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석 이야기 [6] 수도의 관문에서 폐역으로 전락한 ‘서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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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부터 19년간 경부선의 종착역
세 자치구에 걸쳐 있는 5호선 서대문역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19 16:30:04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정문 앞에 표지석이 하나 서 있다. ‘서대문역터’. 주차된 차들 사이에 낮에 엎드려 있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표지다. 역터란 역이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과 200m 거리에 지하철 서대문역이 있다.

지상에 있던 철도역을 지하로 이전한 것인가 싶지만 서대문역(폐역)과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역이다. 사라진 서대문역은 1900년부터 1919년까지 19년간 경부선의 종착역이었다.

경성정거장에서 서대문역으로

1899년(고종 36) 경인철도가 완공되고 1900년(고종 37) 7월8일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서울 시내로 기차가 드나들게 되었다. 당시 경성역에는 남문·신문 두 개의 출입문이 있었다. 신문은 ‘경성정거장’ 혹은 ‘새문밖정차장’ ‘서문외정거장(西門外停車場)’ ‘경인철도정거장’으로 불렀다.

수도 서울의 대표 철도역을 남문(현 서울역 자리)이 아닌 신문(경성정거장)으로 한 것은 이유가 있다. 본디 한양은 종로라는 대로를 세로축으로 하여 설계된 곳이다. 지도상 한양도성의 중심은 경복궁이 아닌 탑골공원이고 광화문 네거리는 서쪽에 치우쳐 있다. 서쪽의 신문을 종착역으로 하는 것이 도심 진입에 유리했던 것이다.

또한 경인철도를 건설할 당시 조선의 정치적 중심지는 경운궁(덕수궁)이 있는 정동이었다. 장차 무악재 방향으로 경의철도가 뚫릴 경우 정동에 잇닿아 있는 경성정거장이 분기점이 될 공산이 컸다.

하지만 경의철도의 분기점이 용산역으로 결정되면서 경성정거장은 외형을 확장하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 1905년 5월 남대문역이 완공돼 철도 교통의 중심지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남대문역이 ‘경성역’이라는 이름을 가져가고 경성정거장은 ‘서대문역(서대문정거장)’으로 역명이 변경되었다.

1919년 3월31일 역사의 뒤안길로

1918년에는 남대문역과 수색역을 한 줄로 잇는 금화산 터널 공사가 시작됐다. 미미하게나마 존재하던 서대문역의 필요성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결국 터널 공사 도중인 1919년 3월31일 서대문역은 폐역되었다.

한때는 서울을 대표하는 경성정거장으로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곳이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서대문에는 하루에 기차가 몇 번씩 떠나지도 아니하고 다만 석탄과 신탄이 조금씩 풀릴 뿐이므로 예전에 번창하던 자취는 그림자도 볼 수가 없게 되었도다”고 1919년 3월22일자 ‘매일신보’는 싣고 있다.

그리고 서대문역이 완전히 문을 닫는 날, 매일신보는 다시 취재를 나갔다.

“3월31일 폐역 당일 오후 9시59분 열차에 승객 11명이 내리고 10시10분에 떠나는 인천행 열차에 32명의 승객을 취급한 것이 마지막 운행으로 집계되었다.”

서대문역 폐역 이후 역 부지인 순화동 1번지는 철도 종사자의 주거지인 관사촌(官舍村)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1955년 가을, 재단법인 이화학원이 서대문역 부지를 매입하면서 또 한번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다. 결국 1960년대 말 재단 측에서 관사촌을 철거함으로 서대문역은 벽돌 한 장 안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서대문역처럼 현 5호선 서대문역도 정체성이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역 하나가 세 자치구에 걸쳐 있다. 1·2·7·8번 출구는 서대문구, 3·4번 출구는 종로구, 5·6번은 중구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주소는 어떻게 될까? 지하철 서대문역의 공식적인 주소는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126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통일로라는 도로명이다. 군사분계선 냄새를 폴폴 풍기지만 버젓이 서울 한복판에서 출발하는 도로다. 이 도로는 서울 중구 봉래동2가 서울역에서 시작해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판문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통일로는 총길이 42.3km의 긴 도로인 것이다. 통일이 되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딱 마라톤 풀코스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