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기의 한반도 테라포밍] 영화 ‘서울의 봄’의 진실과 교훈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역사는 영화·소설 등 ‘픽션’이 아니라 ‘팩트’로 배워야
하나회 숙청은 민주당의 주장과 달리 現 여당의 역작
이제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 가진 젊은 엘리트 필요

박진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2 06:31:30

영화 ‘서울의 봄’이 높은 관심 속에 관객몰이 중이다. 영화란 다큐멘터리와 달리 제작자와 배우들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픽션’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가장 임팩트 있게 촬영된 장면인 광화문 앞 전두광(영화 속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이태신(영화 속 장태완 ) 수도경비사령관의 대치 상황도 사실이 아니며 이태신이 한강 다리에서 제1공수단을 막는 장면도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회 소속 김진영 대령이 수경사 전차를 돌려보낸 사실을 반대로 연출하였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12.12를 평가할 때 신군부에 집중한 나머지 당시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들의 책임은 모두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본 모습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누구 한 명이라도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 앞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항변을 했었는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위세에 눌렸다 해도 ‘육군참모총장 연행 재가(裁可)’는 최규하 대통령 스스로의 의지로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지 않은가? 최규하는 누구인가? 그는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행정과장으로 근무하였으며 미(美) 군정 및 자유당 정부의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국무총리에까지 오른 인물로 ‘만주국 공무원 임용 이래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12.12 상황과 관련 장태완 장군의 인터뷰 중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64세이던 1995년 MBC ‘김한길과 사람들’이란 토크쇼가 바로 그것이다. 장 장군은 “궁극적인 반란 진압의 책임, 이건 헌법 상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중략)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은) 내란과 반란으로부터 국가의 헌정 질서를 지킨다는 겁니다. 대통령께서 장관의 보고가 없더라도 반란이라고 생각될 때 누구에게든 ‘야! 장관에게 빨리 얘기해서 즉각 필요한 조치를 내서 반란을 진압해’ 이 말 한마디면 끝장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바로 헌법상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장 장군의 말대로 대통령이 최고 통수권자로서 인지 즉시 지시를 내렸다면 5공화국의 탄생도 없었을지 모른다. 당시 국정 운영을 담당했던 정치인들의 개인 안위를 최우선으로 한 무책임한 행위는 모두 외면한 채 오로지 하나회 중심 신군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편향적인 것은 아닐까? 역설적으로 불과 ‘별 두 개’의 육군 소장과 소수의 심복들에 의해 국가가 통제될 정도였다면 그것은 당시 대한민국 수준이 그것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또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위시하여 입법·사법·행정부의 장·차관 및 모든 공무원이 그들의 책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당시 정치인들은 암묵적으로 10.26 사태 이후 혼란의 시기의 ‘군의 정치 승계’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개봉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세력들은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작 12.12의 주역인 하나회를 일거에 숙청한 것은 3당 합당 이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이다. 그것은 은밀히 진행되고 1993년 3월8일 불시에 발표된 ‘군인사명령’으로 시작된다. 주요 보직자들을 전역시키고 바로 후임자를 보임시켜 예하 부대 병력의 통제권을 일시에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삼정부 최대 치적이라 불리는 하나회 숙청 사건은 다른 측면에서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였다. 육사 출신 중에서도 특별히 선별된 엘리트 장교단이 일시에 무너지자 진급을 앞둔 장교 그룹이 정치인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정치군인들은 사라지고 정치인에게 위탁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정치군인들이 탄생한 것이다.

영화 초반 전두광 소장의 대사 가운데 “대령 이하 잘 들어. 너희들 서울대 갈 실력은 되지만 등록금 고민으로 육사 들어왔잖아. 이대로 있을 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1970년대 중반 이전 출생한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생 및 대학생 시절 대통령은 무조건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는 신분 상승의 통로였으며 그러한 위상을 갖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한때 매년 50~100여 명의 사관학교 출신 대위들을 5급 공무원으로 임용시키던 유신사무관 제도가 있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젊고 똑똑한 장교 출신 사무관들이 각 부처에 생기를 불어 넣던 시절도 있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국가의 엘리트 그룹은 이동을 한다. 육사 출신에서 서울대 공대·의대 출신 그리고 지금 윤석열정부에 와서는 서울대 법대와 사법시험 출신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 문재인정부 5년간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일삼던 운동권 출신들이 나라를 퇴보시켜 놓았다면 이제는 새로운 엘리트 그룹이 반드시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인이 아닌, 비겁한 침묵을 지키는 지식인이 아닌, 과거 군 엘리트 장교들의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혁신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가진 젊은 엘리트들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박진기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