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노영방송 해체 시동 건 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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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30 06:31:10

22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에서 공영방송 정상화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판결 하나가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본부노조)가 제기했던 ‘단체협약 위반금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 결정한 것이다. KBS본부노조는 “사측이 프로그램 개편과 주요 보도·제작 간부 임용에서 노조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단체협약 위반”이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KBS본부노조는 2022년 3월 체결된 단체협약에 따르면 ‘주진우 라이브’ ‘최강시사’ ‘뉴스 9’ 등의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와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를 폐지한 것이 방송의 자율성을 침해해 편성 규약과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보도·제작 간부 임명동의권·임시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요구권 등을 근거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KBS본부노조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독자적 조직체로 볼 수 없으므로 협약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전국언론노동조합 규약에 ‘본부·지부의 노동쟁의에 관한 사항(제14호)’과 ‘단체교섭 위임에 대한 사전 심의에 관한 사항(제14호)’ 등을 조합 노동집행위원회 의결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40조와 제42조 제2항에 ‘조합 내 모든 단체교섭 대표자는 노조위원장이고, 본부에 단체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지만 위원장의 사전 승인을 얻도록 한 것을 근거로 적시했다.

한마디로 언론노조 산하의 KBS본부노조를 노사협약 대상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상급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면 MBC·EBS·SBS의 본부노조들도 협상 주체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번 판결은 언론노조가 방송의 경영권과 편성권을 사실상 장악한 노영방송 체제가 해체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또 단체협약 내용 중에 프로그램 개편과 제작자와 진행자를 결정·변경하기 전에 제작진과 협의하도록 한 것도 방송법 제4조 제2항에 따른 사측의 방송편성 자유에 속한다고 해석하였다. 이는 공영방송의 단체 협약과 관련해 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 준 흔치 않은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특히 언론노조 산하의 방송사별 본부노조를 협상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만약 상급법원에서까지 그대로 인정된다면 그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노영방송의 핵심 고리라 할 수 있는 단체협약 제29조 주요 보직자 임명 동의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법원은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시사제작국장·시사교양1국장·시사교양2국장·라디오제작국장에 대한 임명 동의제는 그 효력 유무에 대한 다툼이 진행 중이고 해당 직위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언론노조의 편성권 개입 기제인 공정방송위원회 자체에 대해서도 판단하지 않았다.

임명 동의제와 공정방송위원회는 언론노조 출신 경영진이 퇴진한 상태에서 향후 시사·보도 프로그램 편성과 관련해 극심한 정치적 갈등의 진앙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노사 협상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로서 정치성이 매우 강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정치위원회 규약’에서 정치적 지향점과 정치활동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즉, “조합의 강령과 규약, 정치 방침에 따라 조합의 정치활동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과 제 민주 단체 및 진보 정치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규약 제2조에 ①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및 진보정당 활동 관련 교육·선전 ②노동자 정치활동 역량의 조직화 ③정치 방침 수립 및 정책개발 ④각종 정치행사 주관 및 참여 조직화 사업 같은 구체적인 정치활동들을 적시하고 있다.

이는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항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의 공정성을 추구하는 방송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대한 방송사 노조로서의 합법성에 대한 본질적 판단이 절실하다. 분명 이번 판결은 노영방송 해체를 위한 긍정적 신호탄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돌파해야 할 난관이 결코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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