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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선조들의 덕을 보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도 선조들이 물려준 앙코르와트 덕분에 그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선조들의 덕으로 우리 역시 세계 유일의 한글을 사용하고 김치를 먹는다.
이러한 조상의 은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는 아마도 프랑스일 것이다. 프랑스만의 독특한 양식 ‘프렌치 스타일’을 만들어 유럽의 다른 나라와 차별화를 꾀한 것도 현대 프랑스인들이 아닌 그들의 선조들이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프랑스 절대권력을 장악했던 루이 대왕. 그는 정치·군사·외교뿐만 아니라 문화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프랑스식 문화유산을 잔뜩 남겼다.
대왕 루이 14세는 도로 인프라를 개선하고 상선을 개발하는가 하면 샴페인 등 양질의 제품의 생산과 수출을 지원하는 한편 민법의 조상인 루이 법·임업법·형법·상업법을 만들고 질서 유지의 근간인 경찰국을 창설했다.
파리 7구에 있는 그 유명한 앵발리드(전쟁 영웅들의 무덤)도 그가 만들었다. 1670년에 병원 등을 포함해 퇴역 군인들의 주거지를 만들고 장교와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앵발리드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 예술 및 역사박물관 중 하나인 군사박물관의 본거지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베르사유의 승마 아카데미를 창설했고 달로와요(Dalloyau) 요리와 다만(Dammann) 찻집은 오늘날 프랑스인들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 있다.
이런 루이 14세가 심취한 건 춤이었다. 최고의 권력자와 발레. 우리 정서로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은 조합일 수 있다. 그러나 ‘젊고 눈부신 루이, 멋진 댄서’는 환상의 정치적 선전 도구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는 귀족들에게 자신이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춤이었다. 이는 절대 군주제가 원했던 문화예술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태양왕, 대왕이란 별명을 가진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 또 다른 별명은 루이-디외도네(신이 준 루이)였다. 23년 만에 얻은 신의 선물이란 뜻이다. 그는 1638년 9월 어느 날 노심초사 자식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섯 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아버지 루이 13세는 눈을 감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는 대부인 마자랭 추기경의 휘하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루이는 문학과 독서에는 흥미가 없고 육체 운동을 좋아했다. 아버지를 닮아 특히 음악과 춤을 아주 좋아했다. 일곱 살 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춤 연습을 시작했다. 이는 전혀 엉뚱한 것도 신기한 것도 아니었다. 승마나 검술처럼 귀족 자제들이 받는 교육의 일부로, 군주가 되기 위한 중요한 교양과정이었다. 그는 매일 두 시간씩 작곡가이자 댄서인 피에르 보샹에게서 춤을 배웠다. 보샹 선생은 왕에게 고전 춤의 표준이 된 걸음 동작을 가르쳤다.
성인이 되자 왕은 훨씬 더 춤 연습을 열심히 했다. 눈 뜨자마자 춤을 추고 승마 후에도, 야식 후에도 춤을 췄다. 왕이 춤에 너무 몰두하자 의사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하지만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춤을 그는 정말 좋아했다. 볼테르에 따르면 사람들은 왕에게 춤과 기타만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루이가 무용수로 처음 데뷔한 것은 열두 살 때인 1651년 2월26일 왕궁(Palais royal)의 가면무도회에서였다. 그는 카산드르 연작의 기사 역을 맡았고, 그 후 뜨개질을 하는 시테빈(민속적인 춤) 역을 맡았다. 발레는 몽팡시에 공작부인·영국 공주·오를레앙 공작부인을 포함한 숙녀들에게 바쳐졌고, 다섯 번 재연됐다.
1655년, 쾌락의 발레는 정치적 암시를 품고 있었다. 춤의 천재인 루이 14세는 이집트인으로 그의 역할을 연기했다. 춤은 권력의 우의가 됐다. 루이 14세는 이제 그의 주제들을 다듬을 만큼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10회 연속 공연 동안 외국 외교관들과 3만 명의 파리 시민이 관람했다.
마스크도 가발도 없이 군주는 우아하고 위엄 있게 무대로 나갔다. 팔을 벌리고 양손을 우아하게 올리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며 절대적인 상징으로서의 균형을 강조했다. 다리와 발 위치는 반세기 후 왕의 공식 초상화로 재현됐다.
교과목으로서의 춤, 이는 루이 14세가 고안한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그는 1661년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해 고전 프랑스 춤의 보편화를 위한 기원을 열고자 했다. 공간에서의 제스처와 움직임들은 이제 종이에 기록되고 전달되어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식’ 춤이 빛을 발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편으로 춤의 전문화,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사업이 됐다. 1713년 그는 정확한 코드에 따라 예술가들이 자신의 소질을 완벽하게 단련할 수 있도록 무용원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오페라 드 파리(Opéra de Paris)의 효시다.
오페라 드 파리. 여행객들이 약방에서 감초 찾듯 들르는 갤러리 라파이예트와 프랭탕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프랑스 국립극장이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최초의 로마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라고도 한다. 지붕의 금장식과 청동장식이 자아내는 우아함은 그 어떤 단어로도 묘사하기 어려운 최고의 경지다. 오페라 드 파리의 단골이었던 인상파 화가 드가의 그 유명한 ‘무용 수업(La Class de dance)’과 ‘14세의 어린 무용수(Petite danseuse de 14 ans)’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이곳은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클래식 댄스의 역사적인 본거지답게 오늘도 미래의 스타 발레리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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