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 명소 산책] ‘자물쇠 왕’ 루이 16세와 베르사유 궁의 비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루이 16세 왕이 마지막으로 거처한 궁
은밀한 작업실서 군주는 자물쇠공으로 변신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11 06:31:00

프랑스 절대왕정의 마지막 왕 루이 16세. 그의 진짜 이름은 루이 오귀스트 드 프랑스( Louis-Auguste de France)다. 1754년 8월23일 베르사유에서 태어난 그는 루이 드 프랑스 왕세자와 그의 두 번째 아내 마리 조제프 드 삭스의 아들이다. 그는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으며 ‘불쌍한 작은 오리’라는 느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준비 없이 열아홉에 왕좌에 오른 그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줍음을 잘 탔고 무능한 왕의 이미지를 덮어 썼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묘한 인물이다.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이미지는 실제와 거리가 멀다.

사실 루이 16세는 계몽주의 사상을 지닌 개방적이고 교양 있는 군주였다. 왕은 당대의 기술적 진보에 열정적이었지만 국가의 엄청난 적자에 직면했다. 그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탄생을 적극 지지했다. 베르사유 성에서 그는 첫 번째 열기구 비행을 조직하고 전설적인 탐험을 시작했으며,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 프티 트리아농(트리아농 궁)을 선사했다.

이런 왕에게는 놀라운 열정이 있었다. 그는 자물쇠 공예에 심취해 있었고 심지어 자물쇠 장인(Feutry라는 이름으로 서명됨)이라는 이름도 부여받았다. 이는 왕의 통치에 놀라운 요소로 작용했다. 그 근거는 역사학자 조셉 웨버의 회고록 모음집인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찾을 수 있다. “왕은 기계학을 매우 좋아했고 그의 오락 작품은 자물쇠였다”라는 기록이다.

왕과 자물쇠공.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이 육체적인 작업을 매우 좋아했다. 매우 수줍고 소심한 그는 업무가 끝나면 프랑스 수비대의 전 군인이자 자물쇠공인 프랑수아 가맹(François Gamain)과 함께 그의 아지트로 철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할아버지 루이 15세로부터 물려받은 양질의 도구를 사용해 자물쇠를 만들었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 궁전의 지루한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베르사유의 수많은 축제와 오락보다 그는 높은 층에 위치한 그의 작업장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왕의 처소에는 통치자가 정치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도서관이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 회계는 물론 개인 회계도 꼼꼼히 챙겼다. 위층에는 그의 작업실이 있었다. 사냥과 함께 자물쇠를 만드는 일은 왕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거리였다. 그는 이 육체적이고 섬세한 예술을 즐긴 것이다.

▲ 대장공 루이 16세의 캐리커쳐.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왕의 이러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특히 왕족들에게 이를 숨기고자 했다. 따라서 가맹은 은밀히 왕을 지도했다. 훌륭한 대장장이인 그는 왕에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가르쳤다. 왕이 옆에 없을 때면 그는 베르사유에 있는 모든 자물쇠를 책임졌다. 루이 16세가 궁녀들과 왕비에게 이 취미를 숨기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맹은 왕과 함께 비밀리에 이 취미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궁전에 화재가 일어나자 그는 자물쇠 제조소의 지인들과 함께 왕을 구했다. 그들은 자물쇠가 잠긴 작업장에서 왕을 구해 내 번지는 불길을 뚫고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왕실이 베르사유에서 강제 퇴거당했을 때에도 루이 16세는 이 취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튈르리 궁에서 그는 아들에게 자물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르쳤고, 감옥 문 자물쇠를 바꾸기 위해 온 밀수업자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은 자물쇠 때문에 끔찍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왕은 가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손실 또한 막대했다. 가맹은 튈르리에 있는 루이 16세의 아파트에 모든 비밀 서신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철의 옷장(l’Armoire de fer)’이라는 금고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왕에 대한 충성의 약속을 깨고 롤랑 국무장관에게 왕실의 아파트와 왕세자의 아파트 사이의 통로 벽에 숨긴 금속 장롱의 존재를 털어놓았다. 이 정보를 입수한 롤랑은 국민회의에서 왕을 비난했다. 이 문서들 때문에 루이 16세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결국 단두대에 끌려가야 했다. 이 스캔들을 ‘철장 사건’, 또는 ‘자물쇠업자 프랑수아 가맹의 배신’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