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종칼럼] 코리아게이트 주역 박동선 씨 영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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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식량 사들여 한국에 원조하는 美정부 프로그램 중개
중개권 독점하는 대신 美의회 의원 90여 명에 금품 로비
“모든 걸 혼자 뒤집어 썼더니 오히려 일거리가 더 늘더라”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29 10:11:24

1970년대 한·미 외교관계에 마찰을 일으킨 ‘코리아게이트’의 핵심인물인 박동선(1935~2024) 씨가 19일 별세했다. 필자의 박사학위논문(1993년)의 부제가 코리아게이트이다. ‘American Foreign Policy and the Press: the Case of Koreagate’(Univ. of Cincinnati). 논문의 본 주제는 ‘미국외교정책과 언론’이지만 사례연구가 코리아게이트라 거의 5년간 박동선·김한조·통일교 등과 씨름해야 했다.

코리아게이트사건은 ‘박동선사건’이라고 할 정도로 박동선이 핵심 주역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김한조(1921~2012) 씨는 “아니다. 내가 코리아게이트의 핵심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내가 더 큰 역할을 했고 희생양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의 주제인 박동선으로 넘어가기 전에 김한조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소개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한조는 오하이오의 톨레도(?)에 유학 가서 처음 맞는 주일에 가지고 온 500 달러를 전액 헌금하였다.

박동선은 1935년 평남 순천에서 주유소 회사(미륭상사)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를 졸업하였다. 동양인으로서 최초 그리고 유학생으로서 조지타운대 1학년(교양과정부) 학생회장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사교력을 엿볼 수 있다.

1966년 3월 워싱턴 내에 ‘조지타운클럽’이라는 고급 사교장을 만들어 현지 정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쌓았다. 박동선의 나이 불과 31세 때였다.

고급 음식과 주류를 팔고 한국도자기와 동양화로 벽면을 장식하는 등 동양의 고전미가 물씬 풍기도록 실내를 장식해 많은 위싱턴 인사들을 그러모았다. 존슨 전 대통령과 포드 부통령, 상원의원 등이 드나들었다.

박동선은 미국 잉여식량을 미 정부가 사들여 한국에 원조하는 프로그램을 중개해 돈을 꽤 벌었다. 중개권을 독점하는 대신 미 의회에 로비를 한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기 돈으로 로비한 것이지 한국 정부 돈으로 로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애국심으로 정치자금을 준 것”이라고 했다.

박동선은 돈을 전달할 때 일대일로 하기 때문에 “진짜로 주었는지, 얼마나 주었는지” 제3자는 모른다. “실제로 준 것보다 더 주었다”고 한국 정부에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아래 증언을 보면 한국 정부가 박동선의 편의(?)를 봐 준 것은 사실로 보인다. “박이 운영하는 조지타운클럽이 자금난이라고 해서 박이 가진 한화를 암시장에서 바꿔 약 10만 달러를 파우치 편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정부 보유달러 중 약 300만 달러를 박이 거래하는 은행에 예치해 주고 박이 그 은행에서 빌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김용식 1987 ‘희망과 도전-김용식 회고록’ 동아일보사 pp. 331-332). 이 부분에서 한국 정부가 은행을 통해 “꾸어 준 것인지, 그냥 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970년 한국은 국가안보와 경제 모두 위기였다.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했고 미국 원조도 대폭 줄었다. 당시 한국과 처지가 비슷했던 대만은 효과적 로비로 미국 지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만은 행정부 차원보다는 의회나 민간단체 간의 교류에 적극적이고 결과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한국식”이었다.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가 박동선이 미국 시민권자인 사업가 김한조 등과 한국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리차드 해너 등 미국 정치인 90여 명에게 박정희 정권 지지 대가로 50만~100만 달러의 뇌물을 건냈다고 보도했다.

코리아게이트로 한·미는 2년간 갈등했고, 도널드 M. 프레이저 하원의원은 한국의 불법적인 로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코리아게이트로 미국 국내외에서 스타가 된 프레이저 의원은 나중에 자기 지역구에서 낙선한다.

한국에 있던 박동선은 면책특권을 받는 조건으로 1978년 열린 공개청문회에서 미 전·현직 의원에게 85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여유도 보였다. 결과적으로 미국 법원이 박동선에 대한 기소를 철회하면서 코리아게이트는 종결되었다.

프레이저 의원이 위원장인 하원 국제기구소위원회가 1978년 발간한 ‘한미관계보고서’, 일명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상세한 증언이 수록됐다. 불법로비를 받았다는 미 정치인은 90여 명에 달했지만 실제 유죄 판결은 하원의원 1명뿐이었다.

처음에는 불법로비, 나중에는 합법로비로서 박동선의 로비는 ‘기술적으로’ 효과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끝까지 혼자 모든 걸 뒤집어 썼더니 사건 후 오히려 로비 일거리가 늘더라”(박동선).

코리아게이트로 발생한 대미 갈등은 한국 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굳건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미 의회보고서도 “박동선 활동이 효과적이었다”고 인정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미국 내에서는 처음에는 코리아게이트가 불법로비와 인권문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촉진시켰지만 결국 1970년대 미 의회는 한국에 대한 15억 달러 군수원조를 승인했고 주한미군 철수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참조로 코리아게이트란 용어의 출발은 ‘워터게이트’이다. 워터게이트 침입시간은 1972년 6월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빌딩 컴플렉스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수 명의 배관공이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했다가 검거되면서 미국은 내부 위기에 빠져들었다. 미 국민은 닉슨 대통령이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11월에 열린 대선에서 닉슨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었다. 그러나 백악관이 상기 사건에서 자기 역할을 은폐해 왔고 백악관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 지면서 결국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사퇴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모든 정치스캔들에 게이트를 붙인다. 코리아게이트·지퍼게이트(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등이다.