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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은 ‘연평도 포격전’ 13주기였다. 현지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여객선이 결항됐다는 연락이 왔다. 하는 수 없이 사흘을 더 기다려 26일 오전 8시 인천항여객터미널에서 연평도행 배에 올랐다.
인천항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를 잇는 여객선 코리아킹호는 하루 2회 왕복 운항한다. 부두를 출발한 배는 2시간여를 줄기차게 달리다가 소연평도에 잠깐 들러 사람과 짐을 부려 놓았다. 배는 날씨에 따라 결항이 잦다.
사람 옆 모습을 닮은 소연평도 얼굴바위를 지나자 서쪽 바다 저 멀리 점점이 떠 있는 어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에 조업료를 내고 꽃게잡이에 나선 중국 선박들이다. 우리 어선이나 북한 어선은 북방한계선(NLL)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양쪽 다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는 조선 시대부터 1968년까지 조기파시를 이루던 황금어장이었다. 여전히 조기가 잡히긴 하지만 생태계 변화로 씨알이 작아서 상품 가치는 없다.
2010년 그날의 기록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 연평도를 지키고 있던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 서정우 병장은 군 생활 마지막 휴가를 떠나기 위해 천천히 부두로 걸어 나왔다.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서 병장이 배 시간을 기다리며 먼바다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굉음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수상한 검은 연기와 함께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오발이야? 오발이지?”
거리로 뛰쳐나온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물었다. 주민들은 이 상황이 훈련이길, 오발이길 간절히 빌었다. 그때였다. 사이렌이 크게 울리더니 쉴 새 없이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서 병장은 부대를 향해 뛰었다. 역사는 그날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연평도 주민 김영순(59) 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눈앞에서 60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포탄 한 방을 맞고 순식간에 넘어갔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풀숲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놀라서 부랴부랴 마을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일하러 갈 때 타고 갔던 차를 두고 왔더라. 그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포격은 1시간17분 동안 계속됐다. 선전포고 없이 시작된 도발이었다. 그날 북한군은 군부대며 민간 지역 할 것 없이 170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그들이 쏟아부은 포탄으로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그날 무너진 건물은 총 133동으로 민간 주거지 5개 권역(연평리 177~177·325·346·367·478번지 일원)을 포함한다. 이외의 기타 포격 피해 장소로는 수협·면사무소 창고·보건소 등과 해안도로 일부가 있다.
연평도 안보 교육장은 무너진 민간 주거지 3개 동을 그대로 전시해 북한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특히 176번지는 피격 당시 지붕 전체가 유실돼 충격을 안기고 있다. 건물의 네 벽면과 창고 주변 돌담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 지붕이 피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어촌계에 근무했던 김모(55) 씨는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포탄이 눈앞에서 파바박 하고 떨어졌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사람들이 가족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섬에 안전한 곳이라곤 한 곳도 없었다. 마을도 산도 포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갈 곳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우리 군은 즉각적인 대응 사격에 나섰다. 해군은 함정을 띄웠고 공군도 서해5도 쪽으로 전투기를 보냈다.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인근 해역에 있던 어선들이 총동원됐다.
김씨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선에 실려 인천에 당도했을 때는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다리에서 철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김씨는 자신의 다리가 찢어진 것을 알았다. 다친 다리보다 그를 더 아프게 했던 것은 배반감이었다.
“인천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여기저기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사지에서 탈출한 우리의 눈에 그게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른 삶이 있구나….”
주민들이 섬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당시 연평도 선착장에서 근무했던 변정현(65세) 씨는 끝까지 남아 그곳을 지켰다. 그는 자기 몸을 던져가며 사람들의 탈출을 도왔다. 그가 몸을 피한 것은 주민들이 섬을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날
연평도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또한 집집마다 어선 연료로 쓸 기름통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 불이 옮겨붙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터였다. 연평도가 불바다를 모면한 것은 순전히 신의 가호였다.
연평도 안보 교육장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문화해설사를 하고 있는 김영순 씨는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었다. 촛불을 밖에 내놔도 꺼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집들이 불타고 있었지만 불길은 옆집으로 번지지 않았다. 만일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었더라면 기름통에 불이 옮겨붙어 마을 전체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것이다.”
대규모 폭격에도 피해 수준이 그리 크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군의 방사포 성능이 형편없었던 것을 들 수 있다.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쏘아 올린 122mm 방사포탄은 성능이 떨어져 불발탄이 많았다. 그들이 쏘아 올린 170발 중 80발 정도만 연평도 내륙에 떨어졌다. 최대 사거리도 20.4km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응 사격에 임했던 우리 155mm K-9 자주포탄은 불발탄 없이 북한의 무도와 개머리반도를 정확히 타격했다. ‘충분성 원칙’을 지키지 않고 80발 대응에 그쳤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사정거리 면에서 북한제 방사포의 두 배에 달하는 데다 명중률도 훨씬 높았다. 당시 대응 사격을 통해 품질을 검증받은 K-9 자주포탄은 외국으로 수출길이 열리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야 우리 땅이다
“연평도 포격전 이태 뒤였다. 하루는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않았다. 여기선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룻밤 발이 묶이게 된 외지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단 하루 머무는 것도 그렇게 불안한 일인데 우리는 어떻겠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큰일을 겪고도 우리는 섬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기에 연평도가 대한민국 땅인 것 아닌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와 북한 황해남도 과일군 무도·갈도·석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 NLL이 지나고 있다. 불과 4km 건너 북한 측 섬은 텅 비어 있다. 무도에만 약간의 군부대가 주둔해 있을 뿐 갈도와 석도는 무인도다.
