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A. 이성이 도덕관념으로 감성보다 대개 우선시되지만 감성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선험적 감성 중에는 이기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타심이 혼재돼 있다. 이성은 절제, 감성은 본능이라고 이분법으로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성이 악의를 가지면 감성보다 훨씬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감성의 본능은 희생을 감수한 진실한 우정이나 모성애가 있다. 감성적 진실이야말로 큰 사랑일 때가 있다. 물론 절제는 이성의 역할이고 책임 또한 이성의 힘으로 지속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성만으로 도덕률을 항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보편성·항상성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성의 힘이 부족할 때 감성이 필요하다. 뜨거운 심장이 차가운 머리보다 도덕감정이 고양될 때가 많다. 감성의 선함은 카타르시스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성과 감성의 역할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다. (447쪽 : 생명의 복잡계가 예정설인 듯 하면서도 불확정성의 물리법칙을 따르는 것은 현상계로 보면 이율배반적 모습이지만 경험과 이성의 합목적성으로 보면 극적 조화다) 절제는 이성의 힘 같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힘은 감성에서 더 강하게 나오기도 한다. 절제와 책임의 가치는 이성이든 감성이든 비우는 마음에 달려 있다. 비우는 노력이 구분하지 않는 마음이다. 욕망과 권력을 내려놓으면 이성과 감성은 상호 시너지를 내면서 세상을 크게 보도록 돕는다. 크게 보는 눈이 바로 경쟁과 차별을 긍정의 눈으로 보게 한다.

 

 

A.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현대철학의 조류인 실존의 개념과는 다르다. 실존의 가치가 인간중심의 목적론을 통해 자존감을 갖도록 하지만 그 목적이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좋은지 나쁜지는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 누구나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관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문제는 목적이 사라지거나 애초 없을 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데 있다. 전자는 현대 조직 구성원들의 문제이고 후자는 봉건시대나 왕조시대 노예의 이슈다. 현대조직의 문제를 좌파적 시각으로 보면 경쟁과 차별이 만들어 내는 계급 속에 조직이 추구하는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다. 치열한 경쟁은 조직 구성원들을 목적의 인간이 아닌 수단의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조직의 목적에 인간의 목적이 묻히면 인간의 존엄성이 묻힌다. 하지만 관점이 달라지면 조직 내 인간의 실존이 다르다. 구성원의 목적이 조직의 목적과 궤를 같이하며 성과를 일궈내는 근간이 인간 중심이 된다면 인간의 목적이 조직의 목적을 아우른다. 개인의 목적이 조직의 목적을 이끌었을 때 훨씬 큰 자존감을 갖게 된다. 이는 책임범위 확산이라는 신 보수가치의 길이다. (137쪽 : 시공간 에너지를 실존의 의미로 보면 속박되거나 정해진 개념이 아닌 자유의지가 개입돼야만 의미를 갖는다) 주어진 실존보다 차원이 높은 실존은 본래 주어진 것을 규정하는 것 이상으로 새롭게 개척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실존가치를 높여주는 동인이 되고 차별이 추락한 실존을 복원시켜 준다. 경쟁과 차별 속에 치열하게 잉태되는 꿈과 희망이 곧 인간의 최상위 실존이다. 이 실존은 도덕의 범주다.

 

   

A. 대부분 기업, 단체, 국가 등은 조직의 목적이 개인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개인의 욕망은 조직의 목적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갓 입사한 샐러리맨이라고 해도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다르다. 말단 사원도 기업의 목적을 바꾸거나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조직 구성원들은 노력 여하에 따라 조직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키잡이들이다. 조직의 진로가 경쟁과정에서 수시로 미세조정되며 바뀌어야만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한다는 점이다. 경쟁과 차별은 개인이 조직의 목적이란 배를 운전하는 시스템과 같다. 꿈과 희망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한 구성원들이 많을수록 조직은 상황에 따라 옷을 바꿔 입어가면서 더 강한 경쟁력이나 전투력을 갖게 된다. 이들은 공포를 머금고 두려움을 삼킨다. (183쪽 : 불안의 그림자들이 그 불안의 실체를 알아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유시장은 자존감을 드러낸다. 비전은 그렇게 공포의 연속이다) 현대사회에서 조직의 목적에 순응만 하거나 자기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도태된다. 개인의 목적이 조직의 목적을 바꾸려는 노력은 허다하게 일어난다. 이런 기업, 단체, 국가가 번영을 기약한다.

