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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가 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 남편의 무관심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궁정 생활의 즐거움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에서 목욕을 하며, 자신이 개최한 공연·파티·무도회에 즐겁게 빠져들었다.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 왕비는 점차 패션 아이콘이자 트렌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경멸적으로 ‘패션 장관’이라고 부르는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Rose Bertin)과 함께 자신의 스타일을 창출했다. 왕비는 로코코 풍을 좋아했다. 베르탱은 그녀를 위해 새틴이나 실크 같은 고급 천으로 드레스를 만들었다. 이 드레스 중 일부는 최대 15m의 천이 필요했다. 이발사 레오나르(Léonard)는 머리를 높이 올린 ‘푸프(pouf)’ 스타일을 연출해 왕비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패션 잡지가 증가하는 가운데 앙투아네트는 이 분야에서 따라야 할 최고의 인물이 됐다. 그녀의 패션은 유럽 시장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왕비는 호화로운 생활만큼이나 세련된 취향으로 모든 이의 이목을 끌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 열풍의 선봉은 바로 이때 나타났다. 베르사유와 다른 유럽 궁정에서 왕족 고객을 확보한 앙투아네트의 ‘패션 장관’ 베르탱과 같은 재봉공과 코르시카 상인 및 패션 상인들은 새로운 제국을 차지했다. 1777년에서 1783년 사이에 출판된 모로와 프로이드베르크의 패션 모음집에는 당시의 의상비, 낮 시간에 따라 옷을 입는 다양한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앙투아네트의 패션 무대는 주로 베르사유의 프티 트리아농 성이었다. 그녀에게 이 성을 선물한 사람은 남편 루이 16세였다. 그는 1774년 이 성을 앙투아네트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다. 사실 프티 트리아농은 루이 15세가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게 선물로 지어 준 것으로, 왕의 건축가 앙주-자크 가브리엘이 4년에 걸쳐 완공했다.
앙투아네트는 규모가 작은 이 성을 매우 좋아했다. 프티 트리아농은 고대에서 크게 영감을 받아 건축된 정사각형 모양의 건물이다. 건축 당시 유행은 신고전주의 풍이었다. 이 스타일을 시대의 입맛에 맞게 복원시켜 고대의 영광을 재현했다. 따라서 이 성은 선의 순수성, 코린트 양식의 기둥과 벽기둥이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왕비 앙투아네트는 이 성에 영국식 정원을 만들고 연극을 하기 위해 작은 극장을 지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음악가인 그녀는 노래하고 하프와 클라브생을 연주했다. 예술의 수호자인 그녀는 진정한 패셔니스타이기도 했기 때문에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르 브랭(Elisabeth Vigée Le Brun)을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에 늘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왕비의 치장에 드는 예산이 3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녀는 왕비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프랑스 풍자 만화가들의 표적이 됐다. 이들은 그녀에게 ‘적자 부인(Madame déficit)’이라는 별명을 붙여 낙인찍었다.
그녀는 새 옷을 한 번 입고 곧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비용은 어마어마했다. 왕비는 특히 보석을 좋아했다. 재무 총감독관 튀르고(Turgot)는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경고했다. 왕비의 어머니까지 나서서 딸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775년 그녀의 어머니는 심지어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 딸은 파멸로 치닫고 있다네”라며 딸의 사치를 걱정했다.
패션에 대한 왕비의 열정은 자기애적인 이미지를 주었고,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 왕국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데 왕비가 감히 이렇게 막대한 돈을 쓰다니! 국민은 견디지 못하고 분개했다. 그녀에 대한 소문과 비판이 춤을 췄고 오래된 반(反)오스트리아 정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왕비의 이미지는 자꾸만 얼룩져 갔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국모의 이미지를 더럽힌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1784년에 그녀는 남편인 루이 16세 왕의 정사에 개입하여 자신의 형제인 신성 게르만 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인들은 앙투아네트가 친정인 오스트리아의 이익을 프랑스의 이익보다 우선시한다고 의심했다. 이 일로 그녀는 프랑스 국민에게 프랑스의 왕비이기보다 낯선 오스트리아 여자로 인식되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의 분노는 고조됐고, 곧 왕국의 모든 악을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1793년 1월21일 남편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그녀는 시테 섬의 콩시에르주리(혁명 때 사형수를 수용한 감옥)로 옮겨졌다. 두 명의 헌병이 지키는 삼엄한 경비 속에 그녀는 차디찬 감방에서 밤낮을 보내야 했다. 사생활이 없는 끔찍한 굴욕을 견디기도 힘든데 자궁암으로 육체적 고통까지 더해졌다. 그녀는 세 번이나 탈옥을 시도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1793년 10월, 몰락한 왕비는 혁명재판소에 출두했다. 그녀는 용감하고 위엄 있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공화국의 적들과 관계를 유지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녀는 결국 서른 일곱의 나이에 혁명군에 의해 참수당했다.
‘적자 부인’의 인생은 끝이 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후세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녀의 베르사유 패션이 바로 그것이다. 이 패션은 오늘날 위대한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최고의 디자이너 티에리 머글러(Thierry Mugler)·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비비엔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앙투아네트 스타일에서 적지 않은 영감을 받았다. 2022년에 열린 패션위크의 세계 패션쇼에는 앙투아네트 스타일이 15개가 넘게 등장했다. ‘적자 부인’ 앙투아네트가 바야흐로 ‘흑자 부인’이 된 것인가. 기구한 그녀의 운명이 못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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