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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31] 아, 고구려 ④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幽明을 달리했다 합니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0 06:30:15
 
 
소정방은 엄동설한에 굶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 있노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신라에서 보낸 식량이 도착했다. 허기진 당군들은 이것으로 밥을 해 먹고 기운을 차렸다. 총관은 군사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자 마침내 퇴각을 명했다.
소정방이 이끄는 평양도행군은 야음을 틈타 신속히 빠져나갔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각종 치중과 병장기를 그대로 팽개쳐 버렸다.
소정방이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은 연개소문은 분해서 이를 갈았다. 그는 군사를 내보내 당군을 추격하게 했다. 그런데 폭설이 쏟아지는 바람에 쫓아갈 수가 없었다.
연개소문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원통하도다. 저 승냥이 떼 같은 도적놈들을 이대로 살려 보내야 한단 말인가!”
대막리지가 땅을 치며 통곡하자 주위에 있던 장군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이리하여 제2차 고당 전쟁은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막을 내렸다.
 
서력 663, 백제의 풍왕을 지원코자 왜국에서 온 군대가 나당 연합군에 참패했다. 연합군은 기세를 몰아 주류성을 함락시켰다. 가까스로 도망친 풍왕은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고구려로 왔다. 이 당시 대막리지는 지병인 풍질이 악화한 상태였다.
풍왕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은 연개소문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대청에 나가 손님을 맞았다. 수척한 얼굴의 부여풍은 대막리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눈물을 거둔 그는 참패한 원인을 설명하고 원군을 부탁했다.
연개소문은 풍왕이 탐탁지 않았다. 듣고만 있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복신을 죽인 것이오?”
그자가 먼저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를 쳤을 뿐입니다.”
복신은 오로지 백제 부흥을 위해 애쓴 사람이오. 그런 짓을 했다니 믿기지 않는구려.”
부여풍은 순간 당황했다. 대막리지가 복신을 죽인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연개소문은 더는 부여풍을 상대하기 싫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백제가 부흥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지 우리도 도울 수 있소. 그런데 부흥군을 이끄는 원수를 죽이고서야 어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겠소. 본관이 배를 내줄 테니 그대가 있던 왜로 돌아가시오.”
연개소문은 말을 마치자마자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은 풍왕은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
 
연개소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남생(南生)으로 훤칠한 미남에 지모와 용맹을 두루 갖췄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장자라는 신분 덕분에 주위에서 떠받들었기 때문에 안하무인의 성격이 됐다.
둘째는 남건(南建)으로 생김새와 행동 모두 조부인 연태조를 쏙 빼닮았다. 의협심이 강하고 옳다고 여기면 어떤 위협이 있어도 굽히지 않았다. 지난날, 힘없는 백성을 핍박하고 재물을 강탈한 장수를 그 자리에서 단칼에 죽인 일이 있었다. 대막리지가 이 소식을 듣고 호되게 꾸짖자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닷새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했다. 이처럼 그는 너무 강하기만 했다.
셋째 남산(南山)은 두 형에게 치여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더구나 나이가 어렸기에 후사를 이을 후보에서도 제외됐다.
연개소문은 세 아들 중 둘째인 남건을 특히 아꼈다. 그래서 장남 대신 남건에게 자신의 직위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주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병석에 누워 있던 대막리지는 아우 연정토와 고문을 불렀다. 군사 도수금은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연정토와 고문이 침실로 들어오자 연개소문이 아우를 바라보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제 나도 늙고 병들었다.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딱 부러지게 마음에 드는 놈이 없구나. 네가 생각할 때는 누가 내 뒤를 잇는 게 좋겠냐?”
연정토는 예전부터 남생을 싫어했다. 그는 머리가 큰 후로 은근히 숙부를 우습게 여겼다.
남생은 표리부동하고 사납습니다. 덕성이 부족한 자가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대막리지는 속으로 동의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장남에게 후사를 잇게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결정적인 허물이 없는 장남을 배제하는 것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일이었다.
장남이라도 자격이 없으면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뛰어난 인물이 정권을 물려받아야만 이 나라가 번창할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문을 보며 물었다.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고문에게는 탐탁지 않은 물음이었다. 그는 연씨 가문의 후계 문제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누가 되든 분란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장군은 숙고 끝에 대답했다.
차남인 남건이 형보다 자질이 뛰어나다 생각합니다. 다만 장자를 제치고 차자에게 직위를 넘기면 분쟁이 야기될 겁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나니 고민이 더 커졌다. 세 아들 모두 성격이 강해서 평소에도 의견 충돌이 심한데 자신이 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명약관화했다.
 
