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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22] 낙화암 ③
왜 왕은 백제 왕실과 한집안이니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2 06:30:07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이 임존성 아래 벌판으로 진군했다. 많은 군사가 들어서자 벌판이 좁게 느껴졌다. 성 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흑치상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임존성의 백제 군사들은 이미 연합군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으로 통하는 가파른 산길에 크고 작은 목책을 설치하여 적의 진입을 막고, 성 곳곳에 보루를 쌓아 몸을 숨긴 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적군이 아무리 대군이라 해도 녹록히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흑치상지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은 요인은 정작 이런 눈에 보이는 방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군사들의 눈에 서려 있는 증오와 분노의 열기였다. 임존성으로 모여든 군사 중 상당수가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식솔을 잃거나 가산(家産)을 빼앗기고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연합군의 약탈과 유린을 몸소 겪었기에 그들의 적개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데 원수가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복수심은 죽음도 두렵지 않게 했다. 전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만큼 무서운 적은 없는 법이었다. 그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다면 백만 대군이라도 무찌를 수 있었다.
 
단숨에 백제 사비성을 함락시킨 당나라 대총관 소정방은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도성을 장악한 마당에 지방의 임존성쯤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방심은 금물이었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이야말로 패배의 지름길이었다.
소정방은 호기롭게 대군을 움직여 임존성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험준한 지형과 임존성 군사의 악착같은 반격에 가로막혀 성벽에는 접근도 못한 채 많은 희생자만 남기고 퇴각해야 했다. 당군의 공격으로 흑치상지 측이 입은 피해는 목책이 일부 파손된 정도였다.
철저히 패배하고 나면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 법이다.
소정방은 도망치듯 사비성으로 돌아왔다.
임존성 전투의 승리는 백제 백성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를 계기로 당군이 접수한 2백여 개의 성이 왕족 복신(福信)이 이끄는 백제 부흥군 편으로 돌아섰다. 이후로 이들의 세력은 당군을 압도하며 맹위를 떨쳤다. 금방이라도 의자왕을 구출하고 사비성을 되찾을 수 있을 듯했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백제가 원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사비성의 외곽 방비를 위해 세웠던 목책은 대부분 파괴됐다. 그래도 당군은 죽을 힘을 다해 성을 수비했다. 시간이 갈수록 백제 부흥군의 수장인 복신은 초조해졌다.
장군, 아무래도 장기전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체격이 우람한 데다가 눈썹이 굵고 눈꼬리가 올라가서 마치 염라대왕처럼 생긴 승려가 입을 열었다. 외모만 보아서는 수도승이 아니라 전장을 누비는 장수와 같았다. 그의 법명은 도침(道琛)이었다.
복신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는 없소. 얼마 안 가서 구원군이 당도할 것이오.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렵소.”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속전속결로 성을 함락시키려던 계획은 틀어졌지만, 저들의 구원군이 당도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당군도 지쳤을 테니 총력을 모아 단번에 들이치는 겁니다. 절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도침의 말이 옳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사비성을 탈환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의 대총관인 소정방은 임존성 싸움에서 크게 패한 뒤 당으로 급히 돌아갔다. 당군은 후퇴하면서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 신하 93명과 백성 12800명을 끌고 갔다.
대총관은 낭장 유인원(劉仁願)을 남겨서 사비성을 지키게 했다. 이미 주력부대가 빠져나갔기에 사비성은 충분히 공략할 만한 대상이었다.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가는 바람에 왕을 구하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이 때문에 당군에 대한 백제 백성의 적개심은 더욱 커졌다. 이것이 왕족인 복신에게는 큰 힘이 됐다.
 
복신은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으로 당시 백제 땅에 남아 있는 왕족 중에서는 국왕과 가장 가까운 혈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가 백제 부흥군의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도성인 사비성의 수복은 복신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소명이었다. 만일 이대로 후퇴한다면 그건 단지 한 번의 실패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자신감을 얻은 백제 부흥군의 사기를 꺾는 일이었다.
도침 대사의 말씀이 옳소. 우리에게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사실을 내 잠시 잊고 있었소. 여러 장수는 들으시오. 사비성을 포위하고 주요 지점에 목책을 세우시오. 성을 함락하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주변에 둘러선 장수들의 얼굴이 숙연했다.
도침이 나서며 목청껏 외쳤다.
장군의 명을 받들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장수들도 도침을 따라 충성을 맹세했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도침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었다.
 
