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누가 ‘한국 경제’의 목에 방울을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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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재팬’→ ‘피크 차이나’→ ‘피크 코리아’까지 회자
빅7, 그랜드 디자인·구체적인 밑그림 동반돼야 가능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16 06:31:30

한국 경제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젖줄인 수출에 청신호가 보인다. 새해가 시작된 지 아직 보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0% 정도 증가세다. 고무적인 현상은 주력 품목인 반도체를 비롯해 석유화학 수출의 회복세가 선명하고, 중국에 대한 수출도 20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출발이 좋다는 것이지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회복을 당기기 위한 노고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역시 기업이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국제전자제품박람회)’ 무대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한국의 자존심과 명운을 걸고 해외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정치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지만 경제 주체들은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안팎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국가 당면 현안 해결을 위한 성장 동력이 충분치 않다. 하향하는 성장의 기울기를 상승곡선(S-Curve)으로 반전시키는 힘이 미약하다. 공공과 민간 부문이 원팀이 되지 못하고 따로 논다. 오히려 공공이 민간의 발목을 잡으며 반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글로벌 트렌드와 경쟁국 추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가 종합 경쟁력이 계속 뒷걸음친다. 일본 경제가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피크 재팬’이라는 용어가 시중에 나돌던 것이 불과 3~4년 전이다. 이 말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휘청거리는 중국을 빗대 ‘피크 차이나’로 번지더니 이제 ‘피크 코리아(Peak Korea)’까지 회자된다. 일본 경제지 ‘머니 1(Money 1)’의 지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걱정하지 말고 한국을 먼저 되돌아보라는 따끔한 일침이다.

기분은 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일본은 세계 1등 언저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정상이 먼 데도 벌써 내려와야 한다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국운(國運)이 여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너무 허무하다. 최근 한국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가 가혹할 정도로 부정적인 것은 그만큼 우리가 처한 현실이 위중하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부인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덩치가 작아 변화의 시동을 걸 수 있는 민첩함에서 우위에 설 수는 있다. 반면에 내부의 극단적 진영 논리·남북 분단 등 한반도를 둘러싼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요인도 만만찮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시급하게 찾아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 요소다. 다시 말해 현재 가진 동력을 고부가가치화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진 것은 최대한 지켜야 하지만 이것을 능가하는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창출해 낼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요구된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큰 변화가 없다.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조선·무선통신기기 등 이들 품목은 여전히 10위권 안에서 요지부동이다. 대부분 기존 대기업 주력 업종이다. 변화가 없다 보니 강력한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을 턱밑까지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품목은 세계 시장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기도 하다. 한계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지구촌에 미래 먹거리 시장 선점을 위한 새로운 기운이 싹트고 있다. AI와 모빌리티를 비롯해 소프트웨어 영역이 크게 자리를 잡아 가는 중이다. 미국과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 강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의 도전도 거세다. ‘Fortune 500’에 의하면 핵심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다. 다만 원천기술에서 많이 밀리고 있어 이 부문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백업해 주어야 할 영역이다. 콘텐츠·플랫폼·리테일 산업도 떠오르는 먹거리다. 전 세계에서 한류(韓流)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 관점에서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아직은 찻잔 속 태풍이다. 우리에겐 이를 큰 먹거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생적인 기반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글로벌 중추국가·글로벌 빅7 등 듣기 좋은 말은 무성하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그랜드 디자인과 구체적인 밑그림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구조의 개편과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혁신적 제도개선, 노동력 부족을 극복할 대안과 인재 양성을 위한 대안, 사회적자본을 포함한 자본의 효율적 공급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국가의 경쟁력을 다시 선순환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수립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이다. 안타깝게도 내부의 전후 사정을 돌아보면 모두가 겉돌고 있다. 정치판은 저 살기 위해 그들만의 리그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온갖 포퓰리즘과 말의 성찬만 난무한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모이는 무리를 보면 현실과 괴리가 크다. 누가 ‘한국 경제’라는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 깜깜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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