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㉕이정린 前차관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발언’ 증언
[단독: 5·18 진실 찾기] <25> 위컴 장군 “총 뺏은 폭도는 소탕 마땅”
“공권력에 대응하는 권력은 절대 있을 수 없어”
前공수부대 지역대장 “간첩 섞여 있는 건 상식”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9 00:05:00
 
1980년 5·18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A 위컴(John Adams Wickham) 장군은 광주사태에서 민간인이 군·경(군인과 경찰)의 총을 빼앗아 군인에 대응한 것은 Another Enemy(또다른 적)로 간주되며 정규군이 즉각 소탕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린 전 국방부 차관은 27일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이사장 장낙승) 창립식 축사에서 “위컴 사령관은 ‘국가에는 정규군보다 더 강한 집단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존 A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
미 정보당국은 일찌감치 5·18 광주폭동은 북한이 사전 계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미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은 5·18이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한 것으로 공식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밀 해제된 문서번호 ‘80SEOUL 006865’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간첩 이창룡 생포 등)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불순세력’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impure elements’ and communist instigators lay behind the whole affair)”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이런 가운데 미 정보당국과 국무부·주한미국대사에 이어 5·18을 바라보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인식이 전직 한국 국방차관의 발언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전 차관은 “5·18 당시 합참의장 보좌관을 지냈다”며 위컴 장군의 직접 발언을 전해 들었던 시공간적 배경을 설명한 뒤 “공권력에 대응하는 권력은 있을 수 없고, 미국 경찰에 대응하는 자에 대해 미국 경찰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미국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위컴 장군의 발언을 전했다. 
 
이에 대해 한 5·18 연구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왕조시대에도 무력으로 왕정에 대항하는 것을 항적(抗敵)이라고 했다”며 “역적으로 보고 용인해선 안 된다는 개념인데 오늘날 만약 누군가 서울광장에서 경찰에게서 총을 빼앗아 경찰을 쏘면 강력하게 엄벌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5·18 당시 시위대의 항거 패턴은 부마사태 때와 달랐다는 증언도 나왔다. 
 
1979년 부마사태와 1980년 5·18에 폭동진압 작전군으로 참가했던 전직 공수부대 지역대장은 “부마 때와 달리 5·18 당시 폭도들 속엔 분명히 간첩이 섞여 있다는 생각은 공수대원들에겐 상식이었다”고 증언했다. 
 
3공수특전여단 13대대 9지역대장으로 광주에 갔던 이상휴(74) 씨는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끈으로 운전대를 고정하고 액셀에 돌을 괸 트럭이 부대원을 향해 쉴 새 없이 돌진하는 사이 신원미상의 운전자는 차에서 뛰어내리길 반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시민은 도저히 이같이 할 수 없다고 우리(공수대원)들은 확신했고 간첩 한 마리만 잡으면 영웅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작전에 임했다”고 지역대장으로서 당시 느꼈던 책임의 무게를 떠올렸다. 
 
대위급 중대장을 지휘하는 지역대장은 통상 소령급이다. 이씨는 최고참 대위였다. 임기를 꽉 채우고 진급을 앞둔 경우다. 곧 소령이 될 대위 최고참으로서 지역대장을 맡았다. 중대장으로서 부마사태에, 지역대장으로서 5·18에서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이씨는 “부마사태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고 대학생 임원이 지휘했는데 트럭 뒷문을 열고 토끼몰이식으로 에워싸면 자동으로 차량에 승차했고 부산 구덕운동장에 하차시켜 각서 받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며 “그러나 광주사태는 군조직을 방불케 하는 아주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어서 간첩이 지휘한 도발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 위례신도시 쪽에 주둔한 3공수는 5·18 당시 광주 파견 직후 전남대에 주둔했다. 도청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차단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곧이어 광주시청과 교도소를 사수하라는 무전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당시 3공수는 모든 작전 임무를 지역대 단위로 수행했다. 특수부대인 공수부대는 일반 부대보다 적은 병력으로 운용된다. 한 개 중대는 장교와 하사관을 합쳐 보통 12명이다. 지역대는 4개 중대 50여 명으로 구성된다. 모두 장교와 하사관으로 구성된 공수부대 중에서도 정예부대다. 다른 공수부대는 일반 사병이 포함되기도 했지만 3공수엔 사병이 없었다. 
 
