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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 사냥’ 작전과 박근혜 대통령', '2012년 4월9일 월요일 아침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인공기가 휘...'))
2012년 4월9일 월요일 아침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인공기가 휘날렸다. 가로 4m×세로 2m 대형 현수막엔 북한 인공기와 함께 ‘남조선 동무 여러분 반갑습네다. 민주든 진보든 통합당 찍고 100% 인민의 낙원으로 오시라요’라는 문구가 휘날린 것이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서울경찰청 산하 남대문경찰서는 발칵 뒤집혔다. 월요일 출근길에 서울시청광장에 북한을 추종하는 문구와 함께 인공기가 휘날렸으니 어찌 됐겠는가. 시민과 지나가는 차량들은 창문을 열고 핸드폰 카메라를 누르며 간첩을 112에 신고했다.
잠시 후 남대문경찰서는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 10여 대의 경찰 차량이 광장에 도착했고 경찰병력은 광장을 에워싸며 간첩을 조여 왔다. 출근길 시민은 통제되었고 돌발 상황에 대비해 총부리는 간첩의 가슴팍에 정조준 되었다. 무전기와 이어폰엔 긴장감이 흘렀으나 다행히 치밀하고 신속한 검거 작전으로 간첩은 금세 체포되었다.
4월11일 제19대 총선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혼돈의 정치상황에서 서울시청 인공기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당시 페이스북 700만 명·트위터 650만 명을 비롯해 구글과 SNS를 통해 인공기 사건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보수·우파단체는 “시청광장에 인공기가 웬 말이냐? 간첩을 당장 사형시켜라”라며 핏대를 세웠다. 청년들과 대학생들은 인공기 사건을 공유하며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의미심장한 대화로 밤을 지새웠다. 4.11 총선은 민주통합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정체모를 불안감이 대한민국의 밤하늘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보다 8개월 전인 2011년 8월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을 놓고 민주통합당(민주당)이 내세운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선별 무상급식을 주장하며 서울시장직을 걸었다. 투표율 33.3% 미만이면 시장직을 내놓겠다는 세기의 도박이었다. 그러나 ‘나쁜 투표 거부운동’을 펼친 민주당의 전략에 막혀 투표율은 25.7%에 불과했고, 오세훈은 시장직을 내놓고 만다.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자 자유·우파진영 몰락의 서막이었다. 정국은 소용돌이치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0월26일 치러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엔 안철수·나경원·박원순이 출마했다. 그러나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안철수가 5%인 박원순에게 양보하며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아름다운 단일화’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안철수를 일약 대통령 후보로 끌어올렸다.
2012년은 4.11 총선과 12월 대선이 있는 쌍(雙)선거 해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미리 보는 총선·대선이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4.11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고, 그 여세를 몰아 12월 대선에선 안철수·문재인 중 한 명이 당선될 꽃놀이패였다. 선거 예측전문가 30명의 예상을 분석한 결과 25명이 민주당 과반의석 확보를 예상했고, 모르겠다가 4명, 새누리당 우세가 1명이었다. 어쨌든 민주당의 과반의석 확보는 확실한데 문제는 새누리당이었다. 4.11 총선에서 120석 또는 100석 미만으로 쪼그라들 것이란 불길한 예상에 모두가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이었다. 종북 좌파의 자리 굳히기이자 보수·우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2012년 새해는 아름다운 단일화로 청·장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환호하는 민주당 세상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경기도 안산과 서울 강동구를 근거지로 은밀히 활동하는 한 남자가 한국 정치계의 정보 수집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고립된 스케줄로 사교성은 물론 사회성 제로인 은둔형 외톨이. 그러나 주어진 임무를 기계처럼 처리하는 집중력과 추진력은 의외였다. 그는 4개월 동안 은둔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작전명은 ‘늑대사냥’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에게조차 모든 걸 비밀에 부쳤다. D데이 하루 전, 준비는 완료됐고 모든 순서는 입력됐으며 마지막 기도로 죽을 각오를 대신했다.
4.11총선을 이틀 앞둔 4월9일 운명의 새벽 5시, 모든 준비물을 챙겨 안산 중앙역에서 4호선을 타고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준비물이 많은 데다 출근길 혼잡으로 서울역 1호선 환승에 실패해 시청역까지 걸어가야 했다. 숭례문 앞을 지날 때 길이 3m에 이르는 준비물과 배낭이 무거웠지만 새벽 공기는 신선했다.
그는 시청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계산한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모든 세트를 완성하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신호등에 매단 인공기 현수막 반대쪽을 밧줄에 묶어 팽팽히 잡아당겼다.
‘남조선 동무 여러분 반갑습네다. 민주든 진보든 통합당 찍고 100% 인민의 낙원으로 날래 오시라요.’ ‘무상교육 100%·무상급식 100%·무상보육 100%·무상의료 100%.’
후원단체로는 촛불시위·민주너총·너꼼수·참여먼대·전교죠 등이 후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모두 글자 한 개씩을 비틀었다. 현수막 맨 아래에는 ‘빅조선인민공화국 대장동지 정창옥’이라는 글자가 숨죽인 채 펄럭였다. 남대문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48시간 철야조사를 받고 나오자 조선일보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 단장님이시죠? 단장님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세상을 바꿨습니다.”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4.11총선에서 새누리당 152석·민주통합당 127석으로 역전된 것이다. 시청 앞 인공기 사건은 불과 이틀 만에 청년들을 돌려 세우고 중도층을 투표장으로 이끈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8개월 후인 12월19일 대선에서 박근혜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잔인한 포식자인 ‘늑대’의 ‘사냥’은 대성공이었다.
그날 밤 달빛조차 얼어붙은 안산 중앙역 공원에 앉은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별빛을 헤아렸다. 5개의 죄목으로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직후였다. 별빛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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