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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떤 여자가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 주는 중이다.
“내가 어디 있냐면… 제육볶음 맛없는 집 기억나? 그때 되게 맛없게 먹었잖아. 그 집 바로 앞에 있어!”
무심코 그 집 간판을 올려다보니 ‘ㅇㅇ식당’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붙어 있다.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제육볶음 맛없는 집’이라니!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통화 내용이 저럴까 싶다. 심지어 얼마나 크게 말하는지 안에서도 다 들릴 것 같다. 아랑곳없이 여자는 가게 이름을 알려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연신 ‘제육볶음 맛없는 집’을 강조했다.
예의 문제는 둘째 치고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도 비슷하겠거니 싶다. 내 이름이 기억 안 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묘사할까? 갑자기 나의 약점들이 마구 떠오른다.
“그때 그 목소리 큰 여자 기억나?” “거북목에, 등이 구부정한 여자 있잖아.” “노래방에서 음정 틀려갖고 우리가 엄청 웃었던 여자 있지?” 이렇게 말할 게 틀림없다.
생각만 해도 슬프다. 다음과 같이 묘사되는 것은 어떨까?
“그때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던 여자 생각나?” “늘 자세가 반듯하고 차림새가 단정한 그 여자분 있지?” “술 잘 마시고, 노래 잘하고, 정말 끝내주게 잘 놀던 언니 기억하지?”
프랑스 화가 겸 문인 마리 로랑생(1883~1956)은 ‘잊힌 여자’라는 시에서 권태로운 여자보다, 슬픈 여자보다, 불행한 여자보다, 버려진 여자보다, 떠도는 여자보다,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힌 여자’라고 했다. 심지어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하다고 했다.
그런데 ‘잊힌 여자’야말로 나의 소망이다.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청와대를 나오면서 ‘잊히고 싶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그 누구의 기억에도 떠오르지 않는 ‘존재감 제로’의 사람이 되고 싶다.
누가 나를 어떻게 떠올리건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가 큰 것은 긴장했을 때 나오는 버릇일 뿐 조용히 말할 때도 많다. 내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고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 그것은 나의 연극이었다. 나는 그렇게 여성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평가도 오해도 없이 그냥 나인 채 조용히 잊히고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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