이었다.
같은 해 5, 당군이 요동을 정벌한다는 소문이 돈 후 부여도행군과 누방도행군이 출진했다. 합계 12만의 정병이 기세 좋게 탁군을 출발해서 요동으로 떠났다.
이 당시 고구려는 뇌음신을 보내 신라가 점령하고 있는 북한산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당군이 요동으로 향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연개소문은 북한산성에 나가 있는 군사를 거두어들였다.
 
연개소문은 군사 도수금 이하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대책 회의를 열었다.
당나라 놈들이 또다시 요동을 공격하려 하오. 어떻게 대처해야겠소?”
연정토가 먼저 입을 뗐다.
이번에는 저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도수금이 못마땅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려면 도성 인근의 군사를 차출해 보내야 하오. 만약 저들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온다면 도성이 위험해질 수 있소.”
묵묵히 듣고 있던 고문(高文)이 나섰다. 그는 지난날 박작성 전투에서 당군을 대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명장이었다.
군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당군의 전력은 이전보다 강합니다. 백제를 단숨에 제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군사의 수에서 예전만 못합니다. 이럴 때는 나가 싸우기보다는 성을 굳게 지키면서 수비에 전력을 쏟아야 합니다.”
남방에서 돌아온 뇌음신이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끼어들었다.
우리 군대는 백제군과는 다릅니다. 당군과 견줘도 부족할 게 없습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연개소문은 머리에 통증을 느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려 왔다. 백제 의자왕이 당군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뒷목을 잡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당시 진맥한 의원은 혈압이 너무 높아 자칫하면 중풍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과도하게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의원의 충고대로 몇몇 중요한 사안을 빼고는 아우 연정토에게 만사를 처리하게 했다.
연개소문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심하게 어지러웠다. 그러다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의원을 급히 불러 응급조치를 취한 후에야 대막리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연개소문은 이삼일을 쉬고 나서야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 고문을 집으로 불렀다.
고문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자 연개소문은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장군은 이 상황에서 어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대막리지의 목소리에는 병석에 누워 있던 사람답지 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고문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대답했다.
이제라도 해군을 증강해야 합니다. 해군이 강해야 당군이 수로를 통해 평양으로 공격해 오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성의 방비가 강화된다면 인근의 일부 군사를 뽑아 요동에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고문의 판단은 이치에 맞았다. 연개소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백제 부흥군 문제로 돌렸다.
복신이 이끄는 백제 부흥군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오?”
글쎄요. 의자왕이 항복했으니 백제는 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근자에 이르러서는 백제 부흥군의 활약도 미미합니다. 그런데 철륵과 거란에 사신을 보낸 일은 어찌 됐습니까?”
연개소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철륵과 거란 모두 동의했소. 올해 가을쯤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의 변경을 칠 것이오. 당주도 꽤 골치가 아플 것이오.”
대막리지는 고문을 돌려보낸 후 연정토를 불러 세세한 사항을 일일이 지시했다. 이처럼 고구려도 당군을 맞을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당나라 탁군에서 출발한 정명진의 누방도행군과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은 두 달의 행군 끝에 영주의 유성에 도착했다. 누방도행군은 유성에서 며칠 머문 후에 부여도행군에 앞서 통정진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고 장대비가 내리는 바람에 군사들이 차츰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다. 총관 정명진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려 했지만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성에서 출발해서 열흘이 지난 후에야 당군이 통정진에 도착했다. 통정진은 유성과는 달리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정명진은 통정진에서의 유숙을 포기하고, 곧바로 고구려의 신성 쪽으로 방향을 잡아 행군했다. 통정진을 떠나 이틀쯤 나아갔을 때 수목이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이 숲만 지나면 요하가 하루 거리였다.
이때 고구려 장군 고문은 서압록과 박작성에서 차출한 4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 숲에 이르러 있었다.
고문은 부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명을 내렸다.
당나라 장군 정명진이 이끄는 누방도행군이 엊그제 통정진을 통과했다고 한다. 내일 정오쯤에는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대들은 언덕 옆에 매복하고 있다가 당군의 행렬이 들어서면 일제히 들이쳐라. 나는 우회하여 배후를 지키고 있다가 저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막겠다.”
고문의 지시가 끝나자 장수들은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이튿날 정오쯤 되니, 먼발치에서 정명진이 이끄는 6만의 당군이 보였다. 고구려 군사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호랑이가 사냥감을 노리며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당나라 장수들은 지친 군사를 위무해 가면서 요하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이제 하루면 요하에 닿는다. 그 강만 건너면 바로 요동이다. 산해진미와 아름다운 고구려 여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기운 내자.” 
이 말을 듣고 당나라 군사들은 서로 바라보며 비웃었다. 요동에 가서 해골이나 안 되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장수의 채찍이 무서워 대놓고 불평하지는 못했다.
마침내 당군이 고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는 숲길로 들어섰다.
어느덧 행렬의 후미까지 숲에 접어들었을 때 한 장수가 총관에게 아뢰었다.
숲이 너무 고요합니다. 복병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합니다.”
정명진이 코웃음을 쳤다.
이곳은 요하의 서안이다. 고구려군이 있을 턱이 없지 않으냐.”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좌우 숲속에서 화살이 날아올랐다. 이를 보고 놀란 당나라 군사들이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젖지 않으려는 몸짓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곳곳에서 군사들이 화살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혼비백산한 정명진은 후퇴하라고 거듭 외쳤다. 하지만 어느 틈에 고문의 군사들이 당나라 군사들의 행렬 뒤에서 나타났다. 당군들은 후미에 나타난 고구려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행렬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통에 당군들은 뒤엉켜 오도 가도 못했다.
고구려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 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당군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요행히 빠져나온 당군들은 하는 수 없이 산길을 올랐다. 고문은 북을 치라 일렀다. 북소리가 둥둥 울려 퍼지자 고개 좌우 숲속에 매복하고 있던 3만의 고구려 정병이 창칼을 휘두르며 뛰어나왔다. 그들은 살아남은 당군을 무자비하게 도륙했다.
정명진은 수하 장수들과 함께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었다. 이때 그가 탄 말이 날아온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총관은 말 위에서 재빨리 뛰어내렸다. 그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수하가 양보해 준 말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고구려 기병 하나가 그에게 돌진하여 창으로 찔렀다. 창날이 산적 꿰듯이 정명진의 등을 뚫고 배로 빠져나왔다. 무용을 자랑하던 당나라 누방도행군 총관 정명진은 무명의 고구려 군사의 창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주위에 있던 당군이 정명진의 시신을 수습하기 전에 고구려 기병이 달려왔다. 그중 하나가 칼로 그의 수급을 베어 장창에 꽂은 후 하늘 높이 쳐들고 외쳤다.
정명진의 머리가 여기 있다. 또 누가 죽고 싶으냐!”
당나라 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기저기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문이 이끄는 고구려 기병은 통정진까지 당군을 쫓았다. 이날 전투에서 죽은 당나라 군사가 5만을 넘었으니 그야말로 고구려의 대승이었다.
통정진에 당도한 부여도행군 총관 소사업은 누방도행군이 대패하고 총관 정명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수하 장수들도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앞날을 걱정하며 수군댔다.
소사업은 이렇게 사기가 떨어진 상태로 진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수하들과 상의한 끝에 유성으로 후퇴한 다음 장안에 전령을 보내 진퇴 여부를 묻기로 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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