반면 연평도에는 주민 2100명이 산다. 지도에 우리 땅으로 표기돼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살아서 그 땅이 우리 땅인 것이다.
연평도 해역은 그전에도 제1연평해전(1999)·제2연평해전(2002)과 같은 큰 진통을 겪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들이대는 명분은 동일하다. 남한이 먼저 북한 해역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유엔이 정한 NLL을 무시하고 그들 멋대로 해상경계선을 그어 놓고는 바다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이 있던 날 우리 해역에서는 해군의 군사훈련이 있었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포탄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향해 직접적인 대규모 무력도발을 벌인 것은 6·25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그것은 만행이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후계자 수업을 받던 김정은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고 있다. 권력 승계를 위한 실적쌓기용 도발이라는 것이다.
이날 북한군은 연평부대 포7중대의 K-9 자주포 6문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3문의 포에 불이 옮겨붙었다. 우리 군은 고장 난 1대를 제외한 단 2문으로 반격에 나섰고 바로 2문을 복구해 총 4문으로 대응 사격에 나섰다.
한편 부대로 발길을 돌리던 서 병장은 날아오는 포탄을 직격으로 맞고 그 자리에서 산화했다. 마지막 휴가도 반납하고 재촉하던 귀대 길이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당도하지 못했다. 다음날 피격 장소로부터 3m 떨어진 소나무 기둥에서 병장의 모표가 발견됐다. 해병대 모자에 붙어 있던 모표가 폭격의 충격으로 나무에 날아가 박힌 것이다.
26일 이 자리를 찾았을 때는 주민들이 헌화한 국화꽃이 곁에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날 군인 희생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입대한 지 3개월 된 신병 문광욱 이병이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문 이병은 당일 해병대 진지에서 포탄을 나르다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현지인의 사망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연평도에 일하러 온 외지인 김씨와 배씨가 포탄에 맞아 사망했다. 서 병장이 폭사한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민간인 사망 사실과 함께 북한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연평도 포격전을 통해 우리는 해병대원 2명을 잃었다. 1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 피해도 2명이나 됐다. 인명 피해가 그만했던 배경에는 여러 사람의 활약이 있었다. 특히 신병교육대 행정병 정연하 일병은 혼란 중에 스스로 판단해 신병 10여 명을 이끌고 인근 교통호로 대피했다. 정 일병이 신병들을 대피시키자마자 포탄이 신병교육대로 떨어졌다. 사상자가 늘어날 것을 한 병사의 기지로 막은 것이다.
북한군의 피해는 우리보다 컸다.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2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4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포격전 직후 연평 주민들은 경기도 김포·양곡의 막사에서 3개월간 머물러 있었다. 집을 잃은 이들은 인천의 임시 가옥에서 1년 반을 더 머물러야 했다. 국민성금으로 지어진 가옥이었다. 정부 보상이라고는 세대주에 600만 원, 세대원에 300만 원 나온 게 전부였다.
김씨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인천시와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누구도 연평도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는 연평 주민의 안전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타 도시는 아랑곳없이 잘들 지내고 있었다. 지난번에 (인천)시장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우리 안전을 책임지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연평도 포격전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시는 확실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군사 위험 지역의 정주자금에 대해서도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지난번 지방선거 때 (인천)시장님이 정주자금으로 월 20만 원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현재 15만 원 나오는 게 전부다. 그들은 우리의 목숨값마저 깎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토와 국민을 공격한 북한의 대규모 무력도발이었다. 연평 주민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평도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정부는 연평도 포격전 13주기를 맞아 이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희망의 싹은 트고 있다. 올 3월 연평도는 인천 어촌공동체 특화센터와 업무협약식을 맺고 연평도 특화상품개발 관련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6월에는 관과 민이 합심해 제1회 연평꽃게축전을 열었으며, 가을에는 수산양식박람회 등에 연평도산 해산물을 출품했다.
연평도 부흥의 중심에는 김기호(62) 연평바다살리기영어조합법인 대표가 있다.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전 이듬해 주임 원사로 연평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만 해도 연평도는 언제고 폭탄이 날아올 수 있는 위험 지역이었다. 누구도 가기 꺼려 하는 그곳을 김 대표가 찾은 것은 누군가 가야 한다면 자기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젊은 병사를 보낼 수 없어서였다.
“내가 연평도에 도착할 당시만 해도 온전한 곳이라곤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처참했다.”
그는 연평도를 재건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연평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고, 그 결과 김 대표는 국회의원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연평도는 수자원의 보고였다.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년을 1년 2개월 남겨놓고 연평도로 들어 와 꽃게 장사를 시작했다. 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꽃게보다는 육수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대표는 기분이 좋다. 올해부터 그 결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의 가치는 무한하다. 풍부한 수자원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적합한 역사 유적지가 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연평도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주민들은 아픈 기억을 딛고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북방한계선(NLL)=정전협정 직후 남북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해5도인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따라 그은 해안 경계선이다. 당시 유엔군과 북한은 지상의 군사분계선에는 합의했으나 해상경계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북한은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해상경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엔군은 서해5도와 북한 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해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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