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풍경 낯선 여행] 몰락의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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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우이천·양재천 물길 따라
길게 이어지는 연분홍 벚꽃 로드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08 17:46:51

벚꽃은 지지 않는다. 몰락한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끝에 장엄하게 몰락하는 것이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필 때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벚꽃이 지는 순간이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는 벚꽃이 빨리 피어서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진행했고 올해는 예상보다 벚꽃이 늦어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펼쳤다. 사람의 시간과 관계 없이 벚꽃은 자신의 시간에 꽃을 피운다.

벚꽃의 몰락이 다가오고 있다. 나무 80% 이상 꽃이 피면 만발이라고 하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이번 주말 꽃비로 화할 가능성이 높다. 벚꽃의 몰락은 나무가 크고 꽃송이가 클수록 찬란할 터이다. 서울 시내에서 대형 벚나무가 모여 있는 곳이 천변이다.

아담한 개천 ‘성북천’

청계천의 지류인 성북천은 복개 구간을 제외하면 3.7km 규모다. 이 개천은 박완서 소설 ‘그 남자네 집’에 안암천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성북천에서는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삼선교 분수마루 광장부터 성신여대입구역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이 장관을 이룬다. 우이천보다는 개천의 폭이 좁은 편이지만 우람한 나무가 많아 양적으로 벚꽃송이가 많이 달린다.

성북천 벚꽃길 중간 지점에 성신여대 정문으로 향하는 보문로 34길의 벚꽃 터널이 있다. 좁은 차도를 마주하고 서로에게 닿을 듯 피어있는 벚꽃의 자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스타벅스 성신여대정문점 2층 창가는 편안하게 앉아 벚꽃 비를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다.

성북천 벚꽃 로드의 장점은 인근에 맛집과 카페가 많아 원 코스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성신여대역에서 아리랑고개까지 벚꽃길이 이어져 하루 종일 벚꽃만 보며 걸을 수도 있다. 아리랑고개 지나 만나는 정릉천둘레길은 벚꽃은 물론 개나리·진달래·철쭉까지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어 프로 산책러에게 강추하는 코스다.

중간 개천 ‘우이천’

▲ 개나리와 복숭아꽃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우이천변 벚꽃길이다. 임유이 기자

우이동 사신다는 택시 기사님의 소개로 방문하게 된 곳이다. 벚꽃 비가 장관이라며 30분 내내 우이천 칭찬만 했다. 우리말로 ‘소귀내’인 우이천은 서울 강북구와 도봉구를 가르는 경계다. 8km 규모 우이천 물길 중 벚나무는 수유교와 우이교 사이 약 250m 구간에 집중적으로 식재되어 있다.

우이천은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가 빙하에 갇혀 떠내려온 곳으로 유명하다. 둘리는 도봉구 쪽 사람에게 발견되었다. 도봉구 쌍문동 2-2는 둘리가 얹혀살던 고길동의 주소지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우이천은 오수가 흐르던 자연하수도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하천 정비사업을 펼치면서 수질이 좋아졌다. 특히 생활하수가 하천에 직접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리하수관을 설치한 것은 두고두고 칭찬할 만하다.

이후 서울시는 우이천에 돌다리를 만들고 갈대를 심어 생태하천으로 탈바꿈시켰고 현재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물고기가 터를 잡고 살게 되었으며 왜가리가 날아와 먹이 활동을 하는 곳이 됐다.

벚나무들이 산책로 가까이 심어져 인접 사진을 찍기 좋다는 게 이곳 벚꽃길의 특징이다. 벚나무가 수적으로 막대하다 보니 한꺼번에 화르륵 떨어지는 벚꽃 비로 우산을 써야 할 정도.

큰 개천 ‘양재천’

이름은 양재천이지만 총 16km 중 절반이 과천 소유다. 나머지는 서초구와 강남구가 사이좋게 반씩 나누어 갖고 있다. 물줄기가 긴 만큼 벼농사 체험장과 수영장(얼음썰매장)까지 들일 정도로 하천 부지의 규모가 막대하다. 양재천은 과거 학천(학여울)으로도 불렸으며 탄천으로 물길이 이어진다.

양재천 벚꽃길은 양재천 보행자교부터 영동5교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이곳 산책로는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꽃이 한 데 어우러져 컬러감이 남다르다.

많은 사람이 찾는 만큼 때를 맞춰 서초구와 서초문화원에서 ‘벚꽃등축제’를 진행한다. 지난달 말에 시작한 축제는 4월28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영동1교에서 영동2교에 이르는 2.5km 구간에 둥근달 조명과 LED 조명을 활용해 밤에도 꽃의 질감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낮에는 연분홍 벚꽃 그늘을 걷고 밤에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변신하는 벚꽃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나게 된다. 또 4월 한 달간은 양재천 수변무대 주변에 조각 작품 20여 점을 전시하는 ‘야외조각전’을 운영한다. 자연과 예술 작품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시간!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 전체에 연분홍 꽃송이를 매단 벚나무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푸른 물길. 흰 꽃과 푸른 하천의 조화는 환상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성질 급한 나무는 벌써 꽃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벚꽃잎이 푸른 물길을 하얗게 덮을 몰락의 그날이 올 것이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