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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수도였던 부산은 격변기 근현대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 부산은 수영구 남천동의 옛 대통령 별장을 산뜻한 외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켜 역사를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서구에 있는 임시수도기념관은 피란기 서울의 경무대(청와대)를 대신했던 곳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3년이나 머물렀던 곳으로 길이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어진 시기는 다르지만 두 곳 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건축물의 가치가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청와대 버금가는 아름다운 관저를 부산에서 만나 보자.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지 도모헌
수영구 남천동 황령산 기슭 5400여 평 부지에 연면적 4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옛 부산시장 관사는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의 작품이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별장 용도로 건축됐다. 부산 청와대였던 셈이다. 건물의 위치가 높다 보니 정원에서 바로 광안리 해안과 광안대교가 바로 건너다보인다.
밖에서 보면 평온하기 그지없지만 부산 청와대는 지난 40년간 많은 부침을 겪었다. 1993년까지 10년간 대통령의 지방 숙소와 시장 공관으로 사용되었으나 1993년 민선 시장이 출범하면서 시장 공관에서 ‘부산민속관’ 타이틀을 바꿔 달게 됐다. 그러나 정체성이 불분명해서인지 갈수록 방문객이 줄어 1998년 안상영 시장 취임과 동시에 다시 시장 공관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잠시, 허남식 시장이 취임하던 2004년부터 열린행사장 명목으로 다시 일반에 개방됐다. 정체성 변신을 꾀했다고는 하지만 이곳을 시민의 공간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일반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외부 시설에 한해 그것도 평일에만 출입할 수 있었다.
현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1년 당선과 동시에 옛 시장관사의 완전 개방을 약속했다. 그 무렵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촬영이 이루어지면서 시민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드라마에는 진양철 회장의 집 ‘정심재’가 바로 이곳이다.
비슷한 시기 최욱 건축가의 설계를 바탕으로 리모델링이 시작됐고 지난달 24일 ‘도모헌’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건축 40년 만에 완전하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도모헌은 ‘무엇을 도모해도 좋은 장소’라는 뜻이다. 이에 영화 상영관·미술 전시관과 음악·마술쇼 공연장으로 운영 중이다. 산책에 특화된 ‘소소풍 정원’은 부산시 제1호 생활정원이다. 생활정원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정원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녹지 면적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춰 조성하는 정원을 말한다. 하나같이 정갈하고 쾌적하지만 도모헌에는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집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대신 그 시절의 모습은 사진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도모헌 관람객은 KBS 부산홀 주차장 80면과 주말 부산동여고 주차장 30면을 이용할 수 있다.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월요일은 휴무.
1023일 동안 대통령이 머물렀던 곳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3가에 임시수도기념관이 있다. 부산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2개월 만인 1950년 8월에 한국의 임시수도로 지정됐다. 이때부터 1953년 8월까지 1023일 동안 부산은 임시수도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임시수도가 됐으니 대통령 관저가 있어야 했다. 전쟁 중에 청와대를 새로 지을 수는 없는 일.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 건물이 관저로 낙점됐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 건물은 서양식 주택과 일본식 주택이 절충된 형태로 ‘ㄱ’자 구조로 되어 있다. 대지 면적 792평에 건축 면적 155평의 2층 건물로 1층 주 출입구에 사빈당(思邠堂)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경남도청의 창원 이전 후인 1984년 6월25일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하면서 역사학자 정중환 선생이 지은 당호를 독립운동가 한형석 선생의 글씨로 현판을 새겨 걸었다.
‘사빈’이란 빈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빈’은 지금의 섬서성 순읍에 있었던 중국 고대 은나라의 제후국을 지칭한다. 빈의 제후 고공단보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북방 오랑캐에게 빈을 내주고 기산 남쪽의 주원으로 이주했다. 그가 선정을 베풀었기에 빈의 백성들은 모두 고공단보를 따라왔다. 이를 기반으로 그의 손자 문왕이 빈을 회복함은 물론 중국 전체의 패권을 장악해 주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사빈당이라는 당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서울을 내주고 부산에 임시수도를 마련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빼앗긴 땅을 수복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쟁 중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의 업무를 처리하고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일상을 영위했던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과 미군 그리고 국군을 접견했다. 국내외 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던 곳도, 외국 사절단의 예방을 받았던 곳도 이곳이었다.
한국은 전쟁 중에도 올림픽에 참가했다. 1952년 한국은 제15회 헬싱키올림픽에 6종목에 걸쳐 35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대통령은 선수들을 관저로 초청하여 직접 격려했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대통령의 정무 공간이면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곳이었다. 대통령은 대내외 활동이 없을 때면 서재에서 독서나 서예에 몰두했고 취미로 분재를 가꾸었다.
전쟁의 화마에서 비켜서 있다고 부산이 늘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부산정치파동’ ‘국제구락부사건’ 등 대통령 선거를 두고 적지 않은 잡음이 일기도 했다.
도모헌이 과거의 흔적을 깨끗하게 갈아엎은 데 반해 이곳에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과 생활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밀랍으로 재현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집무실과 응접실·주방 등이, 2층에는 3개의 다다미방과 엔가와(툇마루·縁側)가 있어 전시실로 활용 중이다.
서울 환도 후 이 건물은 다시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1983년 7월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관사가 비게 되자 부산시에서 매입해 지금의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했다. 몇 차례 복원을 거치긴 했지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은 2012년 9월 전시관을 추가로 개관했다. 본관 옆 전시관에는 6·25 전쟁과 관련한 유물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6·25 전쟁 당시 참전 군인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피란민의 판잣집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임시수도 시기 문화 예술인의 사랑방이었던 다방 ‘밀다원’을 재현하여 당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 사이에는 산책로와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한가로이 걷기 좋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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