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0] 후크와 에이허브와 하록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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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항해한다는 것의 위험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8 06:30:10

저녁에 서울에서 보자며 터미널 앞에 나를 내려 준 하운은 주결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주결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살아서 다시 만나세.”

“물론입니다.”

나는 주결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었고 나의 미래 또한 확신했다. 하운이 곁에 있으니 주결은 무사하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컨디션도 최고였고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세상은 내게 무엇이든 해 줄 것 같았고 나는 무엇이라도 가질 자신이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최 박사와 나눈 마지막 인사인 것을.

“오늘은 해적 선장이 아니시군요.”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을 때 기사는 운전석에 앉기 전 승객들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좌석을 찾아 뒷자리로 갈 수 있도록 비켜서던 기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이틀 전 종점이라고 알려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익명의 존재에 익숙한 나는 스치고 말아야 할 사람이 나를 알아보았다는 데 당황했지만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된 상태라는 걸 상기하고 웃음으로 인사했다.

“앗, 잠시만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버스 입구에서 기다렸다. 앉아 있던 승객 몇몇도 무슨 일인가 귀를 쫑긋 세우고 기사와 나에게 시선을 모았다.

“멋있어서 말이죠, 저도 하나 주문했습니다. 배송도 무척 빠르더군요.”

기사가 운전석에서 꺼내 온 작은 상자 하나를 내 앞으로 내밀며 자랑스럽게 뚜껑을 열어 보였다. 해골과 두 개의 검이 그려진, 해적 선장 안대였다.

“우리 아이들이 피터 팬을 워낙 좋아해서 말입니다. 이걸 쓰고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후크 선장이 왔다고 깜짝 놀라지 않겠습니까?”

운전기사가 뿌듯하게 하하하 웃었다. 내가 흉내 낸 건 후크 선장이 아니었지만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그가 앞질러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전할 때는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예” 하고 웃으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후크의 갈고리 손, 에이허브나 실버의 외다리, 하록의 애꾸눈처럼, 어린 시절에 만났던 선장들은 무언가 하나씩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인생을 항해한다는 것은 보물을 찾아가는 신나는 모험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위험에 대한 경고이거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격려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서로 뒤엉킨다 한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승객이 모두 탄 것을 확인한 기사는 운전석에 앉아 출입문을 닫은 뒤 마이크를 들고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목적지와 출발 시간, 도착 예정 시간과 정차하게 될 휴게소를 미리 알리고 안전 벨트 착용을 당부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쾌했다.

“목적지까지 승객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버스는 뒷걸음질친 후 방향을 돌려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종점이 끝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듯 터미널에 도착해 짧은 시간 휴식했던 다른 버스들도 청소를 마치고 연료를 채우고 새로운 손님들을 실은 뒤 또다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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