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경제포커스] 규제 천국에서 규제 프리 국가 돼야 날 선진국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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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개 규제개혁 법안 중 국회 통과는 단 6개뿐
기업 해외 탈출·일자리 부족… 청년들에 부메랑

오정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1 06:30:44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지난 60년 우리 무역의 역사는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 그 자체”라며 “60년 만에 세계 수출 6대 강국이 됐다”고 치하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세계 최빈곤국 대한민국이 오늘날 선진국 초입까지 도약한 것이 수출 덕분이었음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어 윤 대통령은 기업인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규제는 요지부동이다. 정부의 규제개혁을 뒷받침할 146개 혁신 법안 중 11월14일까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단 6개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125개는 아직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15개는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윤석열정부가 ‘규제개혁 1호’ 과제로 내세웠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발의된 지 1200일이 넘도록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2020년 9월 심야 시간 등에 대형마트의 배송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윤 정부는 이 법안을 ‘규제개혁 1호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3년 넘게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이와 같은 유통산업 규제로 소비자가 온라인 유통업체의 새벽배송을 이용할 수 없는 지역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주지에 따라 유통 서비스의 질에 차이가 나는 ‘배송 디바이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새벽배송은 자정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상품이 도착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대형마트들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시간 외에는 주문 받은 상품을 배달할 수 없도록 유통 규제로 묶어 놓아 배송 디바이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배달 거리가 긴 곳은 비용이 높아 전문 새벽배송 업체들이 배달망 확충을 꺼리게 마련이다. 이런 지역에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유통망을 촘촘히 갖춘 대형마트 정도인데 대형마트들은 매일 0시부터 오전 10시·명절 연휴나 휴일·월 2회 마트 휴무일에 상품을 배달할 수 없도록 한 규제 때문에 관련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영업시간 외의 대형마트 배송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격오지 주민이 손해를 보게 하는 이와 같은 규제도 여야 간 의견 차이로 3년 넘게 계류 중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뿐만 아니다. 기업 투자 증가분에 10%p의 추가 세액공제를 해 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이달 말 종료된다. 정부는 연초 2011년 폐지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2년 만에 부활시켰다. 올해에 한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 기술 투자의 경우 대·중견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35%로 종전 대비 10%p 추가로 세액공제를 해 주었다. 경제계는 그동안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대기업 특혜’란 더불어민주당 차원의 반대에 가로막혀 연내 국회 통과가 사실상 무산됐다.

주택정책에서도 전매제한 완화는 정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적용됐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데 올해 2월 관련법이 발의되었지만 10개월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분양자들은 통상 입주 때 전세를 놓아 보증금으로 잔금을 내는데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잔금을 내기 어렵다. 또 분양자가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 입주 전에 아파트를 팔았는데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현행법 위반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대해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65.3%인 반면 ‘체감한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중소 제조업체가 가장 크게 애로를 느끼는 규제는 노동 규제·환경 규제·인증 규제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중소 제조업체가 규제개혁에서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사안이다.

한국은 가히 규제 천국이다. 기업들은 해외로 탈출하고 국내 투자는 연속 마이너스를 지속해 일자리 부족이 청년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2023년 1인당 GDP를 아일랜드 11만2000달러·스위스 10만3000달러·싱가포르 8만8000달러로 소국 룩셈부르크를 제외하면 사실상 1위·2위·4위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 3만3000달러로 35위에 머물고 있다. 아일랜드·스위스·싱가포르의 공통점은 규제가 없고 법인세가 낮아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점이다. 한국은 규제 천국에서 규제 프리 국가 되는 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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