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민주체제’ 위협하는 언론 광고 시장의 정치·경제학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7 06:31:00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이 신봉하고 있는 자유주의 언론관은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언론관은 당시 가혹한 언론통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20세기 중반까지도 존재했던 검열과 인지세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리는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결정되는 것으로 그 어떤 이유로도 표현 자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다.

밀은 특히 신문에 부과했던 인지세를 가장 크게 비판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사상가나 언론인들은 19세기 중반 광고 수입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신문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사의 재정적 안정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지어 정치권력과 유착된 수신료에 의존하는 KBS보다 상업광고로 안정적 경영 구조를 지닌 MBC가 진정한 공영방송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궤변에 가깝지만 왜곡된 한국의 공영방송 구조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광고가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도구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광고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 시장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일종의 유통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광고는 경제적 효과라는 시장 논리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

광고의 효율성은 구독률이나 시청 점유율 같은 이용자에 대한 노출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광고매체·프로그램·시청 시간대 등도 목표 수용자에 의해 선택된다.

여기에는 정치 논리 같은 비경제적 요인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 광고 시장이 순수하게 경제 논리에 의해 작동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30년 넘게 소수 지상파방송이 엄청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독과점 구조와 더불어 뉴스 독점이라는 정치·사회적 영향력 때문이었다. 케이블TV 같은 다채널 방송이 급성장했음에도 지상파방송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대부분의 유료방송 채널들이 고전하고 있는데도 주요 신문사들이 종합편성(종편) 채널 진입을 위해 경쟁한 이유도 뉴스 때문이었다. 승인 주체인 정부 역시 그것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종편 채널들은 단기간에 방송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뉴스가 기업들의 광고를 유치하는 데 아주 좋은 도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SNS·유튜브 같은 온라인 매체들이 급성장함에 따라 기존 매체들의 뉴스 독점력을 붕괴시키면서 그 위력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또 지속적인 광고규제 완화로 시청자들의 노출 회피를 최소화할 수 있는 중간광고와 프로그램 내용과 연계된 PPL(Product PLacement·영화나 드라마에 제품·브랜드 이미지를 소도구로 넣는 광고 기법) 등이 허용된 것도 뉴스 매체의 광고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응해 뉴스 매체들은 자사 프로그램 협찬과 광고를 연계하는 방법으로 광고 매출을 보완해 왔다. 이것은 상품 판매 촉진이라는 본질적 효과보다 광고주와 관련된 보도를 관리하기 위한 이른바 ‘보험성 광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언론매체들의 광고 경쟁력이 뉴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변질된 광고 시장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노정되고 있다. 매체들이 신문의 영향력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했다고 의심받는 ‘신문 열독률 조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 신문사와 대기업 간 불공정 보도를 둘러싼 갈등 이면에 광고 수주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 보도도 나오고 있다.

광고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니다. 최근에는 국내 OTT(Over the Top·영화나 TV드라마 등을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넷플릭스까지 광고 경쟁에 돌입하면서 광고의 파이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AI로 무장한 온라인 플랫폼의 광고 경쟁력은 급속히 위력이 커지고 있다. 이 매체들은 콘텐츠 내용과 광고를 연계시키는 ‘콘텐츠의 광고화’ 현상을 더욱 정교화시키고 있다.

상업적 콘텐츠와 연계된 광고가 유통 구조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뉴스와 연계된 광고는 정치·사회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광고 수입에 주로 의존해 온 신문과 지상파방송은 극심한 광고 감소와 경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곧 뉴스 의 영향력을 매개로 한 광고 시장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황근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