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성 루이 왕의 야망과 생트샤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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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시관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곳
시테 섬 한 가운데 떠있는 천상의 예루살렘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31 09:46:35

프랑스 최고의 왕 성 루이. 그는 프랑스를 유럽 제일의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사들이기로 했다. 1237년,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황제 보두앵 2세(Baudoin II de Courtenay)가 그리스도의 성관을 베네치아 전당포에 넘겼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보두앵 2세에게 프랑스 왕은 자신이 이 관을 되찾아 오겠다고 제안했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였던 성 루이는 그리스도의 왕관을 얻으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성 루이는 베네치아인들에게 돈을 주고 그리스도 가시관을 손에 넣었다. 그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13만5000파운드는 당시 왕실 연간 수입의 절반을 넘는 액수였다.

1239년 8월19일, 이 유물을 실은 마차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베네치아를 거쳐 프랑스 욘 강과 센 강을 따라 이동한 끝에 파리에 마침내 도착했다. 이 결정적인 순간, 국왕은 왕실의 치장을 버리고 약식 제복을 입은 채 맨발로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달려갔다.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손에 든 그의 뒤를 동생 로베르(Robert)와 성직자, 그리고 영주들이 맨발로 뒤따랐다.

1239년 10월21일,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성 루이 왕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하느님은 가톨릭 신앙을 보호하고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나라들보다 프랑스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왕국은 하느님의 왕국이며, 프랑스의 적들은 그리스도의 적들입니다.”

1241년 9월, 성 루이는 성 십자가 유물 2점, 성상 유물 1점, 그리스도의 옷, 그리고 그를 묶었던 사슬 등을 획득했다. 그 다음 해에 예수를 꿰뚫은 창살과 수건,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성의와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입었던 옷 등 모두 22점을 구입했다. 이 유물들은 한동안 시테 궁전의 중심부에 있는 성 니콜라 예배당에 보관됐다.

왕은 이 성유물을 제대로 된 성소에 모시고 숭배하기 위해 궁전 내에 예배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생트샤펠(Sainte-Chapelle) 이었다. 이 예배당은 센 강 한 가운데 돛단배처럼 떠 있는 시테 섬의 시테궁전 쉼터에 지어졌다. 생 루이는 수난 유물의 배경이 되는 이 예배당이 천상의 예루살렘이 되길 원했다.

공사는 1241년 가을부터 시작됐다. 이는 장장 7년에 걸쳐 진행됐다. 1248년 4월26일 성루이 왕이 예수의 성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생트샤펠이 완성됐다. 이 수려한 고딕의 건축물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남쪽 건축물을 지은 피에르 드 몽트뢰유(Pierre de Montreuil)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예배당의 윗부분은 성 십자가에 헌정되고, 아랫부분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졌다. 파리 최고의 금세공 장인이 만든 3미터 높이의 예배당 신전에는 왕이 수집한 유물이 보관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무장한 돌의 분출은 군주의 바람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왕궁 아파트의 연장선상에서 두 개의 첨탑이 겹쳐져 있고 두 개의 작은 나사로 연결된 계단이 있다. 미와 신앙의 찬가인 생트샤펠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최고봉으로 그 상상력은 예술의 정점을 찍는다. 이러한 작업은 파리를 기독교의 수도로 인식시키려는 왕의 야망이 현실화 되는데 크게 공헌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카페 왕국의 위신을 강화하고 서방 기독교에 힘을 실어줄 기회를 찾기 위한 성 루이 왕의 정치적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생트샤펠은 1630년과 1776년 화재로 크게 손상됐다. 이 예배당의 진수인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많은 고통을 겪었다. 1690년의 홍수로 훼손됐고, 첫 번째 개보수공사에서도 전체 구조가 많이 변경됐다. 그 후 프랑스 혁명기에 거의 파괴될 뻔했고 유물들이 흩어졌다. 다행히도 1846년 고딕 예술이 다시 유행하면서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20세기 발발한 두 차례의 전쟁도 이 예배당을 괴롭혔다. 게다가 너무도 많은 방문객의 발길로 외부의 오염과 내부의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도 2008년에 시작되어 2015년에 완공된 대규모 복구 작업으로 이제는 예전의 빛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생트샤펠은 많은 유물을 잃어버렸지만 다행히 그리스도의 가시관만은 꼭 간직해 파리 노트르담 성당 재무부에 보관하고 있다. 성관은 의심할 여지없이 파리 노트르담에 보관된 유물 중 가장 귀중한 것이다. 성관에는 못과 십자가 조각도 보관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오후 3시, 사순절 기간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성 금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개 돼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은 본가인 생트샤펠로 돌아와 많은 이들의 숭배를 받는다. 생트샤펠은 프랑스 건축가·유리 공예가·그림 제작자의 예술이 전성기를 이루며 유럽 전역을 빛냈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파리 지하철 4호선 시테(Cité) 역에 있는 이 기념비는 해마다 프랑스 전역과 전 세계에서 90만 명이 넘는 인파를 반긴다. 이는 몽생미셸과 개선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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