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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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격렬한 전쟁의 와중에 일순간 숨이 멎은 전장터 같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굽히지 않을 세계적 수중의 국내 의료라지만 환자들의 체감 서비스는 날개 잃은 천사처럼 추락해 바닥을 치고 또 치는 듯 했다. 환자들은 실망과 불안에 떨었고 의사에 대한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지는 듯 했다. 인술을 베푸는 새 생명의 현장은 어느덧 인적 드문 슬럼가처럼 돌변했다. 마치 목숨을 걸고 팽팽하게 대치하는 군사분계선 만큼이나 삼엄했고 살벌한 전운마저 감돌았다.
“앞으로 2주를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 의료 관계자는 3차 의료기관의 마지노선이라며 이같이 알려왔다. 의사파업의 직격탄이 환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부는 집단행동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해 최소 3개월 면허 정지 처분에 들어갔다. 과연 뿔난 의사들을 달랠 복안이 정부에게 있는지는 현장을 지키는 일부 의사와 환자들에게도 관심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젠 주·야간 새벽 당직을 서며 마지노선을 지켰던 전임의와 의대 교수마저 전공의 행정 처분에 사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애꿎은 중증 환자들의 고통만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환자들의 눈으로 볼 때 국내 병원 상황은 하나의 “악몽”과도 같았다.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삼성·서울성모 등 빅5병원에서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소아중증환자와 암환자 등은 더는 못 참겠다며 호소문을 냈다. 의료 정상화와 전공의 복귀를 호소했다. 정부의 무심한 대응에 환자와 의사가 갈라치기 되면서 평행선을 달려온 불똥이 튀고 있다며 통탄하고 있다.
4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 병원 모습은 폭풍전야의 망망대해와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항해사를 잃은 채 불안에 떨고 있는 승객들을 태우고 침몰을 앞두고 무작정 돌진하는 배처럼 느껴졌다. 간호사와 의대 교수들만 남아 있던 곳에서 발견한 전공의 의료진. 이들은 “레지던트들이 그만 둔 상황에서 인턴까지 그만두는 건 당연하다”며 “현재 의대 증원 3000~5000명이 될 것이라는 괴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피곤이 겹쳐오는 갑갑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들은 “전공의 4년 차들은 이미 수련이 됐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며 “가장 직격탄을 받을 건 1·2·3년 차들”이라며 “의대 증원에 이어 한의사들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건드릴까봐 겁에 질려 있다”고도 했다. 이날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대학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에는 생명에 직결되는 과 외에는 대부분 전공의가 현장을 떠난 상태로 소수의 의대 교수들만 남아 현장을 지키는 상황이다.
한 마취과 전문의는 “어제도 새벽 3시까지 당직을 섰다”며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버틴 게 2주째”라고 했다. 당장 콜이 들어오면 일단 기계처럼 수술방에 들어가 마취를 하고 있는 그는 “정말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며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40·50대가 중추를 이루고 있는 의대 교수 집단이 체력의 한계를 이겨가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 본관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는데 관계자 전언에 의하면 빅5에 와 봤자 제대로 된 처치를 받을 수 없을 것임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환자들이 경증의 경우 종합병원 혹은 개원의를 찾고 있어 상대적으로 숫자가 줄어보이는 것이었다.
빅5 외에는 소아중환자 병동도 없어… “죽으란 얘기냐”
집도의 적어 수개월 기다리던 환자들 허탈… 기약없는 대기
“바이탈과 지킬 전공의 국비로 고용해 투입해달라” 호소
전공의 잃은 집도의 교수 상실감 너무 커… 집단 사직 사태
응급실 또한 한산하기는 그지 없었는데, 현실화한 의료 대란이 ‘의료 실종’으로 현실화한 모습이었다. 이미 입구가 폐쇄돼 언론에 공개가 되지 않았음에도 입구가 한 곳 밖에 없는 응급실에서 통상 한 시간에 응급차가 3~4대 정도 온다는 응급실도 응급센터 앞에 증발된 모습이었다. 다만 휠체어를 탄 환자로 보이는 이들은 다급함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차를 이용해 응급센터를 찾은 후 내부로 들어갔다. 응급의학과는 전공의들의 손이 특히 많이 가는 곳이다. 심폐소생술·체외순환생명유지술·중심정맥 삽관·기관 삽관·기도확보 처치 등을 통해 들어 온 응급환자를 일차진단한 후 처치에 필요한 술기를 담당하는 부서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손이 없어서 온다는 응급차들을 돌려보내고 있는 실정‘이라서 응급차가 많이 없을 것이라고 전해왔다. 한 전문의는 “예전에는 조그마한 통증에도 응급차를 타고 오던 환자들이 현재는 정말 응급상황이 아니면 병원에 오지 않아 환자가 없어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전공의 부재와 가장 큰 문제는 암병동과 어린이병원이다. 암 환자의 경우 전이가 빨라서 일촉즉발의 수술일 불가피하다. 특히 수술 특성상 집도의가 적은 수술의 경우 수개월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데 전공의들 집단 사직으로 수술 진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수술이 취소 된 환자들은 ’진통제‘로 버티며 하염없이 수술 날짜가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에 소식을 전해 온 한 환자는 “온 몸에 암이 다 퍼졌고 복막까지 전이됐는데, 진통제로만 버티고 있다”며 “의사가 없다고 예약이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더 큰 문제는 소아 중증 환자다.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전공의는 2주 전 빅5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곳이다. 다만, 소아청소년과와 어린이병원은 특성상 수년 전부터 전공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문의와 교수들로 정상운영이 가능한 모습이었다.
큰 혼선은 없어보였으나 입원 어린이 환자 보호자들의 표정에는 우려가 엄습해 보였다. 보호자들도 “위중증의 경우 교수님들이 아직 정상 진료중”이라고 했다. 소아 경증의 경우 보호자들은 동네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기자에게 한 환자 보호자는 “당장 갈 병원이 없는 건 아닌데, 앞으로 이 사태가 더 커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우려된다”고 했다. 뇌관은 소아중증환자다. 한 전문의는 본지에 상황의 시급함을 알리며 “암수술과 소아 중환자는 빅5외에는 병동도 못 찾고 집도의를 찾지 못한다”며 “의사도 약도 장비도 없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전문의는 “2월과 달리 3월은 손이 너무 적어 예정된 암수술이 대부분 취소된 상황”이라며 “정부가 정말 바이탈과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바이탈과를 지킬 전공의를 당분간이라도 국비로 임시 고용해서 투입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나섰다. 이날 발표한 호소문에서 “정부와 정치인, 의료계는 편안한가. 의료공백 속에 우리 중증질환자들은 긴장과 고통으로 피가 마르고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며 “진통제를 복용하며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의료정상화를 촉구했다.
관련해 이날 또다른 전문의도 “이날 오전부터 의대 교수 사직서가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다”며 “어렵게 얻은 자식같은 전공의를 잃은 집도의들의 상실감도 이미 선을 넘어섰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 복귀 설득에 지친 의대 교수들 사직서가 봇물처럼 올라오기 시작한 이날(5일)을 기점으로 의료계에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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