▲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와 5·18특전사명예회복위원회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 창립식 및 5·18 진상규명 세미나’를 개최한 가운데 이상휴(왼쪽) 전 3공수여단 13대대 9지역대장이 광주사태에서 체험담을 전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정린 전 국방부 차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박미나 선임기자
   
“간첩개입 확신… 꼭 잡아 영웅되자” 작전 중 결의 
 
노끈으로 트럭 핸들 묶고 액셀은 돌로 누른 채 돌진 
부마사태와 달리 조직적·체계적… 전문가 지휘 솜씨 
전투력 뛰어난 3공수조차 수세에 몰릴 정도로 강해 
 
모두 직업 군인으로 이뤄진 3공수는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고 당시 육군본부는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조차 수세에 몰릴 정도로 조직적인 도발에 직면했고 부대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이씨는 아시아자동차 생산 군용트럭과 민간 관광버스·장갑차(APC)들이 3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무차별 돌진하는 사태가 연속적으로 계속됐다트럭 짐칸에 장작을 싣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고 운전자는 액셀 아래에 돌을 괴고 운전대를 나무로 고정한 채로 중간에 뛰어내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늘날 각 부대 정문 앞에 있는 철침판과 같은 것을 제작해 도로에 깔아 놓았는데 불에 탄 차량 돌진 공격이 계속되자 타이어가 파손된 차들이 방향을 잃고 도로 옆 민가를 덮쳐 많은 화재가 발생했고 이 차에 부딪친 16대대장 지프차가 전복돼 대대장이 다치고 운전병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계엄군의 사격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대대 지역대장인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인도 가로수 뒤에서 돌진하는 차량 바퀴 타이어에 실탄을 자동 발사하는 광경을 봤다”며 “차량이 전복돼야 하는데 한 대도 전복되지 않았다. 타이어가 파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억했다. 당시 지역대장에게는 사전에 실탄이 지급돼 탄창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총기 제원과 보급된 실탄 양에 대해 묻자 “M16 탄창은 총알 20발들이었고 당시엔 최초 3발은 공포탄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7발씩 두 개 탄창이니 총 34발이 지역대장에게 있었고 이것을 돌진해 오는 차량을 향해 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동료 지역대장이 총을 쏴도 타이어가 터지지 않은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고 5·18이 끝난 뒤 부대에서 타이어를 향해 직접 사격하는 검사를 해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훈련 때) 아무리 총을 쏴도 타이어가 터지지 않은 것을 보고 원인을 연구해 보니 회전하는 타이어가 총알을 튕겨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일각에선 폭도 차량을 향한 사격을 일컬어 “사격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전 국방부 차관은 “5·18 때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 위협을 느끼면 군인이 총을 쏘게 돼 있다”고 잘라 말했다. 불에 탄 채로 군인을 향해 돌진하는 차를 향해 총을 쏘는 건 군인의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하고 정당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돌진 차량이 아니고선 어떤 예외적 상황에도 시민을 향해 총을 쏜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상휴 씨는 “전남대에 집결한 군인들을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시민이 포위했다”며 “실탄 한 발 사용하지 않고 가스탄을 쏘며 대대별로 퇴로를 뚫어 간신히 전남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수세에 몰려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했는데 지난해 KBS 특집 다큐에서 3공수를 학살자로 매도하는 방송에 크게 분개해 KBS 측에 전화와 이메일로 항의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작년 5월18일 KBS1 방송에서 3공수 정보참모(소령)를 했다는 사람이 전남대에서 시민 180명을 생포해 군용트럭 3대에 60명씩 나눠 태우고 차량 호로(천막)를 씌우고 저항 못하게 가스탄을 3회에 걸쳐 터뜨리면서 교도소로 철수했는데 도착하니 6명이 질식사했다고 말했다”며 “목숨을 걸고 전남대를 빠져나와야 할 상황에 시민군을 생포했고 6명을 질식해 죽게 했다는 건 명백한 거짓 증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을 보면서 나와 동선이 겹친다고 느꼈는데 증언이 모두 엉터리였다”며 “탈출하기 바빴는데 시민을 생포하려고 시도했다면 공수부대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용트럭은 1개 분대 10여 명 승차가 정원이며 최대 15명까지 승차가 가능할 것”이라며 “호로를 둘러치고 있으면 더 공간이 협소해져 인형도 짐짝처럼 60개를 실을 수 없는 좁은 곳에 생사람 60명을 태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또 “부사관 3명이 본인인지 대역인지 알 수 없으나 방송에서 시민의 시신 3구를 교도소 정문 앞에 가매장했다고 증언했다”며 “교도소에 대한 폭도들의 군대식 공격이 잇따르자 이에 대응해 참호를 파고 매복을 서던 부대가 내가 통솔하던 9지역대였는데 우리 허락도 없이 정문으로 나와 땅을 파고 시신을 묻는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어 “전남대에서 교도소로 전술 행군을 하던 도중 인근 민가에서 무차별 사격을 가해와 부대원이 총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며 “민가를 포위하고 집을 수색한 결과 집 천장에서 M1및 칼빈 소총 수십 자루를 노획했다”고 덧붙였다. 
 
대학 졸업 후 3사8기 장교로 임관한 이씨는 군 생활 중 육군 ‘재구상’을 받았다. 재구상은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동료를 살린 강재구 소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투철한 군인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66년 제정됐다. 군인이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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