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 칼럼] 김정숙 여사의 더 큰 잘못은 ‘의상 외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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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24 00:02:40

“우리 할머니가 바퀴를 들고 있으면 자전거가 되나요?” 얼마 전 SNS를 통해 보게 된 영상에서 이탈리아 셰프가 한 말이다. 이탈리아 국민은 자국 음식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이탈리아 사람을 화나게 만들려면 피자에 케첩을 뿌려 먹으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동영상에서의 셰프의 한마디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았다.

이 영상은 너무나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이 봤겠지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영국의 한 요리 방송에 출연한 이탈리아 셰프가 ‘마카로니 앤 치즈’ 요리를 만들었고 진행자들이 시식을 했다. 이때 “여기에 햄만 넣으면 영국식 카르보나라 같다”는 여성 진행자의 말에 셰프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하더니 곧 ‘할머니 바퀴’ 운운하며 속사포처럼 반박하는 말을 쏟아 냈다. 시식하던 진행자 두 명은 웃음을 참느라 입에 넣은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자신의 요리가 영국 음식과 전혀 다르다는 걸 ‘할머니와 자전거’에 빗댄 이탈리아 셰프의 비유가 너무나 기발해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요리에 ‘햄’을 넣는다는 발상 자체를 황당해 하는 그의 표정에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어느 국민이든 누군가 자국 문화(요리)에 이질적인 요소(햄)를 가해 순수성을 해친다면 이 셰프처럼 ‘발끈’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만일 자국의 전통 의상을 선물했는데 선물받은 쪽에서 이를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리폼’해서 입고 나타난다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영부인 자격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건 김 여사뿐이 아니다. 당시 청와대는 물론 동행했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2018년 11월 대통령실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김정숙 여사는 사비타 코빈드(Savita Kovind) 인도 대통령 영부인과 오찬을 가졌습니다 (…) 김 여사는 자신이 입은 블라우스를 가리키며 ‘여사께서 선물로 보내 주신 사리 중 하나로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블라우스를 만들어 봤다. 한국과 인도의 번영을 위해 일부러 만들었는데, 귀하게 잘 입겠다’며 옷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앞서 김 여사는 스와라지 외교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인도의 철학과 문화를 공유하고 양국이 더욱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옷을 만들었다’며 그 의미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인도 영부인이 선물한 사리를 가위질해 블라우스로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배경엔 인도 철학과 문화를 공유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인도 전통 문화를 훼손하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무지함을 드러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궁금한 건 그걸 자랑스럽게 전하는 김 여사의 설명을 듣고 있던 코빈드 여사의 표정이다. 자신의 요리가 모욕당했다고 느낀 이탈리아 셰프처럼 얼굴이 굳어지지는 않았을까. 이때 코빈드 여사의 반응을 알아보려 자료를 찾아봤으나 어디에서도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한 네티즌이 개인 블로그에서 인도에 있는 친구가 알려온 내용이라며 “인도 현지에서는 신성한 옷인 사리를 잘라 블라우스를 만든 것에 대하여 놀라고 분노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여사의 사리 변형 착용을 두고 ‘의상 외교’가 아니냐며 두둔하고 나섰지만 상대국 문화를 존중하지 않은 태도는 ‘외교’의 기본 상식과 거리가 멀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 315년 전통의 영국 최상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TATLER’는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영국 방문 환영 만찬에 참석한 리시 수낙(오른쪽) 총리의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 여사가 한국 국기의 태극 문양을 본뜬 디자인과 색깔의 드레스를 착용한 것을 두고 ‘센스있는 외교’라고 평가했다. TATLER 캡처

2022년 10월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취임했을 때 언론은 그의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를 주목했다. 영국 왕실보다 재산이 더 많은 인도 재벌가 출신 무르티는 패션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영국 버킹엄 궁을 국빈방문했을 때 한 저명한 패션 전문지가 공식 만찬에 참석한 무르티의 이브닝 드레스를 조명했다.

“무르티 여사는 실크 새틴의 긴 붉은색 드레스를 착용했는데, 이 붉은색은 한국 국기에서 우주의 조화를 나타내는 태극문양의 색감과 꼭 같은 것이다. 의상 외교를 표현하는 대담하고 멋진 모습이다”고 평했다. 해당 드레스는 색깔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태극문양의 곡선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선이 강조된 모습이었다. 이런 것을 ‘의상 외교’라 불러야 한다.

김 여사의 인도 방문과 관련해 ‘셀프 초청’ ‘기내식 비용’ 등 이슈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인도 전통문화를 욕되게 한 ‘의상 외교 참사’가 아닐까.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