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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비극의 연속’이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피탈한 일제는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약탈하고 억압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우리 민족은 광복의 기쁨을 맛봤지만 그 마저도 잠깐에 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단의 징조가 한반도에 드리웠다. 북위 38도를 중심으로 이북·이남으로 나뉘어 소련·미군의 군정이 시작됐고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했다. 3년에 걸친 전쟁으로 한반도는 잿더미가 됐고 이 기간 남북을 합쳐 약 200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전쟁은 또한 약 20만명의 전쟁 미망인과 1000만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약 50여년 가까이 이어진 아픔을 겪긴 했지만 우리 민족의 저력은 대단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전 세계 유례가 없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근성과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호국영령들과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스카이데일리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가유공자들의 공헌과 희생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선양하기 위해 이들의 사연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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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임현범 차장|김민아·남승진·나광국 기자]68년 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지난 1953년 7월 27일 휴전하기까지 만 3년 1개월 가량 지속됐다. 전쟁 기간 중 남한군과 북한군은 서로 38선을 각각 3회씩 넘나들며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오르내렸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80%가 초토화됐고 수십만명이 넘는 군·민간인이 희생됐다.
같은 민족이 남한과 북한 둘로 나뉘어 총을 겨누고 수많은 희생자와 이산가족을 낳은 6·25전쟁은 한국사 최대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참혹한 결과를 낳은 전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위대한 전쟁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조국을 위해 피 흘린 6·25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계승해야하는 배경이다.
중공군 인해전술에 부대 궤멸…北에 끌려가 3년 간 강제노역하다 가까스로 생존
김이식(남·85) 씨는 1950년 당시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다. 대구에서 2주간 훈련을 받고난 뒤 8사단 16연대 9대대에 편입돼 통신병 임무를 맡았다. 충주 월악산에서 후반기 훈련을 마친 그는 강원도 전선에 투입됐다.
“전쟁이 터지고 마을 이장이 동대 청년들을 소집했어요. 소집된 청년들은 하나 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죠. 입소 전까지 전쟁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훈련소에서 M1소총을 받는 순간 그제야 전쟁에 나간다는 실감이 났어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던 한국군은 38도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수세에 밀리게 된다. 미군 1개 사단이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해 평양을 다시 내주고 한국·UN군은 후퇴했다. 38선 이남까지 밀린 연합군은 1월 4일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야 말았다.
“전장에 투입되니 포탄·총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사방에는 시체와 부상자가 천지였고 살려달라는 애원을 매일 들어야 했죠. 저는 미 공군의 폭격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야광 표지판을 적진 앞에 몰래 가져다 놓는 임무를 수행했어요. 몰래 적진 앞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임무였죠. 작전 중 바로 옆 전우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부지기수였어요”
흔히들 북한을 지원한 약 30만의 중공군의 전술을 ‘인해전술’이라고 표현하며 단순 수적 우위를 앞세운 전략으로 저평가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그들이 중일전쟁·국공내전에 참여한 베테랑 군인들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중공군은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공격 측의 장점을 이용해 신속히 한 곳에 병력을 집중시켜 포위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중공군은 대부분의 전장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경기도 평택·오산까지 내려왔으나 전열을 가다듬은 UN군은 다시 반격에 나섰다. 전쟁은 다시 38선을 기점으로 치열해졌다. 김 씨가 속해있던 8사단과 UN군은 1951년 1월 점차 진군했지만 최전선에서 돌출된 이들 군대는 중공군의 먹잇감이 됐다. 중공군은 상대적으로 약체인 8사단을 목표로 강원도 횡성에서 총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습 전 미 공군의 폭격이 있었고 이들이 퇴각해 우리 군은 고지를 점령했어요. 하지만 이는 중공군의 유인작전이었죠. 그날 새벽 후방을 노린 중공군은 사방에서 우리를 포위했어요.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위장을 위해 하얀 보자기를 둘러 쓴 수많은 중공군이 진격해오는 광경은 우리를 겁에 질리게 했죠”
중공군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로 8사단을 포위하고 측·후방을 공략해 지휘체계를 무너뜨렸다. 속수무책으로 궤멸당한 8사단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 김 씨 역시 중공군에 생포당해 포로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한 달 넘게 중공군에게 짐승처럼 끌려 다녔어요. 이후 당도한 곳은 평양에 위치한 한 탄광이었죠. 20평 남짓한 방에 30~40명이 생활했어요. 바닥에 있는 가마에서는 악취가 났고 방 안에는 빈대와 이가 가득했죠”
북한군에게 인계당한 김 씨는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낮에는 산에서 흙을 푸고 나무를 벴으며 밤에는 미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당한 비행장·철도레일 등을 복구하는 작업에 동원됐다. 낮에는 미 공군의 폭격 때문에 주로 밤에 복구 작업이 이뤄졌다.
