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올해는 對日·對中 쌍둥이 무역적자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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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적 분업 구조 궤멸, 만성적 적자로 굳어질 공산 커
동남아·인도 등 수출 다변화 차질, 한국 무역 최대 위기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9 06:31:30

우리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3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1992년 수교한 그해 1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후 처음이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수출 효자 시장이라고 하던 중국에 마저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질 정도로 교역조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올해 들어 매월 적자를 기록하더니 11월 말까지 180억 달러 적자를 나타내 연말까지 누계로 2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를 빼면 적자 규모가 무려 300억 달러를 넘는다. 한심하게도 반도체 착시에 가려 대중(對中) 무역의 실상을 간과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이런 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일본과는 1965년 수교 이후 58년째 무역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적자의 정점을 찍었던 2010년엔 360억 달러가 넘기도 했지만 2019년에 잠시 190억 달러 대로 줄어들기도 했다. 2020년 이후 적자가 다시 늘어나 근래 3년간 240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보이는 중이다.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번 돈으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핵심 소재 혹은 부품 수입대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기 위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며 절치부심했지만 한계를 절감하고 현재는 거의 포기 상태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하고 있다. 정치적 구호만 요란했지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 등에서 무역흑자를 보고 있으니 일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적자는 감수하자는 분위기가 농후했다.

이제 중국에마저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으니 2023년은 대일·대중 쌍둥이 적자 원년(元年)이 되는 셈이다. 한·중·일 3국 간은 물론이고 한·중 양국 간의 분업 구조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깨지고 있었다. 중국은 일본 혹은 한국에 대한 부품·소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는 ‘홍색공급망(紅色供給網·Red Supply Chain)’을 200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진행해 오고 있다. 반도체 등 일부 핵심 부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갔으며, 이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은 게 한국 기업이다. 중국은 이제 부품·소재를 한국으로부터 수입하지 않는 대신 대부분을 현지 조달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으며, 국내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동남아 3국으로 쫓겨날 처지다.

왜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가. 기본적으로 중국에 팔 수 있는 상품은 점점 줄어들고, 중국에서 사야 할 상품은 더 늘어나야 하는 판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54억 달러에 불과하던 이차전지 소재(정밀화학 원료)는 올 들어 11월까지 125억 달러에 달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뿐만 아니고 이차전지에 더해 심지어 휴대전화까지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하물며 국내 전기 버스 시장의 절반을 중국산에 내주고 있을 정도로 파죽지세로 들어오고 있는 판이다. 특히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핵심 광물 33종 가운데 3대 수입국에 중국이 포함된 것이 25종에 달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막대하다. 수년 전부터 수입선 다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중국의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대안 부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긴요하지 않은 소비재의 수입도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저가의 중국 상품이 한국 내수시장을 마구잡이로 짓밟을 기세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페이는 한국 모바일 결제 시장을 정조준하면서 2만여 편의점을 포함해 쇼핑·교통 상권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은 초저가 중국 상품 직구 시장을 키우면서 한국 영세 상공인들을 코너로 내몬다. 한국 소비자들의 저가 구매를 충동질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소비자는 한국 소비재 상품을 거의 외면하고 있다. 자동차·휴대전화·화장품은 물론이고 엔터테인먼트나 게임까지 자국산을 더 선호한다.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열풍이 중국 전역을 휩쓸면서 자국산을 애용하는 가운데 한국산이 가장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 경제의 젖줄이자 경쟁력의 원천인 무역에서 일본에 이어 중국에까지 적자 행진이 이어지는 적신호가 켜졌다. 양국에 대한 적자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수출은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또 하나의 대안 시장인 동남아 혹은 인도 시장에선 고전하고 있는 신세다. 그뿐 아니라 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시장에서 큰 폭의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저가 중국산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수출선 다변화의 단추가 잘 끼워지지 않고 중국에는 만성적 적자 기미까지 보이면서 한국 무역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산업공급망 3050 전략을 발표하면서 첨단부품 특정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겠다지만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막중한 위기를 돌파할 특별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쪼그라드는 한국 무역을 되돌려 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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