도침은 개암사를 창건한 묘련(妙蓮)의 수제자로 복신이 주류성(周留城)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많은 승려와 신도를 이끌고 합류했다. 머리가 좋고 웅변술이 뛰어났기에 백제 부흥군 사이에서 영향력이 컸다.
장수들이 각자 임무를 맡아 돌아간 후 복신과 도침만이 남았다.
장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도침이 목소리를 낮췄다. 늘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그답지 않게 신경을 쓰는 걸 봐서 심상치 않은 일인 듯했다.
복신도 덩달아 목소리가 작아졌다.
무슨 일이오?”
사비성을 탈환한다고 해도 당과 신라에서 대군을 보내면 우리의 힘으로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고구려 왕이 우리 사신에게 자금과 물자 지원을 약속하면서 조만간 신라를 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당나라가 고구려에 선전 포고를 한 만큼 당장은 고구려도 당과의 일전을 준비하느라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왜()뿐입니다. 고구려의 대막리지께서도 왜국에 사신을 보내 연합 전선을 형성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왕은 백제 왕실과 한집안이니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사신을 보내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고 군사를 청하면 구원군을 보내 줄 겁니다.”
누구를 사신으로 보내면 좋겠소?”
좌평 귀지(貴智)가 적임이라 생각합니다.”
귀지는 사려가 깊고 언변이 뛰어나기로 평판이 자자했다. 여러 차례 왜를 왕래해서 실권자인 중대형(中大兄) 왕자를 비롯한 중신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좋소. 좌평을 왜로 보냅시다.”
이리하여 귀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왜로 향하게 됐다. 그가 떠나기 전날, 도침이 막사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예전부터 막역한 사이이긴 했지만 단순히 건승을 비는 자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은밀한 분위기였다.
 
복신은 사비성 남쪽에 여러 개의 목책을 쌓고, 백마강 맞은편 왕흥사(王興寺) 부근에 자리한 잠성(岑城)에도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로써 백제 부흥군은 남과 북에서 사비성을 압박해 갔다.
사비성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은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도 전해졌다. 백제 전역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라 여기고 있던 당 고종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만일 이대로 사비성을 빼앗긴다면 지금까지 당군이 치른 희생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고종은 좌위낭장 왕문도(王文度)를 웅진 도독으로 임명하여 신라로 보냈다. 백제에서 퇴군한 소정방의 부대는 이미 고구려 원정에 투입했기에 당분간은 대규모 병력을 백제로 파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왕문도로 하여금 신라의 군사를 징발하여 쓰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삼년산성에 도착하여 무열왕을 알현한 왕문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백제 부흥군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할 장수가 급사했으니 당 조정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이제 부흥군과 대적할 수 있는 전력은 신라군밖에 없었다. 이로써 전쟁의 주도권은 신라군으로 넘어갔다.
 
무열왕은 이번에야말로 신라군이 당군의 들러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태자 법민과 함께 많은 장병을 이끌고 백제 부흥군의 거점 중 하나인 이례성(爾禮城)을 쳤다.
이례성의 군사들은 신라의 대군을 맞아서 끝까지 잘 싸웠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이 신라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례성이 함락되자 이제껏 백제 부흥군 편에 서 있던 주위의 성들이 다시 신라로 돌아섰다. 상황이 급변하자 복신의 군대는 졸지에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신라군과 이에 호응하여 사비성으로부터 출격한 당장 유인원의 군사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공격을 퍼부었다. 사방이 포위된 상태에서는 방어를 위해 쌓아 놓은 목책도 무용지물이었다.
사정이 다급하게 돌아가자 복신은 사비성 남쪽의 진영을 버리고 북쪽의 잠성으로 군사를 후퇴시켰다. 하지만 저항 세력의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고 작심한 무열왕이 이들을 쉽게 놓아줄 리 만무했다.
잠성에 대한 신라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벌어졌다. 막바지에 몰린 복신의 군사들은 안간힘을 다해 싸웠지만 계속해서 불어나는 신라군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복신은 결국 많은 군사를 잃은 채 잠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간신히 성을 빠져나온 복신은 신라군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눈앞에 칠갑산(七甲山)의 수려한 산세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험난한 산길을 따라가자니 자신에게 닥칠 험난한 앞날을 미리 겪는 듯해서 답답했다.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소?”
방향을 잃은 복신이 도침에게 물었다. 참패를 당한 이후로 판단력마저 상실한 듯했다.
산등성이 몇 개를 넘으면 봉수산이 나타날 겁니다.”
봉수산이라면 임존성이 있는 산을 말하는 거요? 내 흑치상지 장군이 임존성에서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을 대파했다는 이야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소.”
그곳으로 가서 흑치상지 장군과 힘을 합친다면 재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겠소. 당장 임존성으로 갑시다.”
복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복신은 앞장서서 험한 길을 헤쳐 나갔다. 흑치상지와 힘을 합하고, 주변의 크고 작은 세력을 규합한다면 나당연합군을 대적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조금 전까지 쇳덩어리를 단 듯 무겁던 발걸음이 어느새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한편, 거센 풍랑을 헤치고 간신히 왜의 비조(飛鳥)에 당도한 귀지 일행은 영빈관 소속 관리의 안내를 받아 판개궁(板蓋宮)으로 향했다. 평시의 사신행이라면 삼현육각을 잡히고 화려한 기치를 날리며 느긋하게 행차할 테지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기에 바람처럼 말을 달렸다.
판개궁에 도착한 귀지는 황급히 말에서 내렸다. 백제 사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명왕(齊明王)은 예관을 보내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백제의 상황은 어찌 돌아가고 있는가?”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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