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기의 시사&이슈] 대통령과 분리된 여당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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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책임 윤리로 무장해 대통령 국정 철학 뒷받침해야
野, 尹 정치 손 떼라면서 총선이 대통령 중간평가라는 모순

최재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08 06:31:10

“전형적 ‘보스’는 매우 냉철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 ‘직업 정치꾼’은 상류사회에서는 경멸의 대상입니다… 그는 막후에서 활동하는데 이것이 영국 리더와의 차이입니다… 그는 어떤 원칙도 갖지 않은 채 단지 무엇이 표를 끌어 모으는 데 유리한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인류사 최초로 3권분립을 헌법에 규정한 미국의 정당 제도는 자본주의 기업 제도와 닮았다. 당은 유권자 연합의 요구를 받은 정강정책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모은다. 기업이 이윤을 내기 위해 주력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 내는 것과 유사하다. 또 당직과 공직 후보자를 분리하여 당을 운영한다. 경영자가 기업을 대표하지만 주주가 경영자를 발탁하고 실적으로 통제하는 것과 같다.

기업에서 주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과거 미국 정당에서 ‘보스’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뛰어난 자질을 가진 공직 후보자를 발굴하고 그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예비선거에 내세워 당의 공직 후보자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공직 후보자로 출마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당 제도는 19세기 말까지 극심한 엽관주의(spoils system·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관행)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후 직업 공무원 제도를 확립하여 엽관주의가 거의 청산된 지금도 당직과 공직 후보자를 분리하여 운영하는 계약적 정당 제도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 미국 TV에 **당 ‘전략가’(strategist)라고 자막에 표기되는 자가 과거 ‘보스’의 후예다.

미국 정당 제도의 핵심은 계약 관계이다. 계약 관계는 당사자 쌍방 간의 약속이 지켜진다는 믿음과 보장이 있어야 확립될 수 있다. 정당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후보자를 발굴한다. 그는 정당이 조직한 유권자 연합의 요구를 담은 정강 정책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의 공직 후보자로 선발된다. 그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공직자로 선출되어 좋은 활약을 펼치면 당의 세력도 커진다. 미국 정당에서는 공직 후보자가 자신을 추천한 당과의 약속을 지키고 또 공직자는 그를 선출한 유권자연합과 약속한 공약을 지켜 정치·사회적 계약을 잘 지키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

미국과 달리 전근대 전제주의(despotism)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계약 사회가 아니라 정실주의(cronyism) 사회다. 특히 경제 영역과 달리 정치·사회적 영역에서는 계약의 전통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다. 한국의 정당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나면 소멸하고 다시 누군가 지도자로 떠오르면 그를 중심으로 재조직된다. 과거 유럽의 명사 정당에 비해 지도자 개인의 자질과 인격에 훨씬 더 의존하는 정당 제도다.

한국의 자칭 ‘보수당’은 고위공무원 출신자들의 ’인생 2막’을 위한 정당이고 현재의 야당은 ‘운동권 성골’들의 공직자 만들기 정당이다. 모두 당과 공직 후보자 간의 약속, 그리고 유권자와 공직자 간의 공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이 중요한 정당이다. 흔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켜 선진국이 된 나라라고 말한다. 산업화는 탁월한 선대 정치 지도자 덕분에 성공했지만 공직자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하거나 부정선거를 저질러도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 정치·정당 제도를 갖고 있는 한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

최근 언론에는 윤 대통령과 한동훈 집권당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관계에 대해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집권당 대표는 대통령과 수직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다. 사이비 언론과 보수 언론 일부는 성 상납 받은 패륜 정치인을 치켜세우고 부패와 이적 행위에 서슴없는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처럼 너스레를 떤다. 공작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편 야당은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떼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번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주장한다. 대통령더러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총선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 수시로 대통령을 국정농단(國政壟斷) 혐의로 탄핵하겠다고 겁박한다. 헌정 중단으로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신들의 권력만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세계가 복잡해지고 국민의 요구가 다양해진 현대는 내각책임제 국가뿐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도 정당을 매개로 입법권과 행정권이 사실상 융합되는 정치가 일반화되고 있다. 책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입법부 구성과 여당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한국의 정당은 지도자 중심의 정당이다. 윤석열 정권의 지도자는 윤석열이다. 그 정권을 뒷받침하기에 집권당이라 불리는 여당은 윤석열의 비전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다만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대통령 직위(presidency)를 이용하여 공천 등 당무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누가 뭐라고 선동해도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당의 국회의원은 ‘책임 윤리’로 무장하여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해야 한다. 현 집권당 대표는 차기에 집권하여 한동훈의 당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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