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 명소 산책]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콩시에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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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아네트가 마지막 두 달 동안 수감됐던 감옥
파리 시테 섬 서쪽의 궁전, 중세의 시계탑이 일품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7 06:31:00

열네 살 어린나이에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 신혼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신랑은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할 생각이 없었다. 그 나이의 남자라면 으레 이성에 관심을 가질 법도 했지만 루이 16세는 이성에 무척 무관심했다. 이는 그의 신체적 결함 때문이었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고 결혼 후 장장 7년이 지나서야 수술대에 올랐다.

왕비와 남편 사이엔 친밀함이 거의 부재했다. 왕은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해 일주일에 몇 번씩 사냥을 하러 나가거나 다락방에 올라가 자물쇠를 만들었다. 앙투아네트는 이를 몹시 불만스러워 했고 차츰 친구들이나 궁녀와 함께 프티 트리아농의 은신처에서 고립돼 갔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스웨덴 장교 악셀 드 페르센(Axel de Fersen) 백작과 사귄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들의 관계는 앙투아네트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두 사람은 수십 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 편지들의 일부는 파괴되거나 사라졌고 60여 통만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됐다. 일부는 숫자로 암호화되고, 일부는 검은색으로 지워져 있다.

최근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보존연구센터(CRC)는 색칠된 부분의 내용을 첨단기술을 이용해 일부를 읽어 냈다. 이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앙투아네트의 후손 중 누군가가 편지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페르센 본인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었다.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페르센과 앙투아네트의 사이를 연인 관계로 의심해 왔다. 그러나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이 둘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설렘도 없고 경박하지도 않았다. 잉크로 적힌 서신의 구절이 보여 주는 왕비는 성숙한 여인이었다.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고, 왕비는 튈르리 궁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매 순간 자녀들의 삶을 걱정했다.

큐레이터 이자벨 아리스티드 아스티르는 “250년 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이들의 활기찬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아스티르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왕비와 백작을 비극적으로 갈라지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셀 드 페르센. 이 스웨덴 백작은 앙투아네트와 특권적인 우정을 나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774년 1월 파리에서 열린 무도회였다. 당시 페르센은 스웨덴 왕국의 가장 큰 권력자의 아들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북유럽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부호 중 하나였다. 페르센은 열여덟 살 때 유럽 궁정을 일주하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 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이들은 베르사유 궁에서 또 만났다. 이때 앙투아네트는 왕세자비가 아닌 왕비였다. 그녀는 “우리 만난 적 있지요?”라고 소리쳤다. 베르사유에 정착한 페르센은 1779년부터 왕비의 친인척 모임에 합류하여 그녀의 호의를 얻었다. 이때 둘이 함께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곧 이 스웨덴 남자는 미국 독립 전쟁 참전으로 베르사유를 떠났고, 1780년 독일 보병 부대의 대령이 됐다. 그는 이 전쟁과 프랑스 혁명 기간 뛰어난 군사 업적들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데 주력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의 중재 덕분에 1783년 스웨덴 왕립 연대의 대령으로 임명됐다. 앙투아네트는 페르센과 그의 측근들을 맞이하기 위해 두 개의 방을 내부 사무실에 마련했다.

페르센은 왕비를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가 여동생 피페르(Sophie Piper)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유일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겠다.”

왕비를 위해 1791년 유명한 왕실의 도주를 계획한 것도 사실 페르센이었다. 하지만 왕비는 바렌에서 잡혀 튈르리 궁으로 돌아왔다. 페르센은 1792년 2월13일에 그녀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스웨덴어 신문에 이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13일 월요일, 왕비의 집에 갔다. 국가 경비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는 평소 가던 길을 택했다. 거처는 멋졌고 그녀는 거기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앙투아네트는 콩시에르주리로 끌려가 수감됐다. 이때 페르센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다. (…) 내가 천 번을 내 목숨을 바쳤을 만큼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이제야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것만 같다. (…) 그녀가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친절하며….”

앙투아네트가 수감된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 혁명기에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앙투아네트는 생의 마지막 두 달을 이곳에서 보냈다. 페르센은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고 왕비는 결국 혁명광장에서 처형됐다.

비운의 여인이 최후를 보낸 콩시에르주리. 이곳은 본래 중세 왕들의 거주지였다. 생트 샤펠을 포함한 시테 궁전의 일부로 왕궁에는 두 개의 큼지막한 중세 스타일의 방이 남아 있다. 혁명재판소는 앙투아네트를 포함한 2780명의 죄수를 이곳에 수용했다. 그 흔적이 죄수 예배당 곳곳에 남아 있다. 시테 섬 서쪽에 위치한 콩시에르주리는 고색창연하고 14세기 세워진 시계탑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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