  

Q.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조직의 본질적인 목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A. 기업, 단체, 국가의 본질 목표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가령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수용하거나 용납하기 쉽지 않다. 개인들은 큰 목적 아래 작은 목적들을 수정하거나 바꿀 수는 있어도 본질에 대해서는 바꾸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경향성을 띈다. 결국 목적론적 인간은 큰 틀 안에서 그 목적을 지배당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를 목적론적 시각이 아니고 ‘가치관의 합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한 확연히 달라진다. 헌법은 그 상징이다. 개인들의 목적론적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합의해 헌법가치에 담았다면 그 목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목적을 같이 하기 위한 더 큰 목적을 구성원들이 일군 셈이다. 그 실체가 보통 국가다. (386쪽 : 헌법은 인간의 타락을 언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타락하지 않는 자유정신을 담고 있다) 국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목적론을 보호할 울타리로 기능해 왔다.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울타리가 국가로 안착했다. 구성원 합의로 창출된 국가에 대해 구성원을 부리는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개인이 국가에 의해 목적이 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개인은 국가의 목적을 함께 타면서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다. 개인의 기본 욕망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켜가도록 하는 현대 국가의 양대 기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이들 두 축은 개인의 목적과 국가의 목적 간 절묘한 상생을 이루고 있다.

 

 

A. 대체로 빈부차가 논란이 된다. 전통적인 보수가치로 자유와 시장은 사유재산을 엄격하게 보호받고 또한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운동장이다. 자유가 경제의 에너지라면 시장은 자유가 뛰어 다니는 놀이터다. 시장은 자유 에너지를 사용하며 더 큰 결실을 거둔다. 결실인 이윤은 자유시장에서 목숨이 걸린 배수진을 치는 생명현상이다. 치열한 결실이 모두를 이롭게 하지만 빈부차를 동시에 만든다. 개인 간 그리고 기업 간 차별이 자유시장에서 조성된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의 차별이 전체주의 또는 사회주의가 만들어 내는 차별보다 훨씬 적은 차별이라는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공산당 일당독재는 차별의 상징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휴머니즘에 기반한 공산주의 이념의 비차별 논리는 거꾸로 봉건시대만큼이나 더 큰 차별을 잉태했다. 공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전체주의 독재라는 의미로 바뀐 것은 공산주의 휴머니즘이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639쪽 : 마르크스의 그림자 없는 생명은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이상향<휴머니즘>의 설계였지만 그가 막상 그린 이상향은 본질을 무시한 대가로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자유가 없는 곳<공산주의>이었다) 자유시장에서 차별은 존재하더라도 그 차별을 줄이는 자동제어 기능이 작동하지만 공산 사회주의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차별을 평등의 정체성과는 정 반대로 키운다. 수직이동이 수시로 일어나는 자유시장에서는 구성원들 기준으로 차별을 차별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A. 자유와 시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좌파의 눈으로는 자유와 시장을 분리 가능하고 자유를 통제하지 않으면 차별이 발생한다는 시각이 자연스럽다. 자유를 국가의 권력으로 통제하고 시장은 국유화 내지 공개념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좌파적인 수순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내지 경제민주화가 그 논리의 명분을 갖는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와 시장은 불쌍한 약자를 양산해 내는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으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자본가들의 착취공장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치명적인 맹점이 도사린다. 자유와 시장에 대한 반동적 개념은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반쪽자리 정당성만을 확보할 뿐이다. 자유와 시장이 변증법적 나선운동을 하면서 발전하는 원리의 중심에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한다. 인간은 신체적 생명 못지않게 정신적 생명이 생애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787쪽 : 나선형 변증운동이 운명을 개척하는 자유인의 모습인 것을 안다면 자유의지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자유와 시장을 휴먼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통제 가능하다고 여긴다면 휴먼을 제거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수많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 같은 모순으로 체제의 한계에 부닥치거나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몸과 정신을 분리한다고 전제할 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이상주의가 현실을 포섭했다. 지상에서는 끝내 불가능한 휴먼법칙이 도리어 인간의 영혼을 망가뜨렸다. 자유와 시장이 만드는 차별을 제거할 수 있다는 환상이 뱀의 유혹이다.

목차

제1장 신 보수의 가치   1-1. 욕망의 장 1-2. 권력의 장 1-3. 경쟁과 차별 1-4. 빈수레 진보 1-5. 이념의 굴레 1-6. 탈 진영의 길 1-7. 신 보수가치   제2장 누가 약자인가   1-1. 인심과 수심 1-2. 베품과 이기심 1-3. 강자와 약자 1-4. 강자논리 1-5. 약자논리 1-6. 강자의 비탈 1-7. 약자의 험로   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1-1. 불평등 샘 1-2. 평등론 1-3. 평행한 삶 1-4. 삶의 사단(四端) 1-5. 책임의 행복 1-6. 신들의 평등 1-7. 인간의 지혜   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1-1. 열국주의 1-2. 제국과 식민지 1-3. 민족의 꿈 1-4. 제국의 꿈 1-5. 1인 나라 1-6. 초국의 실수 1-7. 무국의 질서   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1-1. 국민론 1-2. 민중론 1-3. 지성적 시민 1-4. 오만한 민중 1-5. 인공의 허(虛) 1-6. 신들의 공(功) 1-7. 인간의 꿈   제6장 역천의 이념인가   1-1. 건곤(乾坤) 1-2. 변증 소용돌이 1-3. 하늘의 영광 1-4. 반야(般若)의 지혜 1-5. 순천&역천 1-6. 현재형 인간 1-7. 미래 사다리   제7장 이상사회를 논하다   1-1. 제3의 역사 1-2. 사회적 굴레 1-3. 사회의 꿈 1-4. 대동사회 1-5. 커뮤니티 진보 1-6. 이상국가론 1-7. 이상사회론

