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TBS 지원 중단과 공영방송 존립 방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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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9 06:31:20

지난주 서울시 의회가 ‘미디어재단 TBS 출연금’을 전액 삭감한 45조7405억 원의 2024년도 예산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처럼 TBS 출연금을 전액 삭감한 근거는 지난해 12월에 의결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에 따른 것이다. TBS 구조조정 및 고용승계 등을 이유로 유예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지난 1년간 TBS 구조개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또 16일에 서울행정법원은 TBS 노조 등이 제기한 ‘서울시 출연금 폐지 조례에 대한 무효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지원 중단 이해관계자는 TBS 법인으로 원고들은 제3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 “조례는 서울시 재정지원 근거와 관련된 것으로 그 밖의 수익금으로 운영될 수 있고… 예산의 70%를 차지하는 지원금 폐지 조례로 TBS가 해산되는 것은 아니다”고 보았다.

이 같은 TBS에 대한 서울시 의회의 지원 중단은 KBS 수신료 분리 징수와 함께 이른바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매체들의 위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방송법에 ‘공영방송’이란 용어조차 없는 상태에서 공영을 표방하는 매체들이 창궐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공공의 이익을 의미하는 ‘공익’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공영·국영·관영 같은 의미들과 혼용되면서 수많은 공영방송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양적으로 팽창된 한국형 공영방송들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립하고 있다. 이른바 힘 있는 방송들은 정권·정치 세력과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공존하는 정치적 후견 체제를 형성하고, 그렇지 못한 방송매체들은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KBS·MBC 같은 지상파방송이나 공적 지분구조를 지닌 뉴스 편성이 가능한 매체들이 주로 전자에 해당되는 반면, 나머지 공영을 표방하는 방송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취약한 제도적·재정적 구조를 정치적 지원을 통해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지난 몇 년간 KBS·MBC가 불공정한 보도와 부실한 공적 책무 이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음에도 사실상 법적 규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심지어 극심한 편파방송으로 반복적인 심의 제재에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

교통전문 방송으로 허가받은 TBS가 시사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리어 TBS가 정치 방송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지자체에 의존해 생존하는 방송이 아니라 공영매체가 정치권과 공존하는 후견 관계로 변신할 수 있다는 모범적 사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공공 영역에 걸쳐 있는 많은 공영매체들이 언제든지 정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재정적 지원은 공영 매체들과 이를 소유한 공공기관들을 연계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 KBS수신료와 TBS에 대한 서울시 예산 지원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국가예산을 통한 직접 지원·각종 기금·정부 광고처럼 정부와 연관된 다양한 재정지원 방법들이 있다. 특히 지역 매체들에게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공공기관들의 광고비나 지원금은 매우 중요한 재원 기반이 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들도 정부의 직·간접적 재정지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가장 모범적인 공영방송 재원이라 인식되고 있는 수신료도 정부가 조세 형태로 징수하거나 법·제도적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미국의 공영방송 PBS는 민간기구임에도 의회가 지원하는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영역과 연관된 매체들이 “지원은 받지만 통제받지 않는다”는 주장은 어쩌면 이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정부가 공공영역에 걸쳐 있는 방송들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을 줄이고, 소유하고 있는 보도채널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과도하게 성장한 자칭 공영방송들은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공공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적 재원 구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권 혹은 정치 세력과 공존하는 비정상적 공영방송이 아니라 시장과 정치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공영방송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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