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루이 16세의 최후와 속죄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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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8구의 고요와 침묵의 오아시스
루이 16세 부부를 추모하는 경이로운 예배당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15 06:31:00

1791년 6월21일 바렌에서 체포된 루이 16세 일가. 파리 북동부에서 그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석 대의 마차가 룰(Roule)의 성문을 지났다. 왕의 마차엔 왕비, 왕을 호위하기 위해 의회가 파견한 페티옹(Jérôme Pétion)·바르나브(Antoine Barnave) 의원, 엘리자베스 부인, 르와이얄 부인, 왕세자, 그리고 세 명의 경호원이 탔다. 또 하나의 마차에는 하녀들이, 그리고 작은 마차엔 왕을 발견한 드루에가 앉아 있었다.

대중의 동요를 우려한 이 호송대는 파리 외벽을 따라 수도로 진입했다. 이윽고 샹젤리제를 지나 튈르리 궁에 당도한 것은 6월25일. 나흘이 걸렸다. 군중이 우르르 몰려들어 소란스러웠지만 곧 믿을 수 없는 큰 침묵이 흘렀다. “왕에게 박수를 보내는 자는 곤봉 세례를 받고, 왕을 모욕하는 자는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다”라는 방이 파리에 붙었기 때문이다.

왕의 도피행각은 백성들에게 배신으로 비쳐졌고 이는 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바렌 도주 사건 이후 의회는 입헌군주제를 살리려고 왕이 납치된 것이었다는 소문을 내야 했고 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왕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루이 16세는 한 달 동안 직무 정지를 당했다. 1791년 9월14일, 그는 제헌의회 앞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더 이상 그는 ‘프랑스의 왕’이 아니고 이제는 ‘프랑스인들의 왕’이 됐다. 이러한 직함 변경은 국민에 대한 주권 이양을 상징했다. 그리고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1792년 8월10일, 튈르리궁을 공격한 상퀼로트의 반란자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보였다. 왕은 더 이상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 게 역력했다. 그는 오히려 혁명이 실패하도록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 듯했다. 이날 오전 10시 경, 왕을 수호하기 위해 스위스 연방수비대가 파리에 입성했다. 이 전투로 수백 명이 죽었다. 궁지에 몰린 왕은 왕비와 두 자녀·여동생 엘리자베스 공주를 데리고 마네주 살(Salle du Manège)에 숨었다. 하지만 곧 체포됐고 탕플 타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루이 16세는 급기야 1792년 9월21일 프랑스 왕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왕의 재판은 전당대회 전에 열렸다. 체포되자마자 루이 카페(Louis Capet)로 개명된 왕은 세 명의 저명한 변호사(데제즈·말제르브·트롱셰)의 보호를 받으며 재판을 받았다. 그의 죄명은 ‘국가의 자유에 반하는 음모와 국가의 일반 안보에 대한 공격’이었다. 1793년 1월16일부터 17일까지 37시간의 법정 토론이 진행됐다. 최종 투표가 진행됐고 과반수를 겨우 채우는 찬성으로 유죄가 결정됐다.

1793년 1월21일 월요일 오전 10시20분, 서른아홉 살의 루이 16세는 파리 혁명 광장(현 콩코드광장)에서 기요틴에 처형됐다. 그의 마지막 말은 “프랑스인들이여, 나는 결백한 채 죽노라. 나는 내 적들을 용서하겠노라. 나는 나의 죽음이… 바라노라.” 그의 끝말은 사형 집행을 알리는 북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 개월이 흐른 10월16일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장소에서 처형됐다. 이들의 시신은 협정에 따라 파리의 마들렌 묘지의 공동 구덩이에 묻혔다.

프랑스인들은 왕의 죽음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발자크(Balzac)는 “왕의 머리를 베는 날, 프랑스의 모든 아버지는 머리를 베였다”라며 슬퍼했고, 레이몽 푸앵카레(Raymond Poincaré)는 “루이 16세의 죽음은 ‘집단 자살’이었다”고 한탄했다.

이 죽음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남겼다. 왕을 죽인 후 사람들은 그와 관련된 모든 과거를 거부했다. 그들은 1793년 이전의 프랑스를 망각하여 공화국 원년이라는 뚜렷한 달력을 가진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었다. 이 죽음과 함께 혁명은 두 동강이 났다. 왕의 죽음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뉜 것이다.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반혁명 진영, 즉 집단 망각의 진영으로 밀려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표면적으로는 그 끔찍한 트라우마가 진정됐다. 그리고 루이 16세의 복원을 위해 그의 시신이 공동 구덩이에서 꺼내졌다. 루이 18세는 그에게 왕에 걸맞은 장례식을 치러 주었고, 그의 시신을 생드니 대성당의 납골당으로 옮겼다. 1814년부터 프랑스 전역에서는 왕이 처형된 1월21일을 루이 16세의 안식일로 정하고 그의 영혼을 위한 진혼미사를 드리고 있다.

루이 18세는 1826년 루이 16세의 시신이 매장됐던 곳에 속죄 예배당(Chapelle expiatoire)을 세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추모했다. 이 예배당은 지롱드 당의 대표적 인물이자 1793년 11월8일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농 롤랑을 포함한 프랑스 혁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을 종교적으로 추모한다.

건축가 피에르 퐁텐이 그의 제자 르바스와 함께 만든 이 예배당은 1815년 1월21일에 착공하여 샤를 10세의 통치하에 1826년에 완공됐다. 신고전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이 건축은 루이 18세가 개인 재산에서 거금 300만 리브르를 선뜻 내 만들어졌다.

속죄 예배당은 파리의 중심부에 고요와 침묵의 오아시스로, 옛 마들렌 묘지를 덮고 있는 영국식 공원과 현 아케이드 거리를 연결하는 긴 편백나무 통로로 둘러싸여 있다. 1914년부터 역사적인 기념물로 분류된 이곳은 루이 16세 광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광장은 파리 8구 29번지 파스키(Pasquier) 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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