“낮에는 미 공군 폭격으로 인한 굉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무서워서 벌벌 떨었죠. 먹을 것이라곤 하루에 한 번 지급되는 주먹만 한 강냉이밥과 한 컵 정도의 소금물이 전부라 매일 배고픔에도 시달렸죠. 배가 너무 고파 목숨을 걸고 나물을 캐러 나가기도 했어요. 무슨 나물인지도 모르고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캐 먹었죠”
6·25전쟁이 점점 세계전으로 확대될 징후를 보이자 UN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회담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포로 교환이 논의됐다. 2년 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김 씨는 1953년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송환 당시를 회고하던 김 씨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향집 마루에 도착해 어머니를 부르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저를 맞아주셨어요. 저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계속 울기만 했죠. 3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자 가족들은 제가 죽은 줄 알았었던 거죠. 어머니는 매일 밤마다 물을 떠다 놓고 하늘에 빌었다고 말했죠”
“지금도 가끔 꿈을 꿔요. 제 옆에서 죽은 전우들과 호 안에 쌓여 있는 시체들이 나오는 꿈이요. 횡성에 있을 당시 들었던 중공군의 꽹과리 소리 때문에 지금도 꽹과리 소리를 들으면 무서워요. 같이 포로로 있던 전우들을 생각하면 너무 그립고 슬프죠”
이 땅에 포성이 멈춘 지도 벌써 68년이 지났다. 어느덧 참전용사들은 팔순을 넘은 노인이 되거나 매년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김 씨는 참전용사를 포함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예우가 충분치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저는 16년째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어요. 보훈처와 구청에서 매달 30만원, 5만원씩이 각각 지급되는 데 그것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죠. 혼자 살면 기초생활수급비가 20만원인데 이마저도 아내와 동시에 받을 경우 32만원으로 줄어요. 얼마 전에는 다리 혈관이 막혀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검사비만 42만원이 나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었죠. 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상관없지만 후배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둠·포화 속에서 수 십여 차례 고지전…재침 우려해 전후에도 군 복무 이어가
홍성철(남·87) 씨는 19살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다. 충남 논산에서 1950년 9월 25일 훈련을 마친 홍 씨는 6·25전쟁 시작과 끝을 장식한 7사단에 투입됐다. 7사단은 1950년 벌어진 의정부 전투부터 휴전 협정 이후 휴전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벌어진 각종 고지전 등 총 28차례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공로를 세운 부대다. 홍 씨가 참전했을 당시 한국군은 UN군의 참전에 힘입어 북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네에서 네 명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입대했어요. 훈련을 마치자마자 바로 평양에 투입됐죠. 7사단은 김일성 대학교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계속 올라갔지만 중공군이 개입해 우리 군을 포위했어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일념 하에 죽기 살기로 싸웠죠. 안타깝게도 함께 입대한 친구들 중 동네에 돌아온 사람은 저뿐이었죠”
중공군의 개입 이후 1·4 후퇴를 시작으로 패퇴를 거듭하던 한국·UN군은 38선 인근에서 휴전 직전까지 적군과 밀고 밀리는 싸움을 계속했다. 1951년 6월이 돼서야 소련의 제의로 휴전협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2년여간 협정 논의 기간에도 양측은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국지전을 이어나갔다.
“인제·양구·춘천 등 강원도 지역에서 거의 안 싸워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전투를 많이 했어요. 밤낮 가리지 않고 적군과 전투를 벌였죠. 진격 도중 지뢰를 밟진 않을까, 박격포에 맞진 않을까 항상 무서웠죠. 당시 우리 대대는 1000여명 정도 됐는데 하루 고지전을 치루면 30%정도가 부상당하고 10%정도가 죽었죠. 부상자는 후방으로 후송되고 새로운 병사들이 투입됐죠. 전사자 보다 부상자가 많을 때 부대의 전투능력이 떨어져요. 이들을 수습·후송하느라 전투력이 손실되기 때문이죠”
홍 씨가 속해있던 7사단은 당시 남한 전력의 30%를 생산했던 화천발전소 확보를 위해 화천 425고지에서 6·25전쟁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치열한 백병전까지 불사한 끝에 7사단은 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전투의 승리 덕분에 휴전선을 38선으로부터 35km 끌어올릴 수 있었다.
“고지의 주인이 하루 세 번도 더 바뀌었어요. 고지를 점령하자마자 마대에 흙을 퍼 담아 엄폐물을 만들었죠. 방어전이 더 무서워요. 어둠 속에서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잠을 자도 중공군의 꽹과리 소리 때문에 깨기 일쑤였어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홍 씨는 제대하지 않고 군 복무를 이어갔다. 눈앞에서 죽어간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언제 위협을 가해올 지 모르는 북한군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는 27살이 될 때까지 근무했고 1958년 상사로 전역했다. 2008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유공자증서를 수여받았다.
“전우들의 시체를 치울 겨를도 없었어요. 제 옆에서 동고동락하던 전우도 어느 순간 시체가 돼 바닥에 나뒹굴었죠. 65년이 지난 지금도 전우들의 절규가 생생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돼요. 우리 국민들이 조국을 지키다 죽은 이들을 꼭 기억해줬으면 해요”
[남승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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