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리건주 마약 非범죄화법 철회될 듯… 실패 자인한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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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4002, 상·하원 초당적으로 통과… 주지사 서명 시 6개월 징역형 등 복원
“실패한 ‘마약과 전쟁’ 지속” vs “다른 대안 있나”

김학형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03 13:21:48

▲ 소량의 마약 소지를 재범죄화하는 법안이 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의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 워싱턴 센터 건물 근처에서 한 시민이 마약 관련 도구를 들고 있다. 오리건·AP=연합뉴스

마약중독자를 ‘처벌 대상’에서 ‘치료 대상’으로 바꾸는 움직임을 선도한 미국 오리건주에서 이른바 ‘마약 비범죄화법’ 폐기 가능성이 커졌다. 주 의회가 소량의 마약 소지를 다시 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마약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 또한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닌 가운데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3일(현지시간) 오리건주 의회와 현지 매체 오리건퍼블릭브로드캐스팅(OPB)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하원은 이 같은 내용의 ‘하원 법안(House Bill·HB) 4002’를 찬성 51표·반대 7표로 통과시켰고 이튿날 상원 역시 찬성 27표·반대 3표로 이를 승인했다.

앞서 오리건주는 2020년 11월 주민투표에서 58% 찬성률로 마약을 비범죄화하고 중독자 치료 비용을 확보하는 내용의 ‘약물중독치료와 회복법(조치법 110)’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개인이 소량의 코카인·헤로인·펜타닐·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의 불법적 약물을 소지해도 구금·처벌받지 않dkT다. 적발되면 100달러 벌금이 부과되지만 소지자가 검사·치료 도움을 요청하는 핫라인에 전화하면 벌금이 취소된다.

이번에 의회를 통과한 HB 4002에 티나 코텍 오리건주 주지사가 서명하면 관련 처벌이 복원된다. 소량의 불법적 약물 소지 시 최대 6개월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의료·오락용 마리화나나 치료용 실로시빈(환각버섯 주요 성분)은 그대로 허용된다. 코텍 주지사가 서명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지지 신호를 보낸 바 있다. 지난달 HB 4002와 관련된 일련의 질문에 “(마약문제에서) 범죄화만 따로 떼어서 보면 요점을 놓치는 것”이라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반문했다.

공동발의자인 케이트 리버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포틀랜드)는 법안 통과 뒤 “HB 4002와 함께 오리건 주민들이 필요한 치료·돌봄의 접근 보장성(지원금)을 두 배 늘린다”며 “우리 사법 체계에 실질적 혁신적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팀 크놉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은 성명에서 “마약 소지 형사처벌을 복원시킨 역사적인 투표”라며 “오리건주는 더 이상 ‘마약 관광 주’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약물 과다복용과 중독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의회에서 할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으로 마약 비범죄화를 선도한 주에서 스스로 이를 철회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사실상 실패를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래 오리건주는 조치법 110에 따라 수억 달러의 마리화나 세수를 약물 치료 및 피해 감소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발표된 감사보고서에서 오리건주는 미국 내 약물 사용 장애 발생률이 두 번째로 높았고 치료 접근성이 꼴찌(50위)로 조사됐다.

한편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연구자와 시민단체 등이 마약 재범죄화 시도에 반발하고 있다. AP통신은 “(비범죄화)법이 약물 과다복용 급증을 불렀는지 여부를 판단하긴 너무 이르다. 처벌 위주의 과거 수십 년간 접근 방식이 효과가 없었다”는 관점의 의견을 보도했다.

미국 최대 시민권·인권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LCU)의 오리건지부 역시 지난달 성명을 통해 “마약중독 주민을 체포 내지 투옥하려는 의회의 모든 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감옥과 범죄화는 마약 중독이나 노숙자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행 처벌시스템은 마약 중독자들을 효과적으로 해방시킬 능력이 부족하다”며 “상·하원 의원들은 HB 4002를 통해 실패한 ‘마약과의 전쟁’을 고의로 반복하려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