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14) 해양제국의 국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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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국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20 06:30:20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국기가 미국 책에 소개된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윤치호가 물었다. 그것은 아주 뜻밖의 일이다.

“상하이에 들러서 민영익 대감을 만났을 때 그분에게 들었습니다.”

민영환이 빙그레 웃었다.

“1883년에 푸트 주한 미국 공사가 조선에 부임하고 난 후 폐하께서는 곧바로 보빙사(답례사절)를 파견하셨지요. 그때 민 대감은 23세 나이로 전권대신이 되어 미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국서를 전했는데 그때 1882년에 발간된 <해양제국의 국기들 Flags of Maritime Nations>이란 책에서 우리 국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놀랍군요.”

“외국과의 조약이 잦아지던 때에 폐하께서는 국기의 필요성을 절감하셨지요. 고심 끝에 중앙에 태극을 그려 넣은 국기를 고안하시고, 미국 전함 스와타라(Swatara) 호 선상에서 4괘 태극기를 극비리에 제작하여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개최된 조미수호조약 조인식에서 처음 대외적으로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청국은 자신들의 국기와 비슷하게 용을 그려 넣을 것은 권했지만, 폐하의 명으로 태극을 넣은 국기를 만들어 청국이 모르게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바로 그 국기가 미국 책에 있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민 대감의 말로는 당시 조인을 주관한 미국 특사 로버트 슈펠트 제독이 제공했을 것이라 합니다. 박영효 공이 일본에 수신사로 갔을 때 사용한 국기도 동일한 것이구요. 그 책에는 우리 국기가 청국의 청룡삼각기와 나란히 실려 있었다고 하더군요.”

민영환이 세세하게 설명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책에 실려 있는 50개국 중 34개국의 기는 왕기나 황제기, 또는 군함기나 상선기, 삼각기이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16개국의 깃발만이 국기였다고 합니다. 일본도 국기가 없고, 천황기와 각종 군함기 및 군함용 삼각기만 실려 있더라고 전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폐하께서 일찍이 자연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국기를 만드셨읍니다. 태극의 홍색과 청색은 자연의 대표색으로서 각양각색의 만물을 보여주는 색이 아닙니까? 건·곤·감·리는 각각 하늘·땅·물(달)·불(해)의 4요소를 상징하구요. 바탕의 흰색은 백성을 뜻하여 임금과 신하가 백성을 근본으로 삼을 것을 말해줍니다. 세상에서 우리 국기보다 더 오묘한 이치가 담긴 것이 있을까요?”

듣고 있던 김득련이 화답했다. 조선사절단 모두는 국기에 대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바로 그 국기가 모스크바 하늘에서 창연하게 빛나고 있다.

오후 2시에 그들은 니콜라이 2세 황제의 행차 의식을 보러 나갔다. 길가의 상점들은 깃발을 걸고 등불을 달았으며 거리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걷기 힘들었다. 길 양쪽에는 총을 든 보병이 두 줄로 서 있고 말을 탄 경찰들도 도열해 있었다.

환영 열기에 취해 있을 때 김득련이 손짓했다. 고관들이 탄 황금지붕 마차가 나타났다. 잠시 후 육군 복장을 한 황제가 흰 말을 타고 지나갔고 바퀴와 지붕이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마차를 탄 황태후와 화려한 마차 안의 황후가 등장했다. 그 뒤를 황족들의 마차가 따라왔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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