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선거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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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선거와 이미지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6 06:30:30

▲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는 막춤을 추는 모습으로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BBC캡처

14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표본 개표 결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현(現)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의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그는 표본 90%의 개표가 이뤄진 가운데 약 59%를 득표했다. 그에게 쏟아진 유권자들의 지지는 2·3위와 비교해 볼 때 압도적이다. 외신들은 프라보워의 인기가 ‘귀여운 할아버지’ 이미지로 대중에 접근했던 그의 전략이 성공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소셜미디어에는 프라보워가 막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이 넘쳐 났다. 누가 보더라도 친근감 있고 귀엽기까지 한 그의 춤추는 모습에 특히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정책에 앞서 이미지가 국민의 마음에 먼저 파고든 것이다.

프라보워가 ‘이미지 메이킹’에 공을 들인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과거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약 30년간 공포정치·철권통치로 악명 높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 하에서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앞장선 주역으로 평가돼 온 인물이다. 이런 역사를 기억하는 인도네시아 국민 중에는 그가 이미지 세탁에 성공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소셜미디어에는 이번 선거에 국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2008년 이미 사망한 그가 마치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듯 메시지를 보냈다. 이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확산됐다.

수하르토의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히 살아 있는 이 동영상은 프라보워 캠프 측에서 AI로 만든 ‘딥페이크’임이 밝혀졌다. 수하르토의 권위적 이미지를 프라보워의 후광으로 삼겠다는 캠프 측의 의도가 읽힌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훔친 ‘귀여운’ 이미지뿐 아니라 과거 철권통치 시대를 기억하는 기성세대를 겨냥한 ‘권위적’ 이미지가 프라보워의 대선 전략으로 적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보의 이미지와 정치적 능력을 혼동하기 쉽다는 데 민주주의의 함정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여성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지도자의 역량을 ‘귀여움’에서 찾는다면 차라리 고양이를 뽑는 게 나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우리 선거판도 마찬가지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띤 모습에 속아 넘어간다면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폄하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