연개소문은 차라리 보장왕의 둘째 아들인 임무(任武)에게 권력을 넘길까도 생각했다. 임무는 고구려를 밝은 길로 이끌 만한 그릇이었다. 더구나 왕권의 강화를 도모할 수 있으니 명분이 서는 일이기도 했다. 다만, 왕자가 현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조정 안에서의 기반이 약했다. 그를 지지했다가는 남생 형제와 그들을 따르는 무리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대막리지는 자신의 늙고 병든 육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기에는 그에게 남은 생이 너무 짧았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고뇌 탓에 혈압이 오른 것이었다.
 
며칠 후 정신을 차린 연개소문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감했다. 그는 세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놓고 유언을 남겼다.
남생이 내 뒤를 이어 대막리지의 자리에 오르고 남건·남산은 형을 돕도록 해라. 셋이 고기와 물처럼 화합해야 한다. 절대 이웃 나라의 비웃음을 살 행동은 하지 마라.”
세 형제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다음 날 연개소문은 잠자듯이 세상을 떠났다.
 
연개소문의 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비밀에 부쳤다. 그들은 식솔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측근과 보장왕, 그리고 몇몇 대신에게만 사실을 알렸다. 이는 연개소문이 임종하면서 남긴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비밀은 언젠가는 새어 나가기 마련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대막리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는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신라의 김유신은 평양성에 심어 놓은 세작(細作)에게서 연개소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의관을 갖추고 곧바로 입궐해 문무왕을 알현했다.
폐하,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합니다.”
대장군의 보고를 받은 문무왕은 깜짝 놀랐다.
연개소문이 갑자기 죽은 이유가 무엇이오?”
오래전부터 풍질로 고생했다 합니다.”
그러면 고구려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소? 그의 직위는 누가 잇는다 하오? 짐이 알기로 세 아들 모두 출중하다고 하던데.”
유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세 아들이 모두 뛰어나서 각기 자신의 붕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형제 사이에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무왕은 대장군의 예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려 왕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리가 눈앞에 있는데 어느 자식인들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얼마 안 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문무왕이 다시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겠소?”
유신은 좌우를 물린 후에 목소리를 낮추어 아뢰었다.
간자를 보내 그 형제들을 이간시키는 겁니다. 내분이 심해지면 아무리 고구려가 강한 나라라 해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마땅한 인물이라도 있소?”
평양에 있는 절에서 주지를 맡은 신성(信誠)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자가 재작년부터 불사를 위해 연개소문 집에 자주 드나든다 합니다. 그를 포섭할 작정입니다.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와 장자 남생의 사이가 견원지간이라 하니 이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역시 유신은 용맹한 장수일 뿐 아니라 노련한 책략가였다.
문무왕은 매우 기뻐하며 고구려에 관한 모든 일을 대장군에게 일임했다.
 
연개소문이 세상을 뜬 지도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구려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생은 부친상을 치르느라 평양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두 동생을 불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젠 그동안 소홀했던 일을 해야겠다. 먼저 지방 순시를 하려 한다. 국내성을 시작으로 요동까지 돌아볼 생각이다. 내가 도성을 비우는 동안 너희가 정사를 돌보도록 해라.”
이리하여 남건과 남산은 남생을 대리하여 조정의 대사를 책임지게 됐다.
 
[임동주 글 김종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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