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87] 빵 훔치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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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네 몫의 빵을 훔쳐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0 06:30:10

- “노인은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빵을 하나씩 훔쳤소. 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노인은 제리의 할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말았지. 노인은 벌벌 떨면서도 훔친 빵을 손에서 놓지 않았소. 어찌나 꼭 붙들고 있는지 다 부서져 버릴 것 같아서 차마 빼앗으려는 생각도 할 수가 없었소. 제리의 할아버지는 그가 가게 앞에서 구걸하던 노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소. 온기가 없는 노인의 차갑고 거친 손을 붙잡은 순간, 주인은 차마 이러면 안 된다는 말조차 노인에게 할 수 없었던 거요.

“어르신, 매일 저녁에 오세요. 팔고 남은 빵을 하나씩 드릴게요. 그러니 훔치지 말고 가져가세요. 아셨죠?”

제리의 할아버지가 말했소. 그러자 노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소.그런 호의를 태어나서 처음 받아 본 거였지.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소.

“고맙소. 그러나 거절하겠소. 우습게 들리겠지만 빵을 훔치는 일은 내가 내 목숨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오. 그러니 부디 내가 빵을 훔치도록 해 주시오. 동정을 받느니 내 목숨을 위한 죄책감을 갖도록 해 주시오, 주인 양반.”

그날 이후로 노인은 구걸로 돈을 벌지 못한 날,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하루에 마른 빵 하나만을 훔쳐서 차가운 길모퉁이에 가서 먹었소. 그리고 보름쯤 지난 어느 날이었소. 그날은 너무 추워서 집 없는 개들도 골목을 어슬렁거리지 않았지. 그날 이후 그 노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었소. 제리가 말을 마치고 내 어깨를 툭 치며 일어섰고, 나는 빵을 가슴에 품고 새벽길을 걸어 내 방으로 돌아왔소.”

당신은 섣불리 감정을 섞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누운 채 당신을 바라보던 나를 당신이 깊이 바라보았습니다. 오래전 나를 바라보던 그리운 할아버지와 같은 자애로운 눈빛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혼자 어찌 살아가나, 숨을 거두기 전 나를 응시하던 어머니의 눈빛이었습니다. 가슴이 메는 듯 젖은 목소리로 당신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은 어떻게라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거요. 상대방이 나를 하찮게 여긴다고 해서 내가 하찮아지는 게 아니오. 당신 몫의 빵을 훔쳐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이오. 그게 생의 의무요.”

에바의 노트는 여기에서 끝났다. 이후 이야기는 주결이 이야기했던 대로일 것이다. 그들이 헤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별장을 사고, 그러나 아내가 등장하고 에바는 악마의 발톱에 붙잡힌 뒤 이곳 해월영에 잠시 머물다가 홀연히 사라졌을 터였다. 어렵게 결심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던 사랑과 삶에 또 한 번 배반당한 에바가 이곳에서 혼자 견뎌 냈을 날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나는 노트를 내려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정하운은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진료실 문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었지만 문을 열었다. 눈을 감은 채 주결은 책상 뒤 의자에 기대 앉아 있었다.

“에바가 해냈다면, 저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가 말했다. 차를 가지고 들어오던 그녀가 문 앞에 멈춰 섰다.

“정하운 씨가 해냈으니 저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주결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창밖 자작나무 숲을 깊이 응시할 뿐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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