Q. 경쟁과 차별이 궁극적으로 휴먼세상을 일굴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A. 휴먼이란 무엇인가. 막연한 사람 중심, 인간 존중이란 말로 휴먼의 깃발을 들면 오히려 권력용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휴먼의 절대정의는 없다는 전제가 매우 중요하다. 휴먼은 본래 맞춤식 옷이다. 대량의 기성복으로 제작하는 휴먼은 권력의 수단으로 떨어지기기를 역사적으로 반복해 왔다. 휴먼은 목적과는 다르게 인간이 만드는 허위의 탈로 변질되기를 잘한다. 가짜 탈을 쓰고 탈춤을 추는 휴먼이 늘 세상을 맴돈다. 인간을 중시하겠다는 신념이 이념성의 인간주의로 흘러갈 때 탈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아닌 인간주의는 극단성을 띠면서 과격해지는 양상으로 인간의 악의를 맞은편에서 불러낸다. 인간의 본성 중에 웅크린 악의가 계속 드러나면 끝내 큰 탈을 쓰고 만다. 탈 속에서는 극단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하면서 불의의 판이 벌어진다. 경쟁과 차별은 이런 망나니 탈춤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준다. 휴먼세상을 일구려면 경쟁과 차별이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 역할을 한다. (505쪽 : 유아독존 권력에 의지한 선전선동은 휴머니즘 이데올로기라는 화려한 옷을 걸친 채 시장을 훼손한다)

 

 

A. 극단의 대칭성은 지극한 조화라는 것을 이해할 때 차별이 무차별을 만들어 내는 그릇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용기가 과하면 폭력성을 띠고 부족하면 비겁해 지는 극단을 이해할 때 시시각각 적절한 용기를 발휘하게 되는 이치다. 용기는 대칭의 조절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용기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지혜로운 결단의 연속이다. 극단성이 조화를 이룰 때 극단을 아우른 진정한 용기가 나온다. 중용은 전체를 꿰뚫어 보고 경험하면서 늘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다. 차별이 없는 세상을 일구려면 차별과 무차별이라는 극단의 조화를 늘 실현해 가는 강력한 중심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유의지는 필수적 도구가 된다. (562쪽 : 차별과 무차별은 절대성이라는 하나의 진실에 있다. 이들의 상보적 관계는 공명하면서 필연적 얽힘을 따른다) 신성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분유하게 해 본유토록 했다는 것을 이해하면 신성의 사랑은 정해진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성의 뜻에 항상 공명할 수 있는 자유의지 장치가 인간 본성에 내재돼 있다. 전 생애에 걸쳐 이를 실천해 갈 때 신성의 전지전능한 선함인 전선(全善)을 선심(善心)으로 실천해 갈 수 있다. 지행합일을 넘어 실천하는 의지에 자유가 강력히 깃들도록 하는 틈새가 차별의 정체다. 누구나 자유의지로 만들어 가는 전선을 향해 갈 때 차별이 작아지는 세상을 구현해 갈 수 있다. 완전한 무차별은 당연히 없다. 무차별을 향해가는 도덕적 과정이 영혼으로 교류될 때 무차별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 자유로운 틈새로 들어가 자유의지로 무차별의 세상을 구현하는 주인공이 될 능력을 갖췄다.

 

 

A. 설사 인위적인 휴먼사회를 이룬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 휴먼을 완성해 가는 길이다. 휴먼은 개인의 자발적 능력으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사람들 사이를 순환한다. 이 순환은 운명과 동일시되는 반복성이다. 물리법칙의 인과론(因果論)이면서 법계-두물의 연기론(緣起論)이다. 이 순환을 돌리는 주인이 될 때 인간은 신적 권능인 이른바 ‘부동의 동자(動者)’ 처럼 창조권능을 소유해 운명을 개척할 자유를 한껏 누린다. (730쪽 : 인과율의 원리를 본다면 판단과 결정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책임 역시 시점만 다를 뿐 다가올 상태의 구속이다. 자유의 행보를 하는 순간 구속이 따른다. 나아가 인간은 이 구속에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노력 또한 자유다. 동시에 이 노력이 부(富)를 만드는 단초다) 운명의 특성이 순환이라는 것은 모두가 존엄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없는 세상은 운명이 순환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개별적인 순환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일정한 파장이나 주기를 형성한다. 이 파장이 기하학적으로 절묘하게 순환하는 원운동과 같다. 자신의 파장이 미치는 힘을 알고 그에 걸맞는 운명의 바퀴를 돌릴 때 경쟁과 차별의 주인으로 자동제어 시스템에 참여하게 된다. 휴먼사회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자유시장 운동장에서 경쟁과 차별이 절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